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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 사건 검찰 "유죄 입증 증거 있어"…변호인 "VX 검출도 증거 안 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왼쪽)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이 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샤알람 법원을 나서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왼쪽)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이 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샤알람 법원을 나서고 있다.

말레이시아 검찰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씨 살해 용의자의 유죄를 입증할 증거를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VOA’에, 힘든 싸움이 될 것이지만 살인 입증 요건을 충분히 갖췄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변호인 측은 ‘VX 신경작용제’가 검출됐어도 살해 증거로 불충분하다고 반박했습니다. 김영남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김정남 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의 변호를 맡은 구이 순 셍 변호사는 아이샤가 VX 신경작용제를 사용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이 순 셍 변호사는 6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피고인이 VX 신경작용제를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할 어떤 목격자나 폐쇄회로 TV(CCTV) 영상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피해자(김정남)가 VX 중독으로 인해 죽은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그보다는 의뢰인을 살인과 연관시키기엔 정황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게 변호인 측 논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검찰은 피고인들이 VX 신경작용제를 사용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최근 아이샤가 사건 당시 입었던 옷에서 VX 성분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서도, 이것만으로는 VX를 사용했다는 혐의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구이 순 셍 변호사는 검찰이 피고인의 살해 의도, 즉 사용 물질이 VX라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역시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 전체에서 나타난 아이샤의 행동은 그와 상반된 정황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사건 당시 공항 폐쇄회로 영상에는 항공권 발권을 위해 무인기계 화면을 들여다보는 김정남 씨에게 2명의 여성이 접근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어 흰색 상의의 여성이 김 씨의 머리 부분을 뒤에서 감싸고, 앞쪽에 있던 다른 여성이 김 씨와 접촉한 뒤 사라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영상에 따르면 이들이 김 씨와 접촉한 시간은 2.3초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변호인의 논거는 해당 영상에 두 여성이 김정남 씨에 접촉한 모습은 담겨있지만, VX를 사용했다는 ‘직접 증거’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반면 말레이시아 검찰은 변호인 측의 이 같은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VOA’의 질문에, 피고인이 VX 여부를 알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위험한 물질”인지 알고 있었는지가 사건의 핵심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샤하우딘 완 라딘 검사는 7일 ‘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두 명의 피고인 여성이 해당 물질을 VX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증명해내는 건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임무는 그들이 (사용한 물질이) 위험한 물질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피고인들이 그런 사실을 알았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를 현재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번 주에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샤하우딘 완 라딘 검사는 피고인들이 VX를 사용한 것을 몰랐다고 해도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느냐는 ‘VOA’의 질문에, 웃음 표시의 이모티콘(😎😎😎)을 보내왔습니다.

이어 피고인들이 VX를 사용한지 몰랐고 범행 의도가 확실하지 않아도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묻자 “그럴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힘든 싸움이 남아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피고 측이 언론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갖고 있는 증거를 판사의 판결에 앞서 언론에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샤하우딘 완 라딘 검사는 (재판에서) 검찰 측이 열세(underdog)이지만 자신들만의 전략을 갖고 있다며 상황을 지켜보자고 말했습니다.

아이샤와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흐엉 씨는 지난 2월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 씨의 얼굴에 치명적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피고인 측은 본인들이 ‘리얼리티 TV쇼’ 촬영을 위한 이른바 ‘몰래카메라’에 참가한 것으로 알았다며 무죄를 주장해왔습니다.

이번 재판은 두 달 넘게 걸릴 것으로 알려졌으며 말레이시아 형법상 유죄가 인정될 경우 피고인은 사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들 피고인들에게 국제법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건네주고 범행을 지시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인 오종길, 리지현, 리재남, 홍송학 등 4명은 범행 당일 출국했습니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은 이에 추가로 수사 선상에 오른 북한 대사관 직원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 등 3명에게 출국을 허용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4명의 용의자가 출국하던 당시 공항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는 북한 용의자 3명과 평양에 억류당한 말레이시아인 9명과 맞교환하기로 북한과 합의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초기부터 북한 김정은 정권과의 연관성이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데니스 이그네이셔스 전 말레이시아 정부 차관은 지난 3월 ‘VOA’와의 인터뷰에서 사건의 배후에 김정은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또 말레이시아의 시바난단 니디야난담 국제형사재판소 자문 변호사는 지난 3월 ‘VOA’와의 인터뷰에서 암살에 사용된 물질의 종류를 고려할 때 북한이 배후라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ICC에 제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는 것으로 알았고 살해 의도가 없었다는 용의자들의 주장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질 경우 무죄 선고도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말레이시아 정부는 강철 북한대사를 추방하는 등 외교적인 문제로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강철 대사는 앞서 말레이시아 정부가 한국과 결탁해 김정남 피살에 대해 거짓 선동을 하고 있다며 말레이 경찰의 수사결과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해 말레이시아 정부가 크게 반발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소수 국가 가운데 하나였지만 김정남 씨 피살 사건 이후 관계가 냉각됐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특히 지난달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험으로 역내 긴장이 고조되자 자국민의 북한 여행을 전면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은 폐쇄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미 국무부는 사건 직후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지난 3월 대니얼 러셀 당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북한 당국의 연루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캐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지난 4일, 북한의 거듭된 범행 부인에 대한 ‘VOA’의 논평 요청에 말레이시아 당국에 문의하라며 답변을 피했습니다.

지난 주 시작된 김정남 피살 관련 공판에서 피고인 측은 계속해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지 검찰은 지난주 공판에서 병리학자와 화학무기분석센터 관계자 등의 증언을 통해 김정남 씨의 사인이 VX 중독이라는 점과 피고인들의 옷과 손톱 등에서 VX가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다음 공판은 9일 말레이시아 화학청 산하 화학무기분석센터에서 속개됩니다. 재판부는 이날 두 피고인이 범행 당시 입고 있었던 옷가지 등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VOA 뉴스 김영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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