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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로힝야족


지난해 12월 로힝야 난민들이 소형 보트를 타고 인도네시아에 도착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이번 주, 미국 정부가 미얀마에서 자행된 소수민족 로힝야족 탄압 사건은 ‘집단학살’에 해당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로힝야족 인권 탄압을 집단학살이라고 규정한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국제사회의 미아가 되고 있는 로힝야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무국적자들”

로힝야족은 국적이 없습니다. 1982년 미얀마 정부가 로힝야족의 시민권을 박탈하면서 이들은 무국적자가 됐습니다.

로힝야족도 1948년 미얀마가 영국에서 독립했을 때는 시민권이 부여됐고 투표권도 있었습니다. 1950년대 치러진 총선에서는 로힝야족 출신 국회의원이 배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62년 쿠데타로 출범한 네윈 군사 정권은 불교식 사회주의를 내세워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 배척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1982년 급기야 이들에게 부여했던 시민권마저 박탈하면서 로힝야족은 어느 국가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사실상 무국적자가 됐습니다.

“로힝야족의 뿌리”

로힝야족은 고대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아랍인들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고, 고유한 언어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따로 나라가 없었던 이들은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태국,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지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아왔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로힝야족은 약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로힝야족은 특히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집단 거주해왔는데요. 미얀마 군부의 본격적인 탄압이 있기 전까지 라카인주에 거주한 로힝야족은 약 110만 명 정도였습니다.

로힝야족들은 7세기경 자신들의 선조인 아랍 상인들이 이 지역에 처음 정착했으며,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지금까지 살고 있는 소수민족으로서, 미얀마 국민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인식 차”

로힝야족을 바라보는 미얀마인들의 역사적 인식은 로힝야족의 주장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얀마는 130개 넘는 종족으로 구성된 다인종 국가입니다.


종교도 불교를 믿는 버마족이 다수이기 때문에 불교를 신봉하지만, 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나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와 사회는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에 대해서는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로힝야족’이라는 용어 자체도 거부해왔습니다.

미얀마는 이들을 자국에 불법 입국한 벵골족, 방글라데시인으로 간주해왔습니다.

이런 갈등의 뿌리는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당시 인도도 식민 지배하던 영국은 미얀마를 인도의 한 주로 편입시켰고 이주를 장려하면서, 인도 벵골 일대에서 이슬람교를 믿던 무슬림들이 라카인주로 대거 유입됐습니다.

미얀마는 이들이 로힝야족의 조상들, 즉 방글라데시인들이기 때문에 소수민족이 아니라 미얀마에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는 이주자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방글라데시는 인도 동벵골 일대에 살던 무슬림들이 인도에서 독립한 파키스탄에서 다시 독립해 세운 나라입니다.

“갈등과 탄압”

영국에서 독립한 후, 미얀마에서 나름대로 공존하던 로힝야족이 탄압의 표적이 된 건 1962년 네윈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불교식 사회주의를 내세운 네윈 군사 정권은 로힝야족이 영국 식민 시대의 잔재라고 주장하며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들은 교육과 취업이 제한되고, 주거 이동 등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가 박탈된 채 라카인 지역에서 빈민들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수십 년간, 버마족 등 라카인의 다른 주민들과 로힝야족 사이에는 크고 작은 갈등과 폭력이 계속돼 왔습니다.


2012년에는 로힝야족 남성이 미얀마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불교 승려들을 중심으로 한 미얀마인들이 이들의 거주지를 습격해 유혈충돌로 비화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미얀마 정부에 불만을 품은 로힝야족 급진 무장조직까지 등장하면서 로힝야 민간인들의 고난은 더 심해졌는데요.


로힝야 무장조직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은 종종 관공서를 습격하고, 정부군이나 현지 주민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고,미얀마 정부군은 번번이 토벌 작전에 나섰습니다.


미얀마 정부는 아라칸로힝야구원군이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IS 등 테러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7년의 대참극”

2017년 8월 25일, 아라칸로힝야구원군이 라카인주의 경찰 초소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미얀마 정부군은 즉각 대테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라카인주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토벌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미얀마 정부군은 무장조직 토벌에 그치지 않고, 민간 로힝야족들이 거주하는 집을 방화하고, 살인과 폭행, 강간 등 인권 유린 행위를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제 인권 단체 ‘국경없는의사회’ 보고에 따르면, 8월 25일부터 9월 24일까지 사망한 로힝야족이 최소한 9천 명이 넘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미얀마군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 등 이웃 나라로 탈출했는데요. 2017년 이후 라카인을 떠난 로힝야족은 7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미얀마 정부군이 로힝야족을 말살하려는 이른바 ‘인종청소’를 자행하고 있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당시 미얀마 정부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던 아웅산 수치 국가 고문이 실질적으로 이끌었는데요. 수치 고문도 로힝야족이라는 용어 사용을 거부하고 군의 행동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일관하면서, 암묵적 동의 내지는 방관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군부 쿠데타 후 로힝야족의 운명”

현재 로힝야족 문제는 아무런 해법도 찾지 못한 채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아웅산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간 정부가 전복되고, 군부가 들어서면서 미얀마 정국은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치 고문은 실각해 부패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지금 미얀마를 이끌고 있는 쿠데타의 주역 민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2017년 라카인주 진압을 지휘한 인물 가운데 1명입니다.

이 때문에 로힝야족 문제는 더 비관적이라는 전망입니다.

현재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에는 로힝야족 학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소송이 제기돼 있습니다.

이슬람협력기구(OIC)를 대표해 아프리카 국가 감비아가 제기한 건데요. 하지만 재판을 개시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도 수개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3월 21일,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군의 탄압이 집단학살에 해당한다고 공식 규정했는데요.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압박과 함께,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자행되고 있는 러시아의 전범 혐의와 관련해 국제재판소 회부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

뉴스 속 인물: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테슬라 CEO

최근 뉴스의 화제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주인공은 미국 민간우주선 개발업체 ‘스페이스X’와 전기자동차회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입니다.

3월 22일, 독일 브란덴부르크에 테슬라 공장이 문을 열었습니다.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첫 유럽 공장입니다.

일론 머스크 CEO는 기념식에 참석한 관계자들, 고객들 앞에서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일론 머스크 CEO는 일반적인 세계적인 기업 총수와는 매우 다른 이미지의 기업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를 이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또는 괴짜라고 부릅니다.

일론 머스크 CEO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캐나다, 미국의 3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복수 국적자입니다.

그는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모델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요. 남아공의 백인인 아버지는 한때 광산을 소유했을 만큼 상당히 부유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과학과 컴퓨터에 흥미가 많았던 그는 독학으로 컴퓨터를 통달해 12살 때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팔 정도로 소질을 보였습니다.

또 학창 시절,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니체와 쇼펜하우어 등 사상가들의 책에 심취하기도 했는데요. 몸도 허약하고 생각이 많았던 그를 주변 친구들이 종종 괴롭혔다고 합니다.

당시 남아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정책)으로 인종 간의 갈등이 깊었는데요. 이런 사회적 풍토에 회의를 느낀 그는 남아공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캐나다 국적자인 어머니 덕에 캐나다 시민권을 갖게 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혼자 캐나다로 이주해 온타리오 퀸스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미국 명문 펜실베이니아대학교로 옮겨, 물리학과 경제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에 들어갔는데요. 하지만 이틀 만에 자퇴하고, 서부 실리콘 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합니다.

이후 그는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오늘날 세계적인 전산 결제 시스템인 ‘페이팔’의 전신 ‘엑스컴’을 설립하고, 화성 탐사를 꿈꾸며 민간 우주선 개발기업 ‘스페이스X’를 설립하는가 하면,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를 세계적인 자동차 대열에 올려놓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기행과 돌출 발언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은 적도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론 머스크 CEO가 국제 사회의 찬사를 받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바로 러시아의 침공으로 통신이 파괴된 우크라이나를 위해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이 지원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은 통신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군이 작전을 전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뉴스 따라잡기 이 시간에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관해 알아봤고요. 뉴스 속 인물로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에 관해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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