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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이 좋다]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나라' 플로리스트 고소희 씨


[나는 미국이 좋다]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나라' 플로리스트 고소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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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열 명의 10인 10색 미국 정착기 '나는 미국이 좋다' 그 여덞 번째 이야기, 플로리스트 고소희 씨.

미국에 온 지 이제 약 40년.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눠주는 꽃을 다듬고 있는 고소희씨에게 플로리스트가 첫 직업은 아닙니다.

고소희 / 플로리스트
“(원래는) 직장생활을 했어요. (꽃 장식은) 봉사로 했었는데, 제가 꽃을 하는 것마다 자꾸 손님들이 예쁘다고, (똑같이) 해달라는 거예요. 제가 하는 것 마다. 해 드리다 보니까, (다니던 직장은) 정규직에서 임시직으로 옮기고, 임시직에서 다시 직장을 그만두고, 이제 꽃만 하게 됐죠.”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낯선 나라 미국에 온 뒤,적응이 어려웠던 탓에 고국으로 돌아갔다 다시 돌아오기를 수차례. 그러고 나니, 주변의 이민자들처럼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경각심이 커졌습니다

고소희 / 플로리스트
“다른 사람들도 이제 열심히 사시고 하니까…, 저도 괜히 왔다갔다만 하면 안 되잖아요. 처음에는 영어도 잘 못하고 그랬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굉장히 일을 열심히 하고, 그래서 칭찬받고 그랬거든요. 아주 열심히 살았어요.”

꽃을 잘라 이리저리 꾸미는 게 예뻐보이고, 좋아보인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통념과는 다른 구석이 이 일에 들어 있습니다.

고소희 / 플로리스트
“완전히 막노동이에요. 보기에는 예쁜 것 같아도 나무 같은 억센 것도 (작업을) 해야 하고, 위에 올라가서 뭐도 만들어야 하고, 그런 일들이 많이 있거든요. 여러가지를 제가 또 알아야 하고.”

오랜 시간 해왔던 일, 이제는 문득 쉬고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예쁘게만 보이는 꽃에 대한 열정이 고소희 씨에게 책임감으로 남아있습니다.

고소희 / 플로리스트
“(가족들이) 이제는 조금씩만 하라고…, 지금은 (일을) 많이 줄였어요. 많이 줄이고 하는데, 이제 전화 오고 (꽃꽂이를) 해달라고 하시면 ‘네~’ 하고 해드리는 거죠.”

미국에 잘 왔다고 생각하세요?

고소희 / 플로리스트
“큰 데(나라)에서 넓은 것을 보고 사니까, ‘잘왔다’ 그러죠. 또 열심히 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고소희씨. 미국은 그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는 나라였습니다.

고소희 / 플로리스트
“이제는 미국이 제 나라이고, 저한테 고마운 나라이고, 제가 뭐든지 하고 싶으면 다 할 수 있는 곳이고,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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