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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 평양 지역 신종 코로나 봉쇄 대폭 완화...민생 위기 따른 불가피한 조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스크를 쓴 채 평양 시내 약국을 방문한 모습이 지난달 16일 한국 서울 시내 철도역 TV에서 방송되고 있다. (자료사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스크를 쓴 채 평양 시내 약국을 방문한 모습이 지난달 16일 한국 서울 시내 철도역 TV에서 방송되고 있다. (자료사진)

북한이 하루 10만명 안팎의 신규 발열자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평양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정책을 완화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봉쇄 장기화로 위기에 처한 민생 때문에 내려진 불가피한 조치라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빌어 북한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취했던 전면적인 주민 이동 통제 등 강력한 봉쇄정책을 평양 지역에서 크게 완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29일부터 평양의 경우엔 종합시장, 옥류관을 포함한 식당, 공공기관이 모두 문을 열었다고 하고요. 그동안 이동 통제 결정 이후에 평양과 국제전화가 안됐어요, 교환원들이 출근을 안해서. 그러나 29일 이후엔 평양과 단둥간 국제통화가 된다고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평양의 경우 일상적 코로나 통제를 제외하고 긴급하게 내려졌던 이동 통제는 대부분 해제된 것으로 보여지고요.”

조 박사는 평양 이외의 지역에선 상당 수준의 이동 통제를 유지하고 있고 식량 구입 등과 관련해 일부 통제를 풀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소집한 당 정치국 협의회에서 방역 완화를 시사한 바 있습니다.

이 회의에서 전염병 전파 상황이 안정되는 추세에 맞춰 방역 규정과 지침들을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최근 악성 비루스 감염자가 연일 감소되면서 나라 방역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당과 국가 방역정책의 정당성, 효율성, 과학성이 안아온 응당한 결실”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확진 의심자인 발열자는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지난달 15일 39만2천920여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만명 대를 유지하다 지난달 말부터 10만명 안팎을 오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6시부터 하루 동안에도 9만3천180여명의 신규 발열 환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누적 사망자는 70명이라고 주장했고, 이 주장대로라면 치명률은 0.002%에 불과합니다.

지난달 12일 신종 코로나 확진자 발생을 처음 공개한 뒤 사태 발생 초기엔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의 봉쇄형 ‘제로 코로나’ 정책을 본받자고 밝혔지만, 아사자 발생과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을 우려해 사실상 ‘위드 코로나’로 선회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지금 북한 내부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코로나보다 굶어죽게 생겼다, 코로나 환자보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결국 단 하루밖에 식량 구입할 시간을 주지 않고 두 달간 이동 통제를 결정했기 때문에 민심이 상당히 위험한 수준까지 흐르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방역 성공이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강요된 이동 통제 완화다 이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네요.”

이와 함께 북한에선 대규모 인력 투입과 접촉이 불가피한 건설 부문 활동도 본격화하는 양상입니다.

‘노동신문’은 31일 ‘농촌 살림집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건설 현장에 투입된 각 지역 주민들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노동신문’은 황해북도와 강원도, 함경남도, 남포시 등에서 철저한 방역을 전제로 건설자재 적기 생산과 공급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 감염병 전문가들은 북한이 공개한 발열환자 규모와 비교해 사망자가 너무 적다며 북한 통계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북한에서 신종 코로나 유행이 시작된 지 3주를 넘기고 있다며, 지금이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시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북한의 봉쇄 완화가 위기에 처한 민생을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이지만 백신 접종 같은 의료적 대책 없이 봉쇄를 풀면 향후 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녹취: 이재갑 교수] “완화를 해서 유행이 다시 커지면 또 봉쇄를 해야 하는데 그 때 봉쇄가 가능할까, 그러니까 하던 것을 멈췄다가 다시 하는 게 반발이 훨씬 심하거든요, 계속 하는 거 보다. 북한체제라고 하더라도 만약 살짝 풀었다가 유행이 커져서 문제가 되면 왜 풀었냐는 민심 동요도 있을 수 있고 이런 상황이 될 수 있어서 지금 백신 접종 없이 완화를 하는 부분은 상당한 리스크를 갖고 하는 거라는 거죠.”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당초 봉쇄형 방역정책은 엄청난 비용은 물론, 주민 생계를 유지시킬 사회안전망과 의료 인프라 같은 고도의 체계가 갖춰져야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엄 교수는 북한이 지난 3주 가량 봉쇄정책을 편 결과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정 정도 주민 희생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바꿨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엄중식 교수] “억제전략을 유지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고 아주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비용이나 특히 중환자 대응체계가 거의 전무한 북한에선 어쩌면 3,4주 이상을 최선을 다해서 억제를 했지만 이게 안 되겠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망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감수하고 유행이 그냥 제 갈 길을 가는 상태에서 마무리되기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체제의 속성상 북한 당국이현재의 신종 코로나 유행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수백만명의 아사자를 낳았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경험한 때문에 북한 당국이 지금 상황을 큰 위기로 인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90년대의 대식량 위기에서도 수많은 북한 주민들의 인명이 손상됐는데 그 당시에도 체제 보위라는 쪽으로 선택을 했단 말이죠. 이런 기본적인 사고 틀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지금 코로나 상황 자체가 심각한 상황으로 가더라도 이걸로 자신들의 체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라는 거에요.”

김 전 차관은 북한 당국이 오히려 현 상황을 김정은 위원장의 영도력을 선전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신종 코로나 대응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부각하면서 납득할 수 없는 발열자와 사망자 수 발표를 통해 이를 김 위원장의 치적으로 포장해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다는 겁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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