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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납북자 516명 중 18명 상봉...생사확인 시급


1972년 12월 서해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오대양 61호 선원 박양수 씨(오른쪽)와 동생 박양곤 씨가 20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장소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
1972년 12월 서해에서 홍어잡이를 하다 납북된 것으로 알려진 오대양 61호 선원 박양수 씨(오른쪽)와 동생 박양곤 씨가 20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장소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울고 있다.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는 2명의 납북자가 남측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500여 명의 납북자 가운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가족을 만난 사람은 18명뿐입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 1974년 서해에서 조업을 하다 납북된 오대양호 선원 형 박양수 씨, 42년 만에 남쪽에 사는 동생 양곤 씨를 만났습니다.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본 형제는 부둥켜 안고 재회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최선득 씨도 납북 어부인 동생 영철씨를 만났습니다.

동생 영철씨는 1974년 백령도 인근에서 수원 33호 어선에서 조업 중 납북됐습니다.

형 선득씨는 동생의 얼굴이 40년 전 그대로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북한에 의한 전후 납북자는 현재 516명, 지난 2000년 11월 제2차 이산가족 상봉부터 한국군 포로와 함께 특수 이산가족 형태로 2~3명씩 포함돼 남측 가족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상봉을 포함해 남측의 가족을 만난 납북자는 18명에 불과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북한에 전후 납북자 516명과 500여 명의 한국군 포로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에 나선 납북자의 3분의 1은 1987년 납북된 동진 27호 선원들입니다.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북한으로 끌려간 동진 27호 선원 12명 중 6명이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 남측의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갑판장 강희근 씨는 2000년 제2차 상봉에서 남쪽의 어머니를 만났고 2003년 8차 상봉 때 선원 김상섭 씨 역시 어머니를 만나는 등 동진 27호 납북자들은 5차례 상봉장에 나왔습니다.

1977년 납북된 일본인 요코다 메구미 씨의 남편 김영남 씨도 2006년 6월 상봉에서 28년 만에 어머니와 누나를 만났습니다.

김씨는 1978년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전북 군산 선유도 해수욕장에 놀러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으며 북한에서 메구미 씨와 결혼했습니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직 생사확인 조차 안된 납북자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들의 생사확인을 먼저 확실히 해줄 것을 북한 당국에 요구했습니다.

[녹취: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이렇게 하면 안되죠. 이게 천륜이거든요. 이걸 가지고 남북한이 서로 이용하면 안돼요. 이 민족의 한인 이산가족과 납북자, 국군 포로 생사 확인을 분명히 북한한테 요구를 해야 돼요.”

한국군 포로는 2000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12명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참여했지만 이번에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한상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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