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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무력 법제화' 유일체제 모순 극명 노출...수령 안위 위해 전 주민 핵 참화 감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 공개한 사진. (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다음날 공개한 사진. (자료사진)

북한이 최근 법제화한 핵 무력정책이 유일지배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고 지도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선제 핵 공격까지 가능하도록 명문화해 자의적 판단으로 주민들을 핵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을 수 있는 데 대한 통제장치가 빠져 있다는 지적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최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법제화한 핵 무력정책은 “핵 무력은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하며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핵 무력 지휘의 절대 권한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부여한 겁니다.

이와 함께 핵 무력정책 법령은 “국가 핵 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 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적시했습니다.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지휘부가 유사시 타격을 받게 되면 그것이 재래식 공격이든 핵 공격이든 핵 공격 작전계획이 자동 시행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다른 핵 보유국들도 핵무기 사용조건과 지휘통수권자 유고시 명령권과 수행체계 등을 다룬 핵 운용교리를 갖고 있지만 북한의 경우 이를 법으로 만들어 대외에 공표했다는 게 다른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면서 해당 법령이 핵무기 운용의 절대 권한을 최고 지도자에게 부여하고 지도자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의적 판단으로 핵 무기를 쓸 수 있도록 길을 연 데 그치지 않고 핵 공격의 자동 시행까지 명문화 한 점은 핵이 국가 전략자산이 아니라 김 위원장 개인과 독재체제 유지의 핵심 수단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책임연구위원은 미국도 핵무기 사용의 최종 결정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지만 대통령 신상보다 국가안전을 우선시 한다며 결국 북한의 법제화 조치는 김정은 체제를 지키는 데 우선순위를 둔 핵 운용교리의 완성판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이런 이례적이고 위험한 행보가 유일지배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책임연구위원] “김정은이 없으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없고 김정은이 없으면 사회주의 강국도 없다 이런 논리입니다. 비인간적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체제 모순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치러야 했던 주민들의 희생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인정하는 언급을 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했고, 모든 가정들에 엄청난 생활난이 초래돼야 했다”고 했고, “보다 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는 했지만 너무도 큰 대가를 각오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과 국가를 동일시하면서 수령을 지키기 위한 주민 희생을 정당화하는 체제 모순이 핵 운용교리에 그대로 반영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오히려 김 위원장이 이번 시정연설을 통해 주민 희생 위에서 만든 핵 무력을 자신의 업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대내적으론 결국 김정은의 권위와 유일적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의미가 있고요. 또 하나는 김 위원장 체제에서 지금 성과가 거의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핵 무력을 성과로 강조하는 측면도 동시에 있다고 봐야죠.”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핵 무력 법령엔 주민들을 핵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통제장치가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최고 지도자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선제 핵 공격에 나섰을 때 그 결과는 주민 모두의 파국적 재앙으로 귀결된다는 데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는 게 여느 민주주의 국가의 핵 운용교리와의 차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먼저 핵을 쏘는 그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이 그 안에 전혀 없다는 겁니다. 미국이 훨씬 더 강력한 핵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자신한테 쏘면 핵을 쏘겠다 그러면 북한 전역이 미국의 강력한 핵으로 초토화될 수 있고 대규모의 북한 주민의 사상이 될 수 있는데 그런 걸 신경 안 쓰겠다는 겁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보미 부연구위원은 14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선제공격이 가능한 핵 무력 법령을 채택함으로써 핵 태세를 공세적으로 유지하는데 그만큼 큰 비용이 들어 북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보고서는 북한이 공세적인 핵태세를 유지하려면 "핵무기가 언제든 먼저 사용될 수 있다는 위협을 주기 위해 핵무기를 즉시 운용 가능한 수준으로 상시 대기해야 한다”며 “북한은 앞으로 높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문제를 안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핵 능력이 더욱 커지고 핵 태세가 공세적으로 전환될수록 북한의 경제는 잠식될 수밖에 없고 체제는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습니다.

한편 김기웅 한국 통일부 차관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제11차 ‘한독통일자문위원회’ 개회사에서 “북한이 최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고 자의적으로 사용하겠다는 태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깊은 우려와 강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김 차관은 “북한은 이제라도 남북이 평화롭게 같이 번영하는 길이 무엇인지, 북한이 경제난을 타개하고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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