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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잇단 도발 속 '수위 조절'…전문가들 "'벼랑 끝 전술' 어려운 대내외 환경 때문"


지난 15일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지난 15일 한국 서울역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북 핵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최근 무력시위와 대미·대남 비난 공세에 나서면서도 수위는 조절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벼랑 끝 전술’을 섣불리 구사하기 어려운 대내외적 환경 때문에 셈범이 복잡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최근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무력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문재인 한국 대통령을 실명 비난하는 담화를 내면서 한반도 정세에 긴장을 높이는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관영매체나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 기사 혹은 논평 방식으로 대미 비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력시위는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에서 벗어난 저강도 수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 대한 비난은 북 핵 협상을 둘러싼 미-북 간 직접 현안이 아닌, 대중 견제 전략이나 아프가니스탄 철수, 호주에 대한 핵추진 잠수함 건조 기술 제공 결정 등 미국 대외정책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지속적으로 촉구하면서 자신들이 요구하고 있는 대북 적대시 정책 우선 철회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입니다.

[녹취: 홍민 박사] “미국의 기본적인 행태를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정당성 내지 자신의 요구사항이 갖는 합리성을 환기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게 미국에게 할 말은 하되 판을 위태롭게 만들거나 미국에 감정적인 부분을 자극하거나 이러지는 않겠다는 것으로 보여지고.”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현장에서 북한 도발 억지를 언급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선 남북관계의 완전 파괴를 원치 않는다며 수위를 조절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미-북 협상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최근 도발적 행동에 나서곤 있지만 과거와 같은 ‘벼랑 끝 전술’을 섣불리 구사하긴 어려운 여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박사는 북한의 최우선 당면과제는 국제사회 대북 제재와 자연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 따른 경제 위기 속에서 체제 동요를 막는 데 있다며, 이 때문에 대외정책에서도 급격한 변화를 주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당 전원회의에서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을 상기하면서 북한 지도부가 대미 협상 재개 문제를 장기전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홍 박사는 북한이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의 협상 재개를 압박하는 차원에서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무력시위를 지속하면서도 협상 여지를 남겨두는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박병광 박사는 북한이 대미 교착 장기전에 대비해 미-중 패권경쟁을 적절하게 활용하려는 치밀한 계산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을 지지하는 북한 매체 또는 외무성 홈페이지 글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나오고 있는 게 그런 북한의 사전 포석이라는 설명입니다.

[녹취: 박병광 박사]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고 인도태평양에 집중하겠다고 하고 있잖아요. 그 얘기는 결국 미-중 패권경쟁이 구조화되고 장기화된다는 거거든요. 그렇게 된다면 미-중이 결국 신냉전 구도가 본격화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중국으로선 북한에 대한 원조나 경제 지원, 교류 이런 것들을 자기가 좀 더 미국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는 거거든요. 그런 것까지 고려한 게 아닐까라고 보죠.”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의 최근 무력시위가 전술핵 개발을 위한 기술적 필요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박사는 북한이 핵무기 확보엔 성공했지만 이로 인한 국제사회 제재에 따른 경제 위기를 풀기 위해선 미국과의 협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최근 영변 원자로 재가동 움직임을 노출한 것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으로 돌아가자는 간접 메시지라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영변을 강화한다는 얘기는 결국 영변의 가치를 높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영변을 계기로 협상을 하자는 것이고 지금 종전선언은 싱가포르거든요, 그런데 북한이 원하는 것은 하노이로 돌아가는 거에요. 그러니까 하노이로 돌아가서 비핵화 행동 대 미국의 상응 조치 이것을 맞바꾸자는 것이고 그것을 에둘러서 전체적으로 표현한 게 이게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것이고.”

북한이 대미·대남 정책에 극단적인 방식을 쓰지 못하는 또 다른 주된 이유는 신종 코로나 백신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국이 백신 접종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쪽으로 대응 방향이 바뀌는 추세에서 북한도 대외 고립을 피하기 위해선 믿을만한 백신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는 겁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입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한-미-일 간에 논의되는 인도적 지원 범위 내에 백신 지원이 포함돼 있다고 보고요, 한국이 제기하는 인도적 지원에 백신이 포함된다면 그것도 적은 물량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의미 있는 물량이 담겨서 백신이 제공될 수 있다면 북한으로서도 긍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봐요.”

신 센터장은 북한이 당장의 내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선 신종 코로나로 막힌 중국과의 교류 재개가 가장 시급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도 백신 확보가 절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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