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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이 좋다] '열정을 일깨워준 나라' 피아노 조율사 정광복 씨


[나는 미국이 좋다] '열정을 일깨워준 나라' 피아노 조율사 정광복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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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열 명의 ‘10인 10색’ 미국 정착기 ‘나는 미국이 좋다’ 그 다섯 번째 이야기. 피아노 조율사, 정광복씨.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사람들이 저한테 그런 걸 많이 물어봐요. 피아노 칠 줄 아냐고. 그런데 대답은 딱 하나예요. 어우, 피아노 잘 치죠. 한 가지 음악밖에 안 쳤어요. (조율할 때 치는 이 곡을) ‘튜닝송’이라고 불러요.”

한인 열 명의 ‘10인 10색’ 미국 정착기 ‘나는 미국이 좋다’ 그 다섯 번째 이야기. 피아노 조율사, 정광복씨.

작업 중인 피아노에 앉아 유쾌한 위트로 운을 띄운 정광복씨. 50년이 다 돼가는 피아노 관련업에 그는 이미 겸손한 전문가가 되어있었습니다.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피아노 관련 기술자로) 미국에 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자기 자존심 같은 건 겸허히 내려놓고 미국인들 방식으로 (하라고요). 그러면 시간은 좀 걸리고 힘은 들겠지만, 인정도 받고, 그렇죠?”

한국에서부터 생계를 위해 시작한 피아노업. 다만 미국으로 오게 된 정광복씨도 많은 이민자들처럼 그 처음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힘 안든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요? 오로지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는 건데 힘들었죠. 한 주에 75시간, 80시간 일한 거 같아요.”

과거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지금 이뤄둔 자신의 뒤를 돌아보니, 그간의 고생했던 시간이 이제는 되려 고맙게 여겨집니다.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힘들었던) 그때 생각하면 책으로 한 권 쓸 거 같은데…시간 지나고 보니까 또, 오히려 그런 게 또 지금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 고생 안했다라고 그러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겠죠).”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지난날들, 이제 와 추억해보니 새로운 이곳이 그 한걸음을 내딛게 해줬던 것 같았습니다.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다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까,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 제가 가질 수 있는 피아노에 대한 사고, 기술, 또 손님들에 대한 (태도)…그런 것은 아마 (저에게) 그렇게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피아노는 어떤 의미인가요?”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내 삶이죠. 내 삶. 내가 해야되는 것. 멋있게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그 업에 대한 열정만큼 따라오는 책임감, 그리고 늘 떨쳐내야 했던 단어는 자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제가 일을 오래했어도, 제 마음에 100% 맞게 만족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는 평생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기대에) 100%에 맞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잘못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조율사의 목표는 뭔가요?”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연주를 잘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게 기술자 역할이다…박수는 음악가들이 받지만, 거기 저도 (기여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분명히 저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나태함을 벗겨내고, 현재의 열정을 깨워주는 나라. 정광복씨에게 미국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장 옆에서 응원해주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정광복 l 피아노 조율사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일은 자꾸 줄어들겠죠. 힘도 떨어지고. 그런 면에서 기록을 하나 남기고 싶어요. ‘은퇴 제일 늦게 한 사람,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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