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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이 좋다] '부지런함이 인정받는 나라' 용접기사 신동천 씨


[나는 미국이 좋다] '부지런함이 인정받는 나라' 용접기사 신동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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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열 명의 ‘10인 10색’ 미국 정착기 ‘나는 미국이 좋다’ 그 네 번째 이야기. 용접기사, 신동천 씨 이야기입니다.

둔탁한 소리를 내고, 빨간 불빛을 내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쇠붙이들. 그리고 그 높은 온도 속에서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는 신동천 씨.

신동천 l 용접기사
“워낙에 여기서 뭐 지금…30년이니. 만날 하는 게 이건데 뭐, 쉽죠.”

친척이 운영하는 철공소 직원으로 시작해 지금 이곳의 사장까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30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30년 동안 하신 일이 뭔가요?

신동천 l 용접기사
“용접이라고 그러죠, 용접. 계속 외삼촌네(철공소)에서 있었죠. 그러다가 우리 외삼촌이 은퇴를 하면서 가게를 없애고, 그러니까 제가 하나 차려서…(지금까지 해온거예요).”

하면 된다 라는 마음과는 다르게 시작이라는 것은 성공이라는 단어를 쉽게 손에 쥐여주지 않았습니다.

신동천 l 용접기사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죠. 한 6개월 동안. 그 다음부터는 뭐, (일을) 잘 해주니까. 말(영어)을 다 못 알아들어도 기술로 하는 거잖아요. 기술 잡(기술직종). 그러니까 보면 벌써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죠.”

생계를 이어갈 자금은 부족했지만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하루를 버텨냈던 시간들.

신동천 l 용접기사
“돈도 뭐 안 갖고 왔잖아요. 맨손으로 왔죠 뭐. 딱 3천 달러 갖고 왔네요. 6개월 동안 (집에) 밥상도 없었어요. 그 다음부터 조금조금 하나하나 한 거죠.”

“기대만큼 이루셨나요?”

신동천 l 용접기사
“지금은 이제 이렇게 공장 (운영)해서, 일도 많고 모든 게 잘 풀려나가는거죠.”

어려웠던 시간을 버티며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와 지난날을 돌아보니 이제는 미국 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신동천 l 용접기사
“지금 이제 나이 한 60세 돼가면, (젊은 층이) 다들 밑에서 올라오니까…별 직업 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한국에) 많더라고요, 제 친구들. 그러고 보니까 (미국에 오길) 잘했잖아요.”

그래도 30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지낸 시간 속에, 업이 손에 익지 않았다면 아마도 조금 불편했을지 모릅니다.

신동천 l 용접기사
“쇠 같은 거 만지고 손으로 하는 일. 어차피 저는 다른 일 안 하고 이 일 했을거예요.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죠. 잘했다, 생각하죠.”

이렇듯 업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거기서 오는 보람은 어쩌면 다음 날을 살아가게 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신동천 l 용접기사
“펜타곤(미 국방부 청사) 이런 데, 또 공항. 이런 데 일 많이 하거든요. 제가 (철공 작업) 해놓은 곳 지나가면서 보면, 거기 있으면 뿌듯하죠.”

“앞으로 희망은 뭔가요?”

신동천 l 용접기사
“우리 아들이 여기서 (철공소 운영을) 해서 밥 먹고 살아갈 수 있게끔. 그거 해주고 제가 은퇴하는 거. 그거죠 뭐. 그것만 되면 저는 만족해야죠.”

부지런함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나라. 신동천씨에게 미국은 그런 나라입니다.

신동천 l 용접기사
“열심히만 하면 돈이 없어서 쩔쩔매거나 (미국 생활에서)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잖아요, 부지런하기만 하면. 그리고 또 성실해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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