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인으로 묘사한 전기를 책으로 발간했습니다. 경제난 심화로 민생이 큰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집권 10년을 성공으로 치장해 선전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권력 기반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 28일 홈페이지를 통해 사실상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인전인 ‘위인과 강국시대’라는 제목의 책을 공개했습니다.
평양출판사가 지난해 12월 30일 발간한 것으로 총 620여 쪽, 7개 장에 걸쳐 김 위원장 집권 10년간의 국방과 외교는 물론 경제와 사회, 문화 분야 성과를 담았습니다.
특히 국방 분야를 다룬 3장에선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의 핵 무력 강화를 강조했습니다.
‘핵에는 핵으로’라는 소제목을 단 글을 통해 2016년 수소탄 실험과 이듬해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장착용 수소탄 실험을 상세히 설명했고 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 발사 시험도 나열했습니다.
또 “적대세력들과는 오직 힘으로, 폭제의 핵에는 정의의 핵 억제력으로만이 통할 수 있다”거나 “강위력한 핵 무력으로 미국의 일방적인 핵 위협의 역사를 끝장내야 한다”며 이것이 김 위원장의 신조라고 강조했습니다.
대외관계 성과로는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을 가장 비중있게 다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2018년 싱가포르에서 가진 미-북 정상회담과 이듬해 미국과 남북한 세 정상간 판문점 회동에만 15 쪽을 할애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김 위원장의 지대한 업적으로 자화자찬했습니다.
싱가포르 회담에 대해선 ‘지구를 뒤흔든 세기적 만남’으로 평가했고, 판문점 회동에 대해선 “오랜 세월 불신과 오해,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간직한 판문점에서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판문점 회동과 관련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훌륭한 친분관계가 있었기에 단 하루만에 극적인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서술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지난 8차 당 대회에서 밝힌 대미 ‘강대강 선대선’ 원칙과 같은 맥락이라며, 핵 보유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여건이 마련되면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기본적으로 핵은 가졌고 기본적으로 경제를 살리려 할 것이고 그 다음에 여기에 대미관계 대남관계를 필요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이 맞아지면 대화는 한다, 우리는 보통국가, 정상국가다, 김정은의 권위는 문제가 없다,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같아요.”
이 책은 그러나 판문점 회동 전에 불발로 끝난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일절 다루지 않았고 판문점 회동 당시 함께 했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없었습니다.
대남관계에 있어서는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내용은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는 표현으로만 소개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이와 함께 “군사적 긴장 상태의 지속을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미-한 연합훈련 중단을 우회적으로 촉구했습니다.
조한범 박사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없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언급도 없는 것은 한국과의 대화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연합훈련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면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풀이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정식 지칭은 안했지만 한-미 군사연습은 3월8일에 지휘소연습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지금 얘기가 되고 있는데 이렇게 계속 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내는데 하게 되면 뭐 축소해서 했으니까 이해한다 이렇게는 안 되거든요, 김정은 레벨 차원에서 계속 얘기가 되고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모종의 분명히 저쪽의 상응 조치가 있을 거에요.”
책을 낸 출판사 편집부는 “위인이 위대한 시대를 낳는다”면서 김 위원장의 집권 10년이 “결코 긴 세월은 아니지만 이 길지 않은 나날에 공화국은 얼마나 아득한 높이에 올라섰는가”라며 김 위원장을 추앙했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는 김 위원장 집권 10년이 성공은 아니라는 점은 북한 주민들도 지켜봐 온 사실이라며, 위인전 출간은 역설적으로 김 위원장의 실패를 덮기 위한 선전 강화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일도 교수] “10년이라는 시간이 누가 봐도 성공적이지 않았는데 성공적이지 않은 것을 성공적이라고 우기려면 가급적 많은 매체들을 통해서 그 얘기를 해야 되는 국면이다 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는 거죠.”
조한범 박사는 경제난 심화로 민생이 위기에 처한 현 시점에서 볼 때 김 위원장 집권 10년은 총체적 실패라며, 이런 상황에서 위인전까지 출간한 것은 선대 지도자들에 비해 여전히 권력 기반에 약점이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