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남북 정상 친서 교환...전문가들 "김정은, 한국 새 정부 대북 강경책 견제 메시지"


문재인(왼쪽)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자료사진)
문재인(왼쪽)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자료사진)

퇴임을 앞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남북 정상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친서를 주고 받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한국의 윤석열 새 정부에 대북 강경책을 견제하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담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고 김 위원장은 이튿날인 21일 답신을 보냈습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오전 브리핑에서 이같은 친서 교환 사실을 밝혔고 북한은 이에 앞서 이날 새벽 대외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박 대변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친서에서 “아쉬운 순간들과 벅찬 기억이 교차하지만 김 위원장과 손을 잡고 한반도 운명을 바꿀 확실한 한 걸음 내디뎠다고 생각한다”며 “판문점선언, 평양 9·19 선언 등이 통일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무력도발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은 “대화로 대결의 시대를 넘어야 한다”며 “미-북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퇴임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문 대통령은 “대화 재개는 다음 정부의 몫이 됐다”며 “김 위원장도 한반도 평화의 대의를 갖고 남북대화에 임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위원장은 답신에서 문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선언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이 “희망한 곳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역사적 합의와 선언을 내놓았다”며 “이는 지울 수 없는 성과”라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녹취: 박경미 대변인] “여지껏 기울여온 노력을 바탕으로 남과 북이 계속해 진함없이 정성을 쏟아 나간다면 얼마든지 남북관계가 민족의 기대에 맞게 개선되고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 변함없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만 이 소식을 실었고 대내 매체인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선 다루지 않았습니다.

다음달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이번 친서 내용에 대해 “새 정부에서 듣기를 바라는 내용도 제법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습니다.

권 후보자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 신뢰나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며 “그런 부분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여러 번 만났으니 임기 말에 친서를 교환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고도 했습니다.

남북 정상은 김 위원장이 2018년 2월 청와대를 방문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수시로 친서를 교환해왔습니다.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2020년 6월 북한의 일방적인 통신선 차단으로 남북 간 대화가 사실상 끊긴 와중에도 남북 정상은 친서 소통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친서에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데 따른 우려가 반영된 대목입니다.

‘도발을 중단하라’는 명확한 표현을 담진 않았지만 사실상 도발 자제를 김 위원장에게 당부한 것이라는 게 청와대 설명입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계속되고 풍계리 핵실험 준비 활동도 있다”며 “상황 변화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김 위원장이 친서를 통해 평화 제스처를 취한 것은 이미 세워 놓은 국방력 강화 계획에 따른 추가 도발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자기들은 이미 계획이 있을 거에요. 추가적인 국방력 강화 계획이라든지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응하기 위한 것. 거기에 대한 명분쌓기용일 수도 있겠다, 자기들은 이런 입장인데 미국과 한국이 먼저 대결적 행동을 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이렇게 대응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명분쌓기용 그런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어요.”

북한이 전술핵무기 개발을 노골화하면서 김여정 당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 한국을 겨냥한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친서 내용이 적절했느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한국 민간 연구기관인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따뜻한 안부 인사’를 보낸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라며 핵실험은 절대로 안 된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보냈어야 의미 있는 친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이번 친서 교환은 기본적으로 남북 정상 간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지만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윤석열 차기 정부를 향한 간접적인 메시지도 담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한편으로 대미 대남 압박 멈추지 않겠지만 그러나 본인들도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는, 윤석열 정부와 긴장국면으로 가고 싶지 않다는 그런 의중을 내보인 측면도 있다고 보여지고요.”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보다 강경한 대북정책이 예상되는 윤석열 정부에 간접적으로 압박과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정성장 센터장은 북한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의 정상 합의에 대해 언급도 안할 만큼 의미를 두지 않았다며 김 위원장의 이번 친서 내용엔 한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을 놓고 남남갈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센터장]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친서 내용을 한국 청와대와의 사전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퇴임 후에도 남북 정상선언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북 화해 메시지와 북한을 ‘주적’으로 간주하면서 대북 선제타격까지 고려할 것이라고 언급한 윤석열 당선인의 대북 강경 입장을 대조시킴으로써 한국사회의 남남갈등을 촉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 센터장은 북한이 친서 내용을 일반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싣지 않고 대외 매체에만 공개한 것도 한국을 겨냥한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