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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이 좋다] '기회가 공정한 나라' 자동차 정비사 이응천 씨


[나는 미국이 좋다] '기회가 공정한 나라' 자동차 정비사 이응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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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열 명의 ‘10인 10색' 미국 정착기 ‘나는 미국이 좋다’ 그 첫 번째 이야기. 자동차 정비사, 이응천씨.

낯설었던 나라, 마냥 기회가 널려있을 것 같았던 이곳. 이제는 정착해 남들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응천 / 자동차 정비사

“좀 더 넓은 세상에 와서 해보려고 왔었는데, 공부를 시작했다가 너무나 여의치가 않아서…또, 자동차과를 나왔기 때문이 이 계통으로 들어서서 현재까지 계속 이 직종에 종사를 하고 있고…”

전공을 살려 지금의 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응천씨, 하지만 그저 기본기로만으로 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응천 / 자동차 정비사

“그래도 그나마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재수가 좋게 제가 86년도부터 (공부를 해서) 버지니아 인스펙션 라이센스를 획득을 했어요. 그때 당시에는 고향 사람이라고는 두 세 명밖에 그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이 없었어요.”

이응천 / 자동차 정비사

“정말 옛날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워낙 비즈니스가 없으니까 하루종일 노는 것이 일이었어요 처음에. 오일교체 하나만 들어와도 세차를 해줬어요. 차 고치는 것 보다 물값이 더 나갔죠. 그러고나서 조금씩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죠.”

업무를 보던 이응천씨. 당시 아무런 정보도, 도움받을 환경에도 있지 못했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이응천 / 자동차 정비사

“솔직히 한국에 돌아가려고 하니까 비행기 값이 없어요. 편도로 왔으니까 그때는. 근데 한 번 어차피 돌아갈 차비도 없으니까…죽을 마음 같으면 뭘 못하겠다 해서 그때부터 이제 낮에는 차를 고치고 밤에는 청소를 했어요.”

“내가 찍어줬는데 내가 없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들고온 돈이라곤 고작 258달러. 터무니없이 부족한 돈이었지만, 이곳 기회의 땅은 이응천씨의 노력을 전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이응천 / 자동차 정비사

“근데 남들이 안믿어요. 내가 258불 가지고 왔다 그러면은 ‘에이 왜그래요’ 이러면서 아무도 안믿어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에요.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보면…이야, 이걸 내가 어떻게 해냈지…”

새로운 나라에 정착한 이민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매질하며 끈질기게 이뤄낸 결실들.

이응천 / 자동차 정비사

“지금도 절대로 제 자신을 채찍질 안해본 날이 없어요. 아침에 항상 7시 반에 여기에 도착하고 7시에 집에 가고…”

“대각선으로 들어가야지 대각선으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노력을 실천으로 옮겨 기회라는 단어 자체를 실제로 잡아 이뤄낸 정비사 이응천씨. 그에게 미국은 ‘기회가 공정한 나라'입니다.

이응천 / 자동차 정비사

“미국이라는 나라는 내 앞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고, 분명히 잘 살고 있는 기회가 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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