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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상봉 못한 채 추석...“화상 만남으로라도 한 풀게”


지난 2018년 8월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한국의 이금섬(92ㆍ왼쪽) 할머니가 북한의 아들 리상철(71) 씨를 끌어안고 있다.
지난 2018년 8월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단체상봉 행사에서 한국의 이금섬(92ㆍ왼쪽) 할머니가 북한의 아들 리상철(71) 씨를 끌어안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북한의 외면으로 올 추석에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시급성이 커지고 있지만 최근 들어 남북관계가 오히려 더 얼어붙으면서 상봉 기대감마저 사그러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마지막으로 이뤄진 것은 지난 2018년 8월이었습니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그 해 4월 만남을 갖고 난 후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남북관계에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 다른 교류들이 중단됐고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올해 추석 또한 상봉 행사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18년 당국 차원의 생사 확인 292건, 방북 상봉 170건, 민간 차원에서 생사 확인 7건, 서신 교환 36건, 상봉 1건이던 게 2019년에 들어서는 당국 차원의 교류는 한 건도 없었고 그나마 민간 차원의 생사 확인 2건, 서신 교환 16건, 상봉 1건이 전부였습니다.

2020년 들어서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을 위한 국경 봉쇄 조치로 상황은 더 나빠졌고 급기야 올해는 지난 8월 기준으로 당국 차원은 물론 민간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 사례가 전무한 실정입니다.

남북 교류의 단절 속에서 통일부가 최근 5년간 제작한 ‘이산가족 영상편지’도 단 한 건도 북한 측에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한국 제1야당인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통일부는 최근 5년간 이산가족 영상편지를 6천13편 만들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이후 70여년의 시간을 버텨왔던 이산가족들은 고령으로 인한 사망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등록된 이산가족의 수는 생존자 4만7천318 명인 반면 사망자는 그 두 배에 가까운 8만6천212 명입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이들 가운데 사망한 사람은 2천258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8월 한 달만 314 명이 사망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꼭 해결해야 하는 인도적 협력 사안으로 보고 정치·군사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진행하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이번 추석에 즈음해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계획이었습니다. 북한이 지난 7월 말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하면서 인도적 협력 가능성이 높아진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미-한 연합훈련 비난 담화를 내고 통신연락을 또 다시 차단하면서 이 같은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의 고령화와 신종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상봉의 필요성이 커진 점을 감안해 최근 전국 7곳에 화상상봉장을 증설해 총 20곳으로 확충했습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6일 ‘이산가족 초청 화상 면담’을 갖고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인영(가운데) 한국 통일부장관이 지난해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이인영(가운데) 한국 통일부장관이 지난해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

[녹취: 이인영 장관] “북쪽에서 언제라도 의지를 가지고 화상 상봉을 추진하면 저희들은 곧바로 어르신들이 북녘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을 만나실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남북이산가족협의회 심구섭 고문은 21일 ‘VOA’와의 통화에서 남북관계 경색의 장기화에도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던 이산가족들이 지난해 북한의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때 절망에 빠졌다며, 고령의 이산가족들 사이에서 이젠 기대감 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 고문은 북한도 화상 상봉장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직접 만나는 게 어렵다면 영상편지 교환이나 화상 상봉을 통해서라도 이산의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녹취: 심구섭 고문] “금강산에서 만나는 것은 솔직히 말씀 드리면 북한 당국에 상당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니까 화상 상봉을 하면 얼굴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손목은 만질 순 없지만. 만일 남북간 회담을 한다면 이걸 꼭 실현시켜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반도 정세는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는 양상입니다.

북한이 최근 순항미사일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무력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영변 핵시설 재가동과 시설 확충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신범철 외교안보센터장은 최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등 한국의 첨단무기 증강에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고 대외정책 기조에 변화 조짐도 없다며 인도적 협력에 북한이 나설 분위기가 아니라고 진단했습니다.

또 과거 관행에 비춰볼 때 북한이 대화에 나서더라도 미국이나 한국 측의 반대급부 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단순한 대화 재개만으론 이산가족 상봉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나름대로 비핵화 협상 초기단계에 진입했다거나 제재 완화나 또는 연합군사훈련 부분에서 작은 성과라도 있으면 이산가족 문제를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거든요.”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한국은 물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이산가족 상봉 등 대북 인도적 협력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북한은 신종 코로나 백신이 절실해지고 있다며 인도적 분야에서의 협상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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