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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한국 전문가들 “김정은, 북-러 정상회담 통해 대미 협상력 강화 시도"


북-러 정상회담 장소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 시내에서 떨어진 루스키 섬에 위치했으며, 매년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북-러 정상회담 장소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 시내에서 떨어진 루스키 섬에 위치했으며, 매년 동방경제포럼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 하순으로 예상되는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려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이연철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북-러 정상회담으로 답보상태에 빠진 미-북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녹취:조한범 선임연구위원] “하노이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안이 필요한데, 또 다시 중국에 가는 것은 다섯 번째니까 체면에 맞지 않고, 그러면 러시아죠. 그러니까 러시아 카드를 활용해서 일종의 김정은식 우회전략을 쓰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김 위원장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우방과의 공조를 통해 버티겠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했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는 확대해석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미-북 관계 개선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협상국면을 깨면 대북 제재가 강화되고 군사적 압박도 재개되는 등 북한으로서는 실익이 전혀 없다는 설명입니다.

조 선임연구위원은 오히려 김 위원장이 최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과의 협상 시한을 연말까지로 잡은 것은 협상을 하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표시한 것이라며,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에 호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의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 협상 지렛대를 확보하고 협상력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 속에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제 분야의 실질적 협력과 이익 확보 차원에서는 중국에 비해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문 센터장은 북-러 정상회담을 `새로운 길' 모색으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센터장] “새로운 협상의 길을 하나 더 뚫는다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새로운 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최근 북한에 제안한 4차 남북정상회담도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북한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 나가면서 한국이 조바심을 갖도록 할 것이라는 겁니다.

문 센터장은 북한이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호응하겠지만, 이른 시일 안에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대미 협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조성렬 자문연구위원] “북한이 국제 외교무대에 나오는 과정에서 옛 사회주의 종주국인 러시아 또는 기존의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대미협상에 앞서서 외교적 입지를 다지려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조 자문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를 복원해 고립과 압박에 견딜 수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미국과의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에 조만간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조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이 4월 말까지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에 집중하고 이후 입장이 정리되면 본격적인 정상회담 준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신범철 안보통일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이 언급했던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범철 센터장] “미국과 관계가 좋지 않아도 중국이나 러시아를 통해 고립을 탈피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들이 먼저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는 거죠.”

신 센터장은 북한의 이런 움직임 때문에 미-북 협상이나 남북정상회담이 지연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미 그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이 폼페오 미 국무장관을 비난하면서 만나지 않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국에 대해서도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그만두라고 했으며, 이는 당분간 남북대화나 미-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위성락 전 러시아주재 대사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이전에 이미 추진됐던 것이라며, 따라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위성락 전 대사] “그러니까 하노이에서 결렬됐기 때문에 북한이 러시아 쪽에 접근해서 상황 타개를 구한다는 해석은 저는 너무나 분석적인 해석이라고 봅니다.”

물론 북한이 하노이 상황을 반영해 협의하면서 러시아의 협조를 구하고 공조를 과시하려 하겠지만, 하노이 결렬 때문에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는 겁니다.

위 전 대사는 이번 정상회담이 상징성은 크지만 경제 지원 등 가시적인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인도적 지원 정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는, 제재의 유연한 운용을 통해 협상을 촉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러시아가 제제 완화 문제를 논의할 때라고 강조할 것이지만, 당장 제재 해제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위 전 대사는 또 이번 정상회담을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로 들어간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시정연설을 통해 시한부로 미국의 용단을 촉구하면서 대화 기간을 연장해 놓은 김 위원장이 그 때까지는 새로운 길로 바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위 전 대사는 하지만 북한이 새로운 길에 대한 가능성은 계속 열어둘 것이라며, 그 기간 동안 무기 실험이나 영변의 움직임, 미국 측 협상 대표 교체 주장 등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시도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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