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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문가들 “대북 백신 공급 시 엘리트 우선 등 차별 우려…‘성분 벽’ 뚫기 어려워”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실을 공개한 이후인 지난달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마스크를 쓰고 평양의 한 약국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 방문한 사진을 관영매체가 공개했다. KCNA via REUTERS.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실을 공개한 이후인 지난달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마스크를 쓰고 평양의 한 약국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 방문한 사진을 관영매체가 공개했다. KCNA via REUTERS.

북한에 코로나 백신이 공급될 경우 평양과 지방에 대한 고질적인 성분 차별 때문에 면역 체계가 약한 지방 주민들이 더 소외될 수 있다고 미국의 대북 보건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유엔 기구의 한 전직 북한 담당자는 대북 지원에 있어 성분 차별의 벽을 뚫는 게 큰 과제라며, 취약 계층에 접근하기 위한 적극적인 협상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국제 백신 공급 프로젝트 코백스 대변인은 지난 2일 VOA에, 중국이 제공한 코로나 백신이 북한에 들어갔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북한이 중국의 백신 제안을 받아들여 접종을 시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백스 대변인은 백신 종류와 규모, 시기 등을 확인하지 않았고 북한 당국도 이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지만, 미국의 전문가들은 사실일 경우 북한에서 공평한 백신 분배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북한 내 의료 상황에 정통한 북미 관계자는 3일 VOA에, 북한 당국이 어떤 종류의 백신을 수용했는지 등 여러 의구심이 있다면서도 “양질의 백신이 도입되면 평양의 모든 엘리트가 가장 먼저 백신을 맞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북미 관계자] “I'm sure once some good vaccines arrive in the country, all the elites in Pyongyang will be the first to get vaccines. As we all know, their number one priority is to maintain regime, not people… So, the outcome looks grim.”

북한 지도부의 최우선 순위는 그들이 선전하는 것처럼 ‘인민대중제일주의’에 따른 주민 우선이 아니라 김씨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는 암울해 보인다”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중국산 백신이 형편없다는 것을 북한 당국자들도 잘 알기 때문에 평양의 엘리트들은 미국의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원할 것”이라며, 백신을 냉장 보관할 인프라가 지방에 전혀 없는 현실도 일반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악재이자 차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사무소장은 3일 VOA에, “북한에 외부 지원을 할 때 모든 주민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지원이 이뤄졌는지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수 없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백신도 식량이나 다른 약품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There is always a risk when deliver outside assistance to DPRK of not being able to verify properly that the assistance goes to in a way that is best for the entire population. So vaccines are no different from food or other medicines.”

소바쥬 전 소장은 이런 배경에 북한의 고질적인 ‘성분 제도’가 있다며, “국제기구들은 북한의 성분제도를 뚫고 들어갈 수 없었고 성분에 따라 지원을 조정할 수도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녹취: 소바쥬 전 소장] “I must say for ‘성분’. Unfortunately, international agencies have never been able to penetrate that system and to tailor assistance according to this classification. And it is unfortunate, but I don't think that it has ever been possible to include the information, that kind of information, which is discriminatory. So that is a big problem,”

유엔이 보여주는 여러 보건 관련 지표들은 결핵을 비롯해 평양과 지방 주민들 사이에 복지와 건강 상태 등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여주지만, 과거 국제기구들은 지방의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북한 당국과 끊임없이 협상해야 했다는 겁니다.

소바쥬 전 소장은 북한 당국이 코백스에 백신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 배경에 이런 성분 차별에 따른 공급의 투명성 보장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코백스가 모든 백신 수혜국에 엄격한 분배 원칙을 요구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녹취: 소바쥬 전 소장] I don't think that COVAX will deliver vaccines without making sure of the distribution plan. You see UNICEF and WHO usually conduct the vaccination campaigns for other conditions and UNICEF and WHO monitor on the ground, the delivery of the vaccines. So I would imagine that it would be the same with COVID vaccine.”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가 백신 전달 체계에 있어 현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전제조건으로 삼듯이 코백스도 “이런 분배 계획에 대한 보장 없이 북한에 백신을 공급하진 않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코백스는 지원 대상국에 대해 코로나 대응 상황에 관한 데이터와 자료 요구, 공동 평가와 모니터링을 전제하고 있으며, 백신 할당에도 독립적인 할당 검증 그룹인 IAVG와 공동 할당 테스크포스인 JAT가 관여해 공급의 효율성과 투명성 확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과 한국 등 다른 민주주의 국가 정부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을 먼저 배려해 백신과 경제 지원을 하는 것과 같은 취지입니다.

국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공급 사업인 '코백스(COVAX)'가 지원하는 백신이 지난 5월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 공항에 도착했다.
국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공급 사업인 '코백스(COVAX)'가 지원하는 백신이 지난 5월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 공항에 도착했다.

북한의 보건 상황을 20년 넘게 연구한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의 코틀랜드 로빈슨 교수는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자신들의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의 우월성을 선전하면서 소수의 엘리트를 위해 주민들을 희생시키는 기만을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다는 “주체에 대해 말하는 많은 것이 오랫동안 거짓이었고, 이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경제와 의료 시스템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녹취: 로빈슨 교수] “The truth is, much of what they're saying about Juche has been a lie for a long time. We know this. it's not working, the economy is not working. The health system is not functioning. The government is basically a small group of authoritarian elite with full loyalty to the Kim regime, and the rest of the people suffer and they will suffer again. They suffered for decades and they'll suffer again. And even if we try, it is very likely to fail.”

로빈슨 교수는 “북한 정부는 기본적으로 김씨 정권에 전적으로 충성하는 권위주의적 엘리트들의 작은 집단이며 나머지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고통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지만, 과거와 같은 형태로 지원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습니다.

백신과 관련 의료품을 지원하는 것보다 북한 체제와 내부 시스템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로빈슨 교수는 앞서 VOA에, 북한 내 심각한 도농 격차, 지방 주민들에 대한 차별 문제를 과거 미국의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한국 영화 ‘기생충’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녹취: 로빈슨 교수] “Ryanggang is living in the basement and Pyongyang is up in the penthouse.

북한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양강도 주민은 지하실에 살고, 평양의 엘리트들은 고층의 고급 주택인 ‘펜트하우스’에 사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로빈슨 교수는 그러면서 북한 정권에 충성하는 핵심 계층에 보건·의료 지원을 집중하고, 동요나 적대 계층은 거의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에도 그대로 적용될 우려가 크다면서 저조한 영양 문제로 면역체계가 약한 지방 주민들이 코로나 감염에 훨씬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빈슨 교수] “Now there's more regional disparity, we're looking at some of the data health data and we're seeing ways in which whether it's vaccine coverage or other measures of malnutrition, that there's more disparities between Pyongyang and the rural area.”

하지만 북한 정부는 이런 차별이 국내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최초로 제출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국가 실행계획서에서 “북한은 모든 인민에게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포용에 대한 권리를 전적으로 제공”하며 “모든 활동 분야에서 인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핵심 중 하나인 ‘차별적인 법규, 정책, 관례 철폐, 이와 관련한 적절한 법, 정책, 활동을 증진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결과의 불평등을 감소시킨다’는 원칙과 의무를 북한은 그대로 준수하고 있다는 겁니다.

국제사회는 그러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최종 보고서에서 성분 차별의 심각성을 강하게 지적한 뒤 북한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은 채 차별 철폐를 거듭 촉구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아르헨티나, 독일, 호주 등 10여 개 나라는 지난 2019년 유엔 인권이사회가 주최한 북한에 대한 보편적 정례검토(UPR)에서 “소외되고 가장 취약한 계층까지 공공 배급이 이뤄지도록 확실히 보장할 것”, “가정 배경과 정권 충성도에 따라 주민을 차별하는 성분제도 등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체코)를 촉구했습니다.

독일은 특히 질문서에서 인도주의 지원이 차별 없이 일반 주민들에게 분배되고 이를 국제 기준에 따라 독립적으로 모니터링하는 방안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북한 정부는 수용 의사를 밝힌 132개 권고안 가운데 소외되고 가장 취약한 계층까지 공공 배급이 이뤄지도록 확실히 보장하라는 핀란드의 권고안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3년이 지난 현재 개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정부가 아닌 장마당에 의존해 그나마 식량과 약품 등 생필품 문제를 해결했던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제와 규제 강화로 이런 방식마저 거의 택할 수 없게 됐다며 그의 국정 운영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3일 VOA에, 김정은의 “코로나 발병 전에는 장마당 활동을 통해 얻던 충분한 식량과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 제한된 자유를 잃게 된 북한 주민들에게 이런 규제들은 훨씬 심한 박탈감을 초래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슨 부국장] “These restrictions have resulted in even worse deprivation for North Koreans who have lost access to adequate food, basic medical services, and the limited freedom that participation in the informal market system provided before Covid-19 hit. By cynically using the public health emergency of Covid-19 as an excuse, Kim Jong-un and his regime have plunged the country into a darker, more difficult place than any other time since he took power.”

로버트슨 부국장은 “코로나의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자신에게 유리한 핑곗거리로 삼으면서 김정은과 그의 정권은 그가 집권한 이후 어느 때보다 나라를 더 어둡고 힘든 곳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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