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됐다가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병사 2명과 직접 대화를 나눈 영국 일간 가디언의 루크 하딩 수석 국제특파원이 VOA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군 포로들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하딩 특파원은 북한군 포로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전혀 몰랐으며 가족들의 안위에 대해서도 큰 불안감을 나타냈다고 말했습니다. VOA 우크라이나 서비스의 타티아나 보로즈코 기자가 하딩 특파원을 인터뷰했습니다.
보로즈코 기자: 북한군 포로 2명에 어떻게 접근해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까? 국제적십자 규정이나 제네바협약의 포로 관련 규정 등을 준수하기 위해 어떤 행정 절차를 거쳤나요?
하딩 특파원: 저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전부터 키이우를 방문해 왔고, 우크라이나 정부 내에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신과 이메일을 보내고, 직접 협의를 하는 등의 절차가 거친 뒤에야 한국으로 가기를 원하고 있던 두 북한군 포로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키이우의 수용소에서 두 사람을 만났을 때 물론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뷰에 응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고, 두 사람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그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당시 두 사람은 이미 8개월 동안 수감돼 있었습니다.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사연이 알려지면 수용소에서 나와 서울로 갈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보로즈코 기자: 두 사람은 한국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까? 아니면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까? 무엇을 원했나요?
하딩 특파원: 판단하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사실 두 사람 모두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탈북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러시아군과 함께 싸우도록 파견한 북한군 병사들이었습니다.
보로즈코 기자: 흥미롭네요.
하딩 특파원: 그들은 러시아 쿠르스크주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싸우기 위해 파견됐던 겁니다. 두 사람은 외부 세계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지도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찾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두 사람은 부상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돼 키이우로 오게 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북한으로 돌아가면 자신들이 반역자로 취급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 특히 젊은 포로인 백 씨는 자신들이 자결했어야 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죠. 그것이 지시였거든요. 자폭하라는 거였죠.
백 씨는 키이우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수류탄을 이용해 자살하려고 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그의 수류탄을 빼앗았고, 그래서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사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원했던 곳은 북한이었지만 살아남으려면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보로즈코 기자: 그들은 한국으로 가게 될 경우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하지 않았습니까?
하딩 특파원: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물론 그런 질문을 할까 생각했지만 직접 묻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2025년 1월 생포된 이후 가족들과 연락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에 전화를 걸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도 없고, 연락할 수단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나 가족들이 두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살아 있지만 포로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도 불분명했습니다. 반대로 두 사람 역시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북한 정권에 의해 가족들이 처벌을 받았는지,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됐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특히 가족들이 평양에서 쫓겨났을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로즈코 기자: 두 사람을 생포하는 과정이 우크라이나 측에도 위험한 작전이었다는 인상을 받으셨나요? 두 사람을 포로로 잡기 위해 우크라이나군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으니까요.
하딩 특파원: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살아남은 것이 다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전투 과정에서 동료들이 숨지는 모습을 직접 봤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심각한 총상을 입었습니다. 백 씨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리 씨는 팔과 턱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두 사람은 계속 싸우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리 씨는 소총을 들 수 없었고, 백 씨는 걸을 수 없었으니까요. 결국 우크라이나군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두 사람을 구조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두 사람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매우 ‘큰 전리품’이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북한이 단순히 탄도미사일과 포탄만 러시아에 제공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러시아에 1만 명에서 1만 4천명의 정예 병력을 보내 실제 전투에 투입했고, 이들은 싸우다 숨졌습니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도 이 두 사람의 사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선전이 지배하는 체제, 즉 전체주의 국가에서 자라난 이들에게는 여전히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로즈코 기자: 그들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하딩 특파원:처음 생포됐을 때는 두 병사중 나이가 많은 26살 리 씨가 좀 더 말을 많이 했고, 백 씨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공개한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 갔을 때는 리 씨는 상당히 불만스러워 보였고 대답도 매우 짧았습니다. 그가 활기를 보였던 순간은 제가 “말하지 말고 그냥 그려보라”고 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렸습니다. 북한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비밀리에 배를 타고 이동할 때 무엇을 먹었는지 그려달라고 하자, 그는 작은 금색 별이 달린 러시아군 전투식량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려달라고 하자, 동료들이 숨진 부교와 숲, 참호선, 그리고 유인 공격을 했던 병사들이 있던 곳 등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지고 있던 스케치북을 보여줬는데 매우 기묘했습니다. 김정은과 북한 통치 가문의 선전용 초상화가 있었고, 수용소에서 케이블TV를 통해 본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젊은 여성 출연자들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또 곰돌이 푸와 피글렛도 있었고, 손으로 벽돌을 깨는 근육질의 북한 특수부대원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기묘하고 환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반면 백 씨는 북한 음식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밥이 그립고, 돼지고기 요리도 그립다고 했습니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비디오게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그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나치 독일군과 소련군이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80년이 지난 뒤 그의 현실이 돼 버린 셈이죠. 정말 기묘한 상황이었습니다. 제 인생과 기자 경력을 통틀어 가장 놀라운 인터뷰 중 하나였습니다.
보로즈코 기자: 이들은 세상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있을까요?
하딩 특파원:그들은 거의 아무것도 모릅니다.
뒤에 있는 세계지도를 보면 어느 정도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그게 전부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어떤 나라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저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이들이 정말 길을 잃은 영혼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 체제의 강력한 세뇌 속에서 성장하면서 이들의 정체성과 성격이 상당 부분 형성되고, 또 뒤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우크라이나나 미국, 영국, 유럽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이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거나 심지어 정상적인 삶을 즐길 수 있게 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재활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현재로서는 저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보로즈코 기자:우리는 러시아 감옥에 갇힌 우크라이나 포로와 민간인들이 겪는 끔찍하고 참혹한 상황이나, 우크라이나 측 포로 수용소의 실태 등을 많이 다뤄왔는데요, 북한군 포로들의 환경은 어땠나요?
하딩 특파원: 그들의 환경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물론 수용소에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보안문과 경보 장치가 있었고 경비원과 호송 인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같은 방을 사용했고, 방 안에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2층 침대 2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두 사람만 그 방을 사용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도 제공받았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이들을 방문한 걸 알고 있습니다.
케이블TV도 볼 수 있었는데, 한국 방송도 시청했습니다. 어느 정도 오락거리는 있었던 셈입니다. 다만 두 사람은 매우 지루해했습니다. 하루하루 똑같은 생활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아마 두 사람이 인터뷰에 응하고 싶어 했던 이유 중 하나도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리 씨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게 하려고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두 사람은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두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의료진이 치료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부상 때문에 숨졌을 수도 있습니다. 매우 기묘한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이 사건은 우리가 얼마나 뒤집힌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북한군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유럽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이하고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보로즈코 기자: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북한군 포로를 추가로 생포할 수도 있고, 북한이 병사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것을 고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향후 전황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하딩 특파원:젤렌스키 대통령은 추가적인 북한 정예 병력이 오고 있다고 계속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전선의 최전방 보병 역할을 맡을지, 아니면 전선의 상대적으로 조용한 지역을 방어하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큰 차원에서 보면 우크라이나는 거의 5년째 이어지는 전면전에서 러시아만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주의 국가들의 동맹과 싸우고 있습니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도 있습니다. 중국은 드론 부품과 광섬유 케이블, 광학장비 등을 제공하면서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싸우고 있는 이란도 있습니다. 이것을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제적인 성격이 매우 강한 전쟁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동맹국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시진핑, 김정은, 블라디미르 푸틴 등 독재자들이 이끄는 세력과 맞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입니다.
지금까지 VOA 우크라이나 서비스가 북한군 포로 2명을 직접 만나 대화한 가디언지 소속 루크 하디 특파원을 인터뷰한 내용을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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