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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50개 주: 워싱턴주 1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시내 전경.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시내 전경.

진행자: 미국의 혁신과 문화, 그리고 미국 50개 주까지, 다양한 미국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USA’입니다. 김철한 기자와 함께합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기자: 오늘은 미국의 북서쪽 끝에 있는 울창한 침엽수림과 첨단 혁신의 고향, 바로 워싱턴(Washington)주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워싱턴주의 주도는 올림피아(Olympia)지만, 인구 면에서 가장 큰 도시는 시애틀인데요. 시애틀 하면 다들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탄생한 곳, 또는 '비 내리는 낭만의 도시'를 떠올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도시의 이름 뒤에 원주민의 숭고한 역사가 숨어 있다면서요?

기자: 그렇습니다. '시애틀(Seattle)'이라는 이름은 1850년대, 이 지역 원주민 두와미시·수쿼미시 부족의 지도자였던 시애틀 추장(Chief Sealth)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가 땅을 내놓고 보호구역으로 떠나라고 압박할 때, 그는 "어떻게 빛나는 공기와 대지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라는 역사적인 평화 연설을 남겼습니다. 백인 개척자들도 그의 품격과 지혜에 감화되어 도시 이름을 '시애틀'로 지었는데요. 즉, 워싱턴주의 출발점은 대자연을 경외하던 원주민의 숭고한 정신과 상생의 약속 위에 세워진 셈입니다.

진행자: 도시 이름부터 자연과의 공존을 담고 있군요. 그런데 시애틀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날씨’입니다. 연중 내내 내리는 부슬비가 오히려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를 키워냈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시애틀 연안은 1년에 200일 이상 흐린 날씨를 보입니다. 이슬비도 자주 내리는데요. 날씨가 춥고 축축하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뜻하고 아늑한 실내로 모여들었죠. 스타벅스는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습니다. 단순히 커피 원두만 파는 가게가 아니라, 집도 직장도 아닌 편안한 '제3의 공간(Third Place)'을 제공하며 손님들의 체류 시간을 늘렸습니다. 궂은 날씨가 만든 외로움과 갈증을 따뜻한 사교 공간으로 전환한 것이 글로벌 스타벅스 신화의 진짜 비결입니다.

진행자: 날씨의 한계를 이용한 맞춤형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군요? 그렇다면 태평양 바다를 낀 워싱턴주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대표 음식 문화는 어떤가요?

기자: 태평양의 차가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연어(Salmon)'와 손바닥보다 큰 '던전네스 게(Dungeness Crab)'입니다. 시애틀의 명소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에 가면 상인들이 은빛 연어를 공중으로 휙휙 던지며 손님과 흥정하는 명장면을 볼 수 있는데요. 이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어부와 소비자가 부둣가에서 바로 만나는 미국 초기의 ‘산지 직거래' 유통 모델의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쌀쌀한 날씨에 속을 데워주는 뜨끈한 조개수프(클램차우더∙clam chowder)와 로컬 수제 맥주 역시 워싱턴주 골목 상권을 떠받치는 든든한 먹거리 산업입니다.

진행자: 먹거리뿐만 아니라 1990년대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록 음악의 고향이기도 하죠?

기자: 맞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밴드 '너바나(Nirvana)'로 대표되는 그런지 록(Grunge Rock), 일명 '시애틀 사운드'의 성지입니다. 연중 우중충한 날씨에 당시 지역 공장들의 불황까지 겹치면서 청년들이 겪던 불안과 고독이 거친 기타 소리로 터져 나온 건데요. 화려한 팝 음악을 거부하고 로컬 인디 레이블 '서브 팝(Sub Pop)'을 통해 터져 나온 이 반항의 목소리는 전 세계 패션과 청년 문화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로 자리를 굳히게 됐습니다.

진행자: 흥미롭네요. 그런데 요즘 시애틀의 젊은 세대는 그 90년대 ‘그런지 정신’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면서요?

기자: 네, 바로 '지속 가능한 빈티지 중고 거래’ 열풍입니다. 과소비와 빠른 소비 패션을 거부하고, 너바나가 입던 낡은 체크 남방이나 구멍 난 청바지 같은 빈티지 아웃도어를 중고 가게에서 찾아 입는 문화가 일상화되었습니다. 비싼 브랜드 유통 비용을 걷어내고 지역 빈티지 마켓에서 자원을 순환시키는 이 착한 소비는, 90년대 청년들의 반항 정신이 현대의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경제로 진화한 사례라고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진행자: 듣고 보니 워싱턴주의 문화는 결핍을 낭만으로 바꾸는 힘이 있네요. 혹시 이곳 주민들의 또 다른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나 놀이 문화가 있을까요?

기자: 네, 바로 비가 와도 절대 우산을 쓰지 않는 '노 우산(No Umbrella)' 문화와 '주말 와포도주 양조장(Winery) 투어'입니다. 시애틀 사람들은 이슬비가 내려도 우산 대신 아웃도어 바람막이 점퍼의 모자를 쓰고 묵묵히 걷습니다. 날씨를 피하지 않고 삶의 배경으로 받아들이는 건데요. 대신 주말이 되면 이 음산한 연안을 벗어나 차로 30분 거리인 우딘빌(Woodinville)이나 동부 분지의 거대한 와인 밸리로 향합니다. 워싱턴주는 캘리포니아에 이어 미국 내 2위의 와인 생산지거든요. 캘리포니아 와인이 화려하고 대중적이라면, 워싱턴주 와인은 뚜렷한 일교차 덕분에 깊은 산미와 우아한 풍미를 지녀 전 세계 와인 평론가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축축한 이슬비를 견디고, 주말에는 고급스러운 로컬 와인을 즐기며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워싱턴주 주민들의 숨은 힐링 공식입니다.

진행자: 네, 다음 주 워싱턴주 두 번째 소식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김철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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