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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거부권으로 유엔 대북 제재 약화…대러 관계 악화 속 한국 내 강경 대응 목소리


나란히 펄럭이는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 (자료화면)
나란히 펄럭이는 북한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 (자료화면)

러시아가 거부권을 통해 유엔의 대북 제재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면서 한러 관계가 한층 나빠지는 양상입니다. 한국 내 일각에선 러시아에 대한 보다 강경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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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을 표결했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임기 연장이 무산됐습니다.

북한의 불법적인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맞서 유엔 회원국들의 대북 제재 이행을 감시하고 독려하던 전문가패널 활동이 사라지게 된 겁니다.

북 핵 위협의 직접 당사국인 한국은 러시아에 독자 제재 카드를 꺼냈습니다.

지난 2일 북러 간 군수물자 운송, 북한 노동자 대러 송출 등에 관련된 러시아 선박 2척과 기관 2곳, 그리고 개인 2명에 대해 독자 제재를 가했습니다.

러시아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지난 3일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이 러시아 시민과 법인에 제재를 도입한 것은 비우호적 조치”라며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고 러시아도 이에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미국 등 서방과의 대립이 심화된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상당히 높아졌다며, 유엔의 대북 제재 감시를 느슨하게 한 러시아의 조치는 한국에 위협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신냉전이 더욱 고도화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선 북한과 러시아 입장에선 좀 더 국제사회 감시를 피해서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북러 간 군사협력도 더 가속화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렇게 봐야겠죠.”

한러 관계는 러시아가 앞서 지난 2022년 3월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면서 냉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월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이 비공개로 방한해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을 만나면서 관계 개선 조짐이 보였지만 러시아의 유엔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임기 연장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계기로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장면. (자료사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장면. (자료사진)

임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개 상황과 장기화 여부, 오는 11월 미 대선 결과 등 변수들이 있지만 신냉전 구도 아래 진행되고 있는 북러 밀착 강화는 한러 관계 악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러시아의 이번 거부권 행사는 북한 핵 개발을 제어하기 위한 대북 제재에 구멍을 낸 조치라며 한국으로선 일정한 선을 넘은 행동으로 여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으로선 실존적 위협이 더 커졌고 북한을 비핵화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는 한층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박 교수는 반면 러시아의 이런 행동은 자국의 이익에만 맞으면 북한에 미그29 전투기나 지대공 미사일을 제공하거나 더 위험한 첨단무기 기술까지도 지원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최첨단 무기 기술 그런 것은 러시아가 그동안 한 번도 제공하지 않았던 것들이거든요. 아마 그런 자국의 이익을 계산해서 북한에 대한 지원을 결정할 것이지 국제사회나 한국의 반발 등 그런 걸 고려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게 우리가 봐 왔던 러시아 행태라고 보는 게 맞겠죠.”

러시아에 대한 독자 제재나 외교적 압박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박사는 러시아가 한국에 적대적으로 나오고 있다며, 북러 간 밀착이 맹방관계로까지 가기 전에 경고 메시지를 보다 분명하게 내놔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양 박사는 그런 방안으로 러시아가 가장 위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천궁2 같은 방어 성격의 무기부터 시작해서 비공개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이 개발한 천궁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자료사진)
한국이 개발한 천궁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자료사진)

[녹취: 양욱 박사] “드러나지 않는 형식으로 최소한 방어적 성격의 무기체계들을 우크라이나에 어떤 형식으로든 보급해서 활용될 수 있게 하는 게 필요하지 않겠느냐 라는 거죠.”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지금 쓸 카드가 아니라고 신중론을 폈습니다.

조 박사는 러시아가 전문가패널 활동을 중단시킨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쓸 탄약 등을 제공하고 있는 북한과 거래를 해야 하고 이 때문에 제재 위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일 수 있다며,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를 향후 북러 군사협력의 질적 변화를 예고하는 행동으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이번 전문가패널 종료를 통해서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협력을 전략적으로 한 단계 고양시킨다 그렇게 볼 순 없고요, 이게 임계점을 넘어간 한러 관계, 북러 관계 그런 상황은 아직은 아니다 두고 봐야 한다 그렇게 볼 수 있어요.”

한국 정부는 앞서 러시아에 대한 독자 제재를 발표하면서 이 조치가 “북러 간 불법 무기 거래에 대한 대북 제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북러 협력을 경계하면서도 여전히 한러 관계를 관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한편 한국 해경은 지난달 30일 전남 여수 인근 해역에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를 위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무국적 선박을 나포했고, 미한 당국이 함께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천t급의 이 화물선은 지난달 말 북한 남포항을 출발해 중국 산둥성 스다오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선박 조사 결과 북러 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위반되는 거래가 있었다는 정황이 나올 경우 한러 관계에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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