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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난 속 '핵 법제화' 강경 행보...중러와의 3각 밀착 '뒷배' 역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하고 있다. (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평양에서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에서 시정연설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협상에 선을 긋는 핵무력 정책의 법제화라는 공세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미국과의 갈등이 장기화하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대미 공동전선을 뒷배로 삼아 강경 행보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핵 무력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국제사회의 강한 반발을 부르고 있습니다.

핵무기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로 경제 위기를 자초한 북한이 오히려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비핵화 협상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민생을 외면한 채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에 집착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발표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엔 미국이 사상 최대의 제재 봉쇄를 통해 핵 포기를 기도하고 있지만 이는 “오판이고 오산”이라는 강경한 메시지와 함께 제재 등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인정하는 대목들도 곳곳에 들어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했고, 모든 가정들에 엄청난 생활난이 초래돼야 했다”고 했고 “보다 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는 했지만 너무도 큰 대가를 각오해야 했다”며 핵 개발에 따른 부정적 결과를 솔직하게 언급했습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와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까지 겹치며 ‘고난의 행군’ 시절을 방불케하는 경제난에 처한 북한이 핵 경제 `병진노선'을 넘은 이른바 ‘선핵 노선’을 표방한 이번 법제화 조치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 구도 강화라는 국제정세에 편승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중 패권경쟁,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미러 갈등이 구조화 장기화하는 흐름 속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유민주 진영에 맞선 북중러 삼각 밀착이라는 신냉전 구도가 북한 스스로 유리한 정세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협력 움직임은 양국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양상입니다.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의 명백한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복구사업에 북한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북한 측과 논의했고 북한산 무기 구매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과거 같으면 북러 경제관계, 군사협력관계는 상당히 의미가 미미했지만 지금 새로운 글로벌 대립구조가 형성되고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관계, 미북 관계라는 그랜드 디자인이 지금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어쩔 수 없는 대체 출구가 필요하고 여기에 러시아가 길을 열어주는 거죠.”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북러가 외교는 물론 경제와 군사 등 다방면에서의 교류와 대미 공동전선 차원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중국은 북한 핵 무력 고도화의 ‘뒷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선박 무역이나 유류, 석탄, 식량, 의약품 등 지원을 통해 북한과의 밀착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 실장은 다음달 당 대회를 통해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이 확정된 이후 중국의 북한 편들기가 한층 노골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홍 실장은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이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3연임 확정 후 시 주석의 대북정책은 미국과의 외교적 협력 공간이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지지했던 이전의 태도를 벗고 북한을 대미전선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당 대회 이후에 시진핑의 대외정책이 확고하게 제시되는 것에 따라서 대미 태도가 상당히 공세적으로 그리고 강경하게 변화될 가능성도 있어요. 그런 태도가 만약 전면화할 경우 북한과 관련한 태도에 있어서도 북한의 이해를 좀 더 많이 대변하고 북한에 대한 안전을 제공하는 측면에서 중국이 좀 더 적극적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거고요.”

전문가들은 이런 북중러 3각 공조는 북한이 핵실험 등 추가적인 전략도발에 나설 경우에도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러가 안보리의 대북 추가 제재 결의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에 나섬으로써 확인될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다지려는 의도로 핵무력 정책 법제화 조치에 나선 데 대한 중러의 속내에 대해선 엇갈린 분석들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확고히 하려는 행동은 타이완이나 우크라이나로의 핵 도미노를 우려하는 중러에게도 부담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김흥규 아주대학교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이밖에도 중국의 경우 북러 간 지나친 밀착이 미국을 자극하는 북한의 모험적 행동을 부추길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한 북한이 과거 스탈린 시절 소련의 용인 아래 한국전쟁을 일으키면서 큰 피해를 본 중국으로선 러시아가 북한 군 현대화를 지원하는 등 군사적 협력으로까지 나아가는 데 대해선 반길 수만은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녹취: 김흥규 교수] “북러 관계는 그 어느 때 보다 단단해질 겁니다. 한반도의 현상변경이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사실 중국은 견제하려고 할 겁니다. 특히 북한이 어떤 현상변경할 수 있는 역량을 갖는 것을 중국이 원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서로 또 외양적으론 대단히 우호적이고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띠어야 하고 내적으론 서로 미묘한 역학관계가 존재합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중러와의 공조에 의존해 미국과 장기전을 끌고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습니다.

박 교수는 북한이 이번에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지켜야 하는 핵무기 운용 교리를 세세하게 법으로 만들어 대외에 공표한 것은 전례 없는 행동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박 교수는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은 현 국제정세를 북한에 유리하다고 보면서도 경제 위기를 호소하는 내용들이 많다며 중러와의 뿌리깊은 불신을 고려할 때 북한은 여전히 미국을 압박하면서도 협상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 협력을 하긴 하는데 일단 절대 중국과 러시아를 북한이 믿지 않고 그리고 그들에게 기대하는 협력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계속 얘기하는 게 시간이 자신들의 편이다, 제재 아무리 해봤자 우리는 계속 버틸 수 있다고 계속 얘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도 되거든요.

반면 홍민 실장은 중러는 이미 북한의 비핵화가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과의 갈등이 구조화 장기화하는 국면에서 북한의 핵 무장을 유리하게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홍 실장은 특히 중국의 경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개발하는 데까지 이른 북한의 핵 무력 수준이 미국은 물론 중국을 둘러싼 적대국들을 억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북한이 (핵을) 포기할만한 한반도나 동북아 환경이 개선될 가능성도 거의 없어요. 그렇다면 이것을 안된다라고만 얘기하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 그러니까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게 관리하면서 대미 전선에 얼마나 잘 이용하느냐 이게 아마 중국,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외교적 계산이라고 보거든요.”

홍 실장은 미중 미러 갈등의 장기화로 북한의 중러에 대한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며 현재 중러 간 이뤄지고 있는 연합군사훈련에 향후 북한이 참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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