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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백마와 김경희: 북한의 이미지 정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눈 덮인 백두산에 올랐다며 지난 2019년 10월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마를 타는 장면이 기록영화에 등장했습니다. 또 김일성 주석의 딸인 김경희가 2년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북한 당국이 왜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 것인지, 최원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1월 1일 방영한 기록영화 ‘위대한 승리의 해 2021’은 백마에서 시작해서 백마로 끝납니다.

1시간 45분 분량의 이 기록영화의 첫 장면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백마를 타고 지켜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입니다.

[녹취: 중방] “시련은 유례없이 엄혹했어도 위대한 승리를 안아온 잊을 수 없는 2021년이여!”

영화 맨 마지막에도 백마를 타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나옵니다.

김 위원장이 백마를 타고 숲 속을 빠른 속도로 달립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이 조용원 당 조직비서, 부인 리설주 씨,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 현송월 부부장과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도 나옵니다.

한국이나 미국 등 외부 사람들에게 이런 장면은 단순히 북한의 지도자가 말을 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런 장면을 통해 주민들에게 ‘백두혈통’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주입시킨다고 탈북민들은 말합니다.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조충희 굿파머스 소장입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김일성의 이미지 중에 백마와 관련된 것이 많거든요. 회고록을 보면 백마에 대한 추억도 있고, 백마를 좋아하고, 김일성의 혈통을 강조하기 위해 백마를 탄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같습니다.”

백마는 북한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투쟁 당시 백마를 타고 지휘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정일과 김정은 모두 백마를 타는 모습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한편 자신의 권력 정통성을 강조해왔습니다.

특히 지지 기반이 약했던 김정은은 백마를 타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첫 해인 2012년 11월 백마를 타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나 내부 분위기가 침체됐던 2019년 12월에도 백두산에서 백마를 타는 모습을 공개하며 내부 결속을 다졌습니다.

북한의 이미지 정치는 백마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 1일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음력 설 명절 경축공연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리설주 뒤로 나이가 지긋한 한 여성이 지나갔습니다. 김 위원장의 고모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 김경희였습니다.

지난 2013년 남편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모습을 감췄던 김경희는 2020년 설 기념 공연을 통해 6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두문불출하다가 2년 만에 또다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이는 백두혈통의 원로인 김경희를 등장시켜 정권의 정통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라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고령의 김경희가 등장한 이유는 김정은이 이미지 정치에 동원한 거죠. 김경희가 등장할 때도 김정은에게 각별한 예의를 표하는 것을 보면, 백두혈통 안에서도 뿌리라는 것을 연출한 거죠.”

워싱턴의 원로 한반도 전문가인 한미연구소 래리 닉시 박사는 북한 당국이 이렇게 백두혈통과 지도자의 권위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내부 민심이 나쁘다는 얘기라고 말합니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 사태로 고립된데다 물자난과 전력난이 계속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래리 닉시 박사] ”Obviously the dire economic condition people know…”

실제로 북한 주민들은 겉으로 표출을 못해서 그렇지 코로나 사태와 국경 봉쇄로 인한 경제난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선 물가난이 심합니다. 2020년 1월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북한 경제의 생명줄인 북-중 무역이 끊기면서 설탕과 식용유같은 생활필수품이 들어오지 않자 장마당 물가가 급등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은 1kg 당 6천원 대였던 설탕 가격이 2만7천원으로 올랐고, 1만6천원이던 조미료는 7만5천원으로 4배 이상 급등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중순 북-중 화물열차 운행이 재개됐지만 물가는 여전히 비싼 편이라고 조충희 소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밀가루, 설탕, 식용유가 거의 열 배씩 뛰고, 가격이 내리지 않고, 중국에서 물건이나 자재를 들여와 옷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 못하게 돼서 시장이 위축된 것이 주민 불만의 첫 번째죠.”

북한 당국은 2020년 10월을 기해 외화 사용도 금지했습니다. 그러면서 1달러에 8천원이었던 환율을 인위적으로 4천-5천원으로 통제했습니다.

그러자 평소 달러와 위안화로 쌀을 사먹던 사람들은 구매력이 떨어졌습니다. 전에 1 달러를 주면 2kg의 쌀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1 달러에 쌀 1kg 밖에는 살 수 없게 된 겁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쌀 가격이 오히려 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환율이 떨어져서 그렇지 달러로 계산하면 전보다 쌀값이 많이 올라갔습니다. 전보다 올랐습니다."

경제난은 일반 주민들뿐 아니라 당 간부들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당 간부들은 장마당 상인 또는 돈주들과 ‘먹이사슬’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 간부의 월급은 5천-1만원에 불과해 이 돈으로는 장마당에서 쌀을 1-2kg 밖에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 간부와 보위부원, 검찰, 안전원, 군 장교들은 생활을 위해 상인과 돈주들에게 뇌물이나 뒷돈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국경 봉쇄로 장마당 상인과 돈주들도 장사가 안된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당 간부들도 쪼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사태가 이런데도 북한 당국은 경제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북한 관영 TV와 신문은 매일같이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결정된 과업을 ‘무조건성’’철저성’, ’정확성’의 원칙에 따라 이행하라고 주민들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북한을 오래 관찰해온 조한범 박사는 김정은 위원장은 권력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권위를 세우려면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선대, 할아버지(김일성)는 정치적 카리스마와 권위, 항일 빨치산이라는 자산이 있었고, 공업화 산업화를 이뤘고, 또 아버지 김정일은 20년 이상 권력승계를 준비해 기반이 탄탄했는데, 김정은의 경우 20대 약관의 나이에 집권한데다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권위를 인정받을 만한 성과가 아무 것도 없는 셈이죠. 그러니까 이미지 정치에 의존하는 것이죠.”

집권 10년차가 됐지만 경제난으로 인해 김정은 위원장의 권위는 한참 실추돼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백두혈통을 내세워 자신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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