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오늘은 10월 6일입니다. 오늘 ‘역사 속 오늘’은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욤키푸르 전쟁’으로 돌아가 봅니다. 이어 2010년, 사진을 찍어 간단한 필터를 적용하고 친구들과 공유하는 아이폰 앱으로 출발해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한 인스타그램의 탄생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1. The Yom Kippur War Begins — 1973년 10월 6일
[진행자] 첫 번째 소식입니다. 1973년 10월 6일, 중동 정세는 물론 세계 경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전쟁이 시작됐죠?
[기자] 맞습니다. 이날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동시에 공격하면서 제4차 중동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를 건너 시나이반도로 진격했고, 시리아군은 북쪽 골란고원에서 공격에 나섰습니다. 공격이 시작된 날은 유대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날로 꼽히는 ‘욤키푸르’, 즉 속죄일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이 전쟁을 ‘욤키푸르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진행자] 그런데 이집트와 시리아는 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겁니까?
[기자] 배경에는 6년 전 벌어진 제3차 중동전쟁, 이른바 ‘6일 전쟁’이 있었습니다.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시나이반도를,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점령했습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이 영토를 되찾으려 했고, 결국 1973년 10월 6일 공격에 나섰습니다. 특히 이집트군은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스라엘 방어선을 돌파하면서 전쟁 초반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진행자]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기습을 당한 셈인데요. 공격 징후를 전혀 몰랐던 겁니까?
[기자]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정보를 어떻게 판단했느냐였습니다. 이집트와 시리아군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여러 정보가 있었지만,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아랍 국가들이 당장 전면전을 시작할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습니다. 미국 정보기관 역시 전쟁 직전까지 공격 가능성을 낮게 판단했는데요. 결국 기존의 판단과 가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 공격을 사전에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습니다.
[진행자]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면서 전세가 다시 바뀌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초기 충격에서 벗어난 이스라엘은 예비군을 동원해 반격에 나섰습니다. 북쪽에서는 시리아군을 밀어냈고, 남쪽에서는 이스라엘군이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군의 후방으로 진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규모 군수물자를 지원했고, 소련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지원하면서 전쟁은 미·소 냉전 경쟁과도 직접 연결됐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자칫 미국과 소련이 직접 충돌할 가능성도 있었습니까?
[기자] 그런 우려가 실제로 커졌습니다. 전쟁 막바지 이집트 제3군이 이스라엘군에 포위될 위기에 놓이면서 상황이 더욱 긴박해졌는데요. 소련은 미국에 공동 대응을 제안하며 필요할 경우 독자적인 행동 가능성까지 거론했고, 미국은 군사 대비 태세를 높였습니다. 냉전 시대 두 초강대국의 긴장이 크게 고조된 순간이었습니다.
[진행자] 전쟁은 어떻게 끝나게 됐습니까?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0월 22일 결의 338호를 채택해 양측에 휴전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교전이 이어졌고 추가적인 휴전 결의와 협상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10월 말에는 주요 전투가 중단됐는데요. 이후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이집트와 이스라엘, 시리아 등을 오가는, 이른바 ‘셔틀 외교’를 펼쳤고, 이듬해에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각각 병력분리 협정이 체결됐습니다.
2. Instagram Launches on the Apple App Store — 2010년 10월 6일
[진행자] 두 번째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우리에게 훨씬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2010년 10월 6일,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인스타그램이 처음 등장했죠?
[기자] 그렇습니다. 이날 케빈 시스트롬과 마이크 크리거가 만든 ‘인스타그램’이 애플 앱스토어에 무료 아이폰 앱으로 공식 출시됐습니다. 당시에는 사진을 찍고 필터를 적용한 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비교적 단순한 앱이었는데요. 출시 첫날에만 약 2만5천 명의 이용자가 가입했습니다. 지금의 거대한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비교하면 믿기 어렵지만, 당시 개발팀은 시스트롬과 크리거 두 사람이 중심이 된 아주 작은 팀이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인스타그램이 처음부터 사진 공유 앱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시작은 ‘Burbn’, 버번이라는 위치 기반 서비스였습니다. 여러 기능이 들어간 서비스였는데요. 시스트롬과 크리거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용자들이 사진을 공유하는 기능에 특히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기능을 계속 추가하는 대신 사진 공유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단순화하고 다른 기능들을 대폭 걷어냈습니다.
[진행자] 기능을 더 많이 넣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였다는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모바일에서 사진을 빠르게 찍고, 필터를 이용해 보기 좋게 만든 뒤 쉽게 공유하는 경험에 집중했습니다. 이름도 ‘Instant Camera’, 즉 즉석카메라와 ‘Telegram’, 전보라는 단어에서 착안해 ‘Instagram’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10월 6일 아이폰용 앱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첫날 2만5천 명이면 지금 기준으로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당시에는 많은 숫자였습니까?
[기자] 네, 상당히 좋은 출발이었습니다. 2010년은 지금보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훨씬 적었던 시기였고, 인스타그램은 처음에는 아이폰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출시 첫날 약 2만5천 명이 가입했고, 일주일 만에 이용자는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에는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대규모 광고 없이 이용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성장한 겁니다.
[진행자] 그리고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금액에 인수되죠?
[기자] 그렇습니다. 2012년 4월에는 안드로이드용 인스타그램이 출시됐고, 같은 달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발표 당시 거래 규모는 현금과 페이스북 주식을 합쳐 약 10억 달러였습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1년 반 정도밖에 안 됐을 때였는데요. 당시 인스타그램은 이미 수천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진행자] 처음에는 여러 기능을 가진 서비스를 만들었다가 오히려 기능을 줄이면서 성공했다는 점도 흥미롭군요.
[기자] 맞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초기 역사를 보면 새로운 기능을 계속 추가한 것이 성공의 출발점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사진 공유에 집중하기 위해 서비스를 단순하게 만든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이후 인스타그램은 사진뿐 아니라 동영상과 스토리, 릴스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진행자] 기습 공격으로 시작돼 중동 정세와 세계 에너지 시장까지 뒤흔든 욤키푸르 전쟁, 그리고 사진 공유에 집중한 작은 아이폰 앱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한 인스타그램까지. 역사 속 10월 6일이 남긴 두 가지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내일도 알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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