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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수능에 국가 시계 맞춰진 한국의 독특한 문화


2018 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가 4일 앞으로 다가온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학업성취 기원 법회 열리고 있다. 수험생 학부모 등 불자들이 자녀의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2018 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가 4일 앞으로 다가온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학업성취 기원 법회 열리고 있다. 수험생 학부모 등 불자들이 자녀의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사흘 앞으로 다가온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른바 수능시험에 사회의 많은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한국의 수능은 수험생은 물론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과 군대 훈련, 항공기 이착륙 시간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매우 독특한 문화 속에 진행됩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신속한 (지진) 피해 복구와 함께 입시 일정에 차질이 없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수험장에서 이뤄지는 조치에 따라 주십시오”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강조하고 당부한 말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른바 수능은 국가 수장인 대통령에서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국가적 행사입니다.

올해는 가뜩이나 포항에서 지난주에 발생한 지진으로 시험이 연기되면서 관심과 우려가 더욱 증폭됐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여러 부처 장관들과 책임자들은 20일 합동기자회견을 열어 수능시험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녹취: 김상곤 부총리] “일주일 연기된 수능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수능 당일까지 모든 부처가 최선을 다하는 한편 수능 연기에 따른 수험생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도 함께 추진할 계획입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진이나 여진이 다시 발생할 때에 대비한 대책들을 자세히 설명하며 수능이 안전하게 치러지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김부겸 장관] “행정안전부도 이번 수능이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도 대학 입학을 위한 다양한 시험제도가 있지만,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한국의 수능 당일 표정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해 자주 조명을 받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 경찰의 특별 근무, 심지어 군대와 항공기 운항에까지 다양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시 김상곤 교육 부총리입니다.

[녹취: 김상곤 부총리] “공공기관 출근 시간 조정, 기상정보 제공, 시험장 인근 교통관리 강화, 영어 듣기평가 시험 중 소음 방지를 위한 항공기 이착륙 시간 조정, 군사 훈련 자제 등의 조치들을 각 관계부처의 협조 등을 통해 실시할 계획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김제인 씨는 이런 독특한 한국의 입시 문화를 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미국처럼 다양한 평가와 여러 번 시험을 치르지 못한 채 한 번으로 중요한 미래가 결정되는 게 때로는 슬퍼 보인다는 겁니다.

[녹취: 김제인 씨] “슬퍼요. 아이들이 불쌍해요. 왜냐하면, 사실 (미국의) SAT는 돈만 내면 계속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수능이란 것은 1년에 한 번 밖에 못 치는 거니까. 그만큼 교육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못하는 게 안타까웠어요. 압박이 대단한 거잖아요. 그 어린 나이에. 그리고 만약에 잘못 보면 청춘을 거기에 또 1년을 투자해야 하는 것들이 안타까워요”

그럼에도 수능 일에 모든 사회가 수험생들을 배려하는 부분은 매우 독특해 보인다고 김 씨는 말했습니다.

[녹취: 김제인 씨] “한편으로는 그렇게 운영되는 게 그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 인지하고 다들 그 날만큼은 그 친구들을 위한 배려를 한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사회가 이 친구들이 그만큼 고생하고 무게를 얹고 간다는 것에 대한 조그마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는 되게 독특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는 안타깝지만요”

전문가들은 이런 한국의 독특한 수능 문화가 ‘공정한 경쟁’을 매우 중시하는 문화에서 나온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김병로 교수는 한국사회에 여전히 신뢰와 공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능이 공정성 측면에서 계속 우위에 있는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녹취: 김병로 교수] “어떤 정확한 기준과 잣대를 대기가 어려운데, 그 중에 그래도 사람들이 인정하고 동의할 수 있는 게 시험이잖아요. 시험 성적순으로 매기면 사람들이 다 수긍하죠. 그렇지 않고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면 한국사회의 역사와 전통이 공공성, 신뢰가 부족한 상황이라서 가장 간편한 방법이 시험을 봐서 평가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수긍을 하지 않을 거 아니에요.”

김 교수는 다양한 평가 기준에서 보면 수능이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계속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주 포항에서 직접 지진을 겪었던 미 특허법 전문가인 이상호 변호사는 한국의 독특한 수능 문화가 유교 문화에 기인한 것도 크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이상호 변호사] “유교적인 문화였으니까 다른 그 어느 나라보다도 대입 시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입 시험을 일종의 과거시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래서 대입을 치르기 전까지는 굉장히 동등한 구성원이라면 안 좋은 것일 수 있는데, 수능을 통해서 계층화가 된다고도 보여지거든요. 어느 대학을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에 따라 사회 지위가 바뀐다는, 그런 약간 무의식적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수능을 국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화여대 김석향 교수는 유교적인 한국사회가 1960~70년대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교육이 계층 상승의 욕구를 실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녹취: 김석향 교수] “누구나 다 인정할 수 있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교육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전 국민이 교육에 매달리는 거죠. 똑같이! 교육이 궁극적으로 계층 상승이나 유지에 도움이 되는 수단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 게 전쟁 이후로 이거(수능) 하나로 결정이 되는 것처럼 돼버린 것 같아요”

한국의 수능은 주요 과목인 국어와 수학, 영어 시험을 치른 뒤 한국 역사, 사회·과학 등 탐구 영역과 제2외국어 시험 등으로 구성됩니다.

한국의 수험생들은 23일 오전 8시까지 시험장에 입실해 저녁까지 온종일 시험을 치를 예정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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