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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이 좋다]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삶의 희망을 주는 나라’ 제빵사 김상훈 씨


[나는 미국이 좋다]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삶의 희망을 주는 나라’ 제빵사 김상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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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열 명의 ‘10인 10색’ 미국 정착기 ‘나는 미국이 좋다’ 그 열 번째 이야기, 제빵사 김상훈 씨.

후각을 유혹하는 달콤한 빵 냄새를 뒤로 하고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그가 미국에 온 지도 벌써 17년, 다만 이 직업이 본래 하려던 일은 아니었습니다.

김상훈 / 제빵사
“빵집 자체를 하겠다는 목표는 없었어요. 그런데 흔히 말하는대로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갖고 있는 기술이니까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면 그 기술을 써 먹는 것 밖에 없으니까….”

한국에서 남들보다 조금 늦게 배워 얻게 된 제빵사라는 타이틀과 기술. 하지만 순전히 그것만으로는 첫 이민자의 삶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김상훈 / 제빵사
“한 주에 100시간씩 일했었죠. 새벽 4시에 나와서 밤 9시에 들어갔으니까요. 그렇게 생활을 하다 보니까, 한 6년을 하다 보니까 지치더라고요, 나중에. 다시 (한국에) 돌아가려는 생각도 했었어요. ‘아, 도저히 안 되겠다. 너무 힘들다.’”

그렇게 초창기 이민자의 길이 힘들고 지쳐갈 때, 그리고 포기하고 싶을 무렵, 미국에서의 삶을 이어갈 이유는 생각치도 않던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김상훈 / 제빵사
“어느 날 아들이, 외국 사람이랑 이야기를 했는지, 그때 걔가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이었어요. ‘저 아저씨가 뭐라더냐’ 물었더니 얘가 그 말을 듣고 한국말로 다 번역을 해 주는거에요. 깜짝 놀랐죠. 얘들(자녀)은 (미국에서) 먹고 살겠다….”

생계가 급해 아주 잠깐 신경쓰지 못하고 있던 부분, 이제는 내가 아니라 자녀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김상훈 / 제빵사
“어느날 갑자기 아들이 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해요. ‘이건 언제(어떻게) 배웠니’ 물었더니 학교에서 배웠대요. 어른들의 입장은 좀 다르겠지만, 아이들한테는 그런 (다양한 교육) 기회가 (보장되고),, 그리고 공부만 좀 잘 한다면 대학을 가는 것도 (미국에서는) 어렵지 않고.”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 다음을 위해 가자 마음먹고, 고개를 들어보니 고생스러운 길일 지라도 빛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김상훈 / 제빵사
“저를 믿고 온 사람들(가족)이잖아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이 온 거잖아요. 그렇다고 돈을 들고 온 것도 아니고. 그래도 살다 보니까 길이 보이고, 길이 열리고…, 그렇더라고요.”

제빵사로서 보람이 클 때는 언제인가요?

김상훈 / 제빵사
“상품을 하나 만들었을 때, ‘아 이건 맛있겠다, 이런 맛이겠다, 사람들이 좋아할까?’, 사람들이 좋아해줘요. 내놨더니 많이 팔려요. 그러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음식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요.”

앞날에 대한 새로운 계획이 없었다면 지쳐 쓰러졌을 지도 몰랐던 그에게 다음 하루, 또 그 다음을 버티게 해준 가족이라는 힘.

김상훈 / 제빵사
“고생도 할 수는 있어요. ‘피곤하다, 여기 왜 왔지, 지겹다’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후회는 안 해요. 만약에 (이민 초기의 힘들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너 갈래? 미국 갈래?’ 또 와요 저는.”

가족과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의 터전을 마련해줄 희망이 있는 나라, 그리고 그것이 이민자들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는 곳. 김상훈씨에게 미국은 그런 나라입니다.

김상훈 / 제빵사
“은퇴를 하고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제가 벌어서 제가 만들어서 제 생활비, 제가 먹는 것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맨 마지막에 제 바람이고, 문 닫고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고. 그렇게 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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