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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잇단 도발에도 북-중-러 연대 강화 움직임...북핵 둘러싼 신냉전 구도 현실화 가능성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접경인 중국 지린성 훈춘에 세 나라 국기 모양 안내판이 붙어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접경인 중국 지린성 훈춘에 세 나라 국기 모양 안내판이 붙어있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탄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맞선 북-중-러 삼각 연대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도 반대 입장을 밝혀 신냉전 구도가 차츰 현실화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7일 양회가 열리고 있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화상으로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 문제의 뿌리는 북한이 직면한 안보 위협이라면서 이에 대한 해결은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왕 부장은 “한반도 문제의 뿌리는 북한이 직면한 외부의 안보 위협이 장기간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면서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결하는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사실상의 미국 책임론을 거듭 주장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관련해선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면서 사실상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왕 부장은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중-러 관계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국제적 풍운이 아무리 험악해도 중-러는 신시대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끊임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왕이(화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내외신과 화상 기자회견하고 있다.
왕이(화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7일 베이징에서 내외신과 화상 기자회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7일 북한의 최근 탄도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비협조로 안보리 차원의 언론 성명 채택이 불발됐습니다.

북한은 올해에만 탄도미사일 11발을 쏘아 올리는 등 도발 수위를 높였지만 안보리는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로 아무런 대응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북-중 관계 전문가인 전병곤 선임연구위원은 미-중 전략 경쟁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미-러 간 갈등 격화라는 큰 구도 속에서 미국 등 서방세계에 맞선 북-중-러 연대가 국제무대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전병곤 선임연구위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그래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고 그러면 중국이 미국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당연히 중국과 러시아는 싫든 좋든 협력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북한과 중국 관계가 강화된 상태에서 거기에 러시아까지 협력하는 그런 구도로 점차 흘러가고 있고 중국의 기자회견에 대한 답변을 보면 역시 그런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초부터 잇단 미사일 도발과 함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에 대한 유예 즉 모라토리엄 파기를 시사한 북한은 최근엔 정찰 위성 개발을 명분으로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연이어 쏘면서 도발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북한은 또 영변 핵시설 재가동 징후를 노출하고 있고 북한이 지난 2018년 폭파했다고 선전했던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 포착되면서 핵실험 재개 조짐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은 중-러를 뒷배로 삼아 미국을 직접 위협하는 전략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는 조짐으로 보고 있습니다.

민간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전략 도발을 앞세운 북한 대미 압박이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서방간 대치전선이 유럽에 만들어진 현 상황은 대미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으로선 호재로 여길 것이라며 세 나라간 연대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유엔 차원의 규탄성명 채택 무산은 모라토리엄 파기를 시사한 북한이 ICBM 발사와 같은 전략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곤경에 처한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괴롭히는 북한의 전략 도발에 눈 감을 가능성이 크고 중국도 미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북핵 문제를 놓고 미국과 협력할 소지가 크게 줄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과거엔 ICBM급이나 핵실험에 대해서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제재에 동참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어요. 지금 러시아는 아마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대북제재에 동의 안 할 거고요. 중국도 제가 보기엔 이미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에 아마 기권을 하거나 이 정도지 대북제재에 적극 찬성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에요.”

김흥규 아주대학교 미중정책연구소장도 중국이 과거엔 북한의 ICBM 발사나 핵 실험을 자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간주했지만 미-중 전략 경쟁 구도가 심화되면서 중국의 선택이 유동적이 됐다고 진단했습니다.

김 소장은 북한의 전략 도발 조짐에 대한 미국의 대응 강도가 중국의 태도에 미칠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흥규 소장] “미국이 단호하게 대응할 준비가 돼 있으면 동아시아쪽으로 훨씬 군사력을 전개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을 단합시키는데 호재가 될 수 있고 미국이 국내정치 등 여러 문제로 인해서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기 보호주의적으로 갔을 땐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개입의지가 약화됐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그걸 갖고 북한을 압박하거나 그럴 동기는 사라지는 거죠.”

북-중-러 연대가 강화되는 흐름이 미-한-일 공조에 어떤 영향을 줄 지도 주목됩니다.

특히 북핵 문제를 푸는 해법으로 북한과의 대화 그리고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 관련국들과의 협력을 강조해 온 문재인 한국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차기 정부의 성격에 따라 미-한-일 대 북-중-러라는 동아시아에서의 신냉전 구도가 보다 선명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잇단 도발에도 그동안 ‘도발’이나 ‘규탄’이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지난 5일 북한의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해선 규탄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고 7일엔 북한의 불법행위를 규탄하는 유엔 11개국 공동성명에도 참여했습니다.

신범철 센터장은 북한이 도발의 강도를 높일수록 집권여당의 이재명 후보와 보수성향 제1야당의 윤석열 후보 중 누가 되든 미-한-일 연대가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면서도 양측이 추구하는 미-한-일 연대의 강도는 사뭇 다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북한의 도발 강도가 높아지면 문재인 정부 보다는 한-미-일 쪽에 한발 더 가까이 갈 수 밖에 없는 한국 국익이라는 제한 요인의 적용을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정부의 성격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고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면 북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좀 더 국제 공조에 힘을 쓰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해요.”

한국에선 9일 20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데 이재명 후보는 미-중 사이에서의 실용외교에, 윤석열 후보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방점을 두며 외교정책면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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