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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크라이나 탈출 강현창씨 "2~3일 전부터 민간인 포격"


지난 28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철도역에 우크라이나에서 이동한 피란민들이 도착하고 있다. (자료사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계속되면서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던 한인 대다수가 급히 우크라이나를 떠났습니다. 현지 가스 업체 임원으로 재직하며 10년 동안 우크라이나에 거주해온 강현창 씨도 최근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왔다고 하는데요. 강현창 씨의 우크라이나 탈출 과정, 그리고 현지 상황을 VOA가 직접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오택성 기자입니다.

강현창 씨 우크라이나 탈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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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처음에 헝가리로 갔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이동하셨나요? 키예프(우크라이나명 크이우)에서 헝가리까지?

강) 키예프(크이우)에서 지난 24일 새벽 다섯 시 반에 첫 포격이 있었습니다. 키예프(크이우) 시내에요. 굉음에 깨서 일어나 보니까 전쟁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전면전이 개시됐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오전 7시, 8시까지만 해도 큰 동요는 없었습니다. 도시에. 왜냐하면, 선제 정밀타격이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피해가 없었고요. 10시에서 12시 사이에 키예프(크이우) 인근 군사 공항에 러시아 전투 헬기 20대 정도, 그리고 러시아 전투기가 날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집 창문 앞에서 전투기를 봤고 그 이후에 공포감이 와서 짐을 싸고 24일 5시경에 차량으로 키예프(크이우)에서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인 리비브(우크라이나명 르비우)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차량 행렬이 엄청 많이 몰려있던 상황이어서 거의 20시간 넘게 해서 26일 아침에 서부 리비브(르비우)로 도착했습니다.

한국 대사관이 많이 도움을 주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리비브(르비우)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했습니다. 폴란드로 가는 임시 기차편이 생겼다고 해서 첫 시도를 했는데, 갑자기 난민도 많이 몰렸고, 또 기차편이 취소가 되는 바람에 출발을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 상황이 안 좋아졌고요. 리비브(르비우) 역에서 다시 숙소로 돌아온 이후에 상황을 보니까 기차역에 수천 명이 몰렸다는 기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차편은 막히고 육로로 가는 편밖에 없었는데, 우크라이나주재 한국 대사관이 유럽 인접국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국경수비대와 협력해서 헝가리로 가보자는 제안을 해줘서 이동하게 됐습니다.

이동하고 내비게이션을 켰는데. 11시 반까지 헝가리 국경에 도착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1시 반에 국경이 문을 닫아서. 그런데 내비게이션을 켜고 보니까 3~4일 걸려도 국경에 가지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차가 막혀서. 중간에 소위 말하는 ‘역주행’을 해서 길을 지나왔습니다. 이리저리 역주행을 하면서 가는 도중에 큰 사고도 여러 번 많이 날 뻔했고요. 어떻게 제시간에 도착해서 헝가리로 왔고요. 그리고 헝가리 대사관에서도 저희를 잘 맞아 줘서 부다페스트까지 차량으로 잘 이동했습니다.

기자) 헝가리에서 뮌헨으로 넘어가셨을 때 어떻게 가셨는지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강) 부다페스트에서 뮌헨으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어요. 그런데 독일 국경수비대라고 하죠. 국경수비대가 독일 국경을 넘을 때 기차 안으로 들어오더니, 여권 검사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왔냐고 물어서 “맞다”고 했더니 열차에서 내리게 하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잠깐 서류 준비할 게 있다고 그러면서 팔에 팔찌를 채우고 손에 지장 찍고 몇 가지 질문받고 왔습니다. 그러는 바람에 또 기차를 놓쳐서 한두 시간 정도 길에서 서 있었습니다.

기자) 헝가리에서 또 뮌헨으로 이동한 것은 어떤 것 때문이었나요?

강) 헝가리는 살면서 한두 번 출장 다닌 적은 있는데요. 지인도 없고, 기반이 없기 때문에. 저희가 또 아이가 있기 때문에 3~4일 정도 몸을 추스르는 시간으로 헝가리에 머물렀던 것이고요. 독일에는 아내의 여동생이 있어서 이리로 옮겨왔는데 여기서도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무비자로 있는 거기 때문에 90일 밖에 있을 수가 없고. 여러 가지 상황이 복잡한데 여기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기자) 현재 아직도 키예프(크이우)에 남아 있는 한인이 있나요?​

강)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만도 몇 분 있고요. 다들 안전한 곳에 계신다고 합니다. 대사관 측에서 비상용 연락망 만들어서 단톡방이 있거든요. 실시간으로 다들 안전한지 안부 묻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다 잘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자) 혹시 최근에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나요?

강) 항상 주고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0년간 현지 회사에서 일했고 장인, 장모님, 친척들이 아직 남아 계세요.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특히 2~3일 전부터 민간인 포격이 이뤄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민간이 피해가 있었던 것이 정밀 타격 실수, 오폭으로 인한 사고였거든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조준 사격이) 민간 지역에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자) 아직 다음 행선지는 정해지지 않은 거고요?

강) 전혀 계획을 세울 수가 없고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라.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크라이나 사정을 많이 알리고요. 구호품 같은 것, 많이 보내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산모들, 수술받아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 고생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오미크론 사태가 끝나지 않았는데, 전쟁통에 사람들이 마스크 쓰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아마 코로나 상황도 더 심각해졌을 텐데요. 어쨌듯 의료품이나 구급품 등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우크라이나에 도움을 많이 줬으면 합니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한인 강현창 씨와의 인터뷰 들으셨습니다. 오택성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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