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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문답] 막내린 유엔총회 제1위원회 결산…미-한 엇갈린 투표 배경은?


유엔총회 제1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라크의 모하메드 후세인 바르 알루룸 대사가 지난달 27일 회의에서 북한 핵 관련 결의안을 처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유엔총회 제1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라크의 모하메드 후세인 바르 알루룸 대사가 지난달 27일 회의에서 북한 핵 관련 결의안을 처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유엔총회에서 군축 문제를 담당하는 제1위원회 회의가 58개의 결의를 채택하고 지난주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는 북한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고, 일부 결의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 달라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함지하 기자와 함께 결산해보겠습니다.

진행자)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는 몇 개나 채택됐습니까?

기자) 모두 3건 입니다. 이 중에서 북한을 비난하는 수위가 가장 높은 결의에 한국이 기권표를 던져서 한국에서 큰 논란이 일기도 했고요.

진행자)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에 왜 한국이 찬성하지 않았냐고 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이 나왔었죠?

기자) 예. 문제의 결의는 지난달 27일 유엔총회가 채택한 L35호입니다. 북한의 핵 실험을 강하게 규탄하고, 미사일 실험 등을 즉각 중단하도록 한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한국이 기권표를 던지면서 한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이 결의는 미국을 비롯한 140여 나라가 찬성을 했고요. 북한과 중국, 러시아, 시리아가 반대했습니다.

진행자) 일본의 원폭 피해 사실이 강조돼 기권을 했다는 게 한국 측 해명인데요. 실제로 그런 내용이 많나요?

기자) 일본의 원폭 피해와 관련된 내용이 2번 등장합니다. 1945년 핵무기가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정치 지도자들이 최근 방문한 데 대해 환영을 표시하고 있고요. 또 지도자들과 청소년 등이 원폭 생존자인 ‘히바쿠샤’와 원폭 지역 주민들을 방문하고 상호 관계를 맺는 등의 노력도 장려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번 결의의 주요 발의국이 일본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긴 한데요. 일제 강점기의 피해국으로서 찬성을 할 수 없었다는 게 한국 측 논리입니다.

진행자) 그렇긴 합니다만, 북한 문제를 지적한 횟수나 강도가 일본 관련 내용보다 훨씬 높은 거 아닌가요?

기자) 사실 L35호는 ‘북핵 규탄’이 아닌 ‘핵 무기 완전 철폐를 향한 새 결의의 단합된 행동’을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직접적으로 북한을 규탄했다고 보기에는 물론 무리가 따릅니다. 다만 북한을 규탄하는 내용을 횟수로만 놓고 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L35호에는 북한이라는 단어가 5개의 문단에 모두 12번 등장합니다. 당장 일본의 원폭 피해 내용과 비교해도 2배 이상 많은 거죠. 또 지난해와 2015년 채택된 동일한 결의보다도 북한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북한을 규탄하는 성격이 짙지 않았다고 볼 수 있지만 올해는 확 달라진 겁니다.

진행자) 그래서 지난해까지 기권표를 던졌던 미국이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자) 흥미로운 사실은 1945년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점입니다. 당시 미국은 원폭 투하를 통해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냈고요.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도 끝났고,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도 결국 막을 내리게 되죠. 이런 미국이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건 어느 정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물론 입장 변화의 정확한 배경이나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올해 결의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원폭과 관련된 내용에선 달라진 게 없고, 북한을 규탄한 부분에는 큰 변화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진행자) 미국과 한국이 엇박자를 낸 북한 관련 결의가 이것만이 아니죠?

기자) 네. L42호는 한국이 발의국으로 참여하고, 또 찬성을 했지만 미국은 기권을 했습니다. L42호는 L35호와 비교했을 때 북한에 대한 규탄 횟수가 훨씬 적은 단 1개의 문단에서 북한 핵을 규탄하고 있는데요. 더 두드러진 차이점은 북핵 해법으로 6자회담을 비롯한 대화를 제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인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줄곧 주장했던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찬성 표를 던졌습니다. 결국 미국이 반대한 결의안에 한국, 중국, 러시아가 나란히 한 목소리를 내는 좀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된 겁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아무튼 지난해까지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유엔총회 제1위원회 결의에 올해는 많은 관심이 쏟아졌거든요. 이유를 뭐라고 봐야 할까요?

기자) 북한에 대한 각국의 목소리가 올해 들어서 크게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제1위원회는 올해 9월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하루 3시간씩 회의를 진행했는데요. 북한을 규탄하는 발언이 각국 대표의 입을 통해 자주 나왔습니다. 제네바주재 김인철 한국 차석대사는 지난달 25일 발언을 하면서 북한과 관련된 내용이 전체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그만큼 북한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건데요. 그만큼 북한 대표의 발언도 계속 이어졌죠?

기자) 그렇습니다. 북한 외무성 소속 리인일 대표가 평양에서 파견돼 사실상 모든 회의에 참석을 했고요. 각국이 북한을 규탄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추가 발언권을 얻어 반박을 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주장이 어떤 것이었는지 소개해 주시죠.

기자) 자신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게 미국 때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침략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북한을 규탄하는 나라들에게 미국이 오도하는 주장에 현혹되지 말라는 말도 했습니다. 앞서 미국이 1945년 일본에 원폭을 투하했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북한은 이 사실을 거론하면서 미국이 실제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나라라면서 비판을 했습니다.

진행자) 어떻게 보면 이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을 했고 한국도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건데 말이죠.

기자) 더구나 북한은 당시 일제에 치열하게 저항했다는 걸 정통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오랫동안 내세워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막상 핵개발의 정당성을 주장할 땐, 일제 강점기를 끝낼 수 있었던 미국의 원폭 투하를 비난하는 모순된 논리를 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일본의 원폭 피해 사실이 명시된 결의 L35호에 대해 리인일 대표는 일본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이런 북한의 주장 때문에 미-북 대표 사이에 설전이 몇 차례 벌어지기도 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 측 대표로 회의장에 가장 많이 나왔던 미 국무부의 로버트 우드 군축담당 대사가 추가 발언권을 얻어 북한 대표의 주장에 일침을 가했습니다. 주로 ‘터무니 없다’, ‘어처구니 없다’ 이런 반응으로 대응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북한을 위협한 적이 없다는 것과 이번 문제가 미국과 북한 간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와 북한 사이의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진행자) 실제로 북한은 북핵 문제를 자꾸 미-북 사이의 문제로 끌고 가더군요. 또 한국은 이번 문제의 주체가 아니라는 말도 했고요.

기자) 북한은 한마디로 핵 문제는 미-북 간 문제이니 다른 나라 특히 한국은 빠져라, 줄곧 이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리인일 대표는 한국이 주권 국가로서의 상징성과 군사 통제권을 미국에게 넘겼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대표는 이런 주장에 반박하면서 전 세계가 한 목소리로 북한을 규탄하는 걸 보지 못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진행자) 우드 대사가 북한 대표를 향해 ‘평양 정권의 대표’라는 말을 썼다는 점도 흥미로웠는데요. 국명을 지칭하지 않고 말이죠.

기자) 맞습니다. 우드 대표는 북한 리인일 대표를 ‘평양 정권의 대표’ 혹은 ‘정권의 대표’로 불렀습니다. 통상 다른 나라들에는 그 나라 이름을 붙이는 것과 대조적인데요. 며칠 간 이렇게 북한 대표를 지칭하자, 북한 대표도 어느 시점부터 미국을 호칭할 땐 ‘워싱턴 정권’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진행자) 북한의 전통적 우호국들은 전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역시 북한을 옹호했나요?

기자) 그렇게 보긴 힘들 것 같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북한의 우호국들은 북한 문제를 언급할 때 대화나 미국 등 관련국들의 자제를 촉구하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긴 했지만 북한을 향해서도 주저 없이 비난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또 위원회는 지난 2일 화학무기 사용 금지에 대한 이행을 주제로 한 결의 L26호를 채택했는데요. 여기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신경작용제 VX에 의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가 살해된 사건이 포함됐었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이 내용이 담긴 문구의 삭제를 시도하면서 표결을 요청했는데, 북한을 제외하고 단 4개 나라의 찬성을 얻는데 그쳤습니다. 이 나라들은 콩고, 코트디부아르, 시리아, 바나투였습니다.

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함지하 기자와 지난주 막을 내린 유엔총회 제1위원회 회의에서 나온 북한 관련 결의와 쟁점들을 결산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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