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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공식 업무 시작…자동차 대중화 이끈 포드 모델 T 등장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을 태운 새턴 5호 로켓이 3.5마일 떨어진 발사대에서 굉음을 내며 솟아오르는 가운데, 케이프 케네디의 기자단 구역에 수천 명의 기자와 사진기자들이 늘어서 있다.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을 태운 새턴 5호 로켓이 3.5마일 떨어진 발사대에서 굉음을 내며 솟아오르는 가운데, 케이프 케네디의 기자단 구역에 수천 명의 기자와 사진기자들이 늘어서 있다.

[진행자] 오늘은 10월 1일입니다. 오늘 ‘역사 속 오늘’은 1958년 미국의 우주개발을 이끌 NASA가 공식 업무를 시작한 날로 돌아가 봅니다. 이어 1908년,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포드의 모델 T가 일반에 처음 선보인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1. NASA 공식 업무 시작 — 1958년 10월 1일

[진행자] 첫 번째 소식입니다. 1958년 10월 1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했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이날 미국의 민간 우주개발을 담당하는 NASA, 즉 항공우주국이 공식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NASA를 탄생시킨 법은 그보다 두 달여 앞선 7월 29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서명했는데요. 준비 기간을 거쳐 10월 1일 NASA가 정식으로 가동됐습니다. 초대 국장은 T. 키스 글레넌, 부국장은 휴 드라이든이었습니다. 첫 본부는 워싱턴 D.C. 라파예트 광장에 있는 돌리 매디슨 하우스에 마련됐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미국은 왜 이 시기에 새로운 우주기관을 만들게 된 겁니까?

[기자] 가장 큰 배경 가운데 하나는 소련의 ‘스푸트니크 충격’이었습니다.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에 올렸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소련이 우주개발에서 먼저 성과를 내자 미국에서는 과학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는데요. 이후 의회와 행정부에서 국가 우주개발 체계를 정비하려는 논의가 진행됐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 조직과 별도로 비군사적 우주 활동을 담당할 민간 기관을 만드는 방향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1958년 7월 국가항공우주법이 제정됐고 NASA가 탄생했습니다.

[진행자] NASA가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조직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NASA의 토대가 된 조직은 ‘국가항공자문위원회(NACA)’였습니다. NACA는 1915년에 설립돼 항공기와 비행 기술을 연구하던 기관이었는데요. NASA가 업무를 시작하면서 NACA의 약 8천 명 직원과 연구시설이 새 기관으로 넘어갔습니다. NASA 공식 역사자료에는 당시 상황을 아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9월 30일 NACA 직원으로 퇴근했다가 바로 다음 날인 10월 1일에는 같은 직장에 NASA 직원으로 출근했다는 겁니다.

[진행자] NASA가 출범하자마자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계획에도 착수했습니까?

[기자] 네. 불과 며칠 뒤인 10월 7일, NASA의 초대 국장 T. 키스 글레넌은 미국의 유인 우주비행 프로젝트를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6일, 이 계획에는 공식적으로 ‘프로젝트 머큐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목표는 사람을 우주로 보내고 우주 환경에서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지 확인한 뒤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것이었는데요. 1961년 앨런 셰퍼드가 미국인 최초로 우주에 갔고, 이듬해 존 글렌은 미국인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돌았습니다.

[진행자] 그리고 결국 아폴로 계획과 달 착륙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NASA는 머큐리 계획에 이어 제미니와 아폴로 계획을 진행했고, 1969년 아폴로 11호를 통해 인류 최초의 유인 달 착륙을 이뤘습니다. 이후 우주왕복선과 국제우주정거장, 행성 탐사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는데요. 1958년 10월 1일 약 8천 명의 기존 항공 연구 인력을 중심으로 출발한 NASA가 이후 미국 우주개발의 중심 기관으로 성장한 겁니다.

2. 포드 모델 T 일반 판매 시작 — 1908년 10월 1일

[진행자] 두 번째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시간을 50년 더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1908년 10월 1일에는 미국인의 이동 방식을 바꾼 자동차가 등장했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이날 포드자동차의 ‘모델 T’가 일반에 선보이고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포드 공식 기록에 따르면 첫 고객에게 차량이 출고된 것도 이날이었는데요. 헨리 포드가 추구한 목표는 소수의 부유층만 탈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하고 튼튼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모델 T는 미국의 당시 도로 환경에서도 비교적 쉽게 운전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진행자] 당시 자동차는 지금처럼 일반 가정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20세기 초 자동차는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값비싼 물건이었습니다. 헨리 포드는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으면서도 단순하고 튼튼한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는데요. 모델 T 역시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부담 없이 살 정도로 싼 자동차였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후 생산방식을 개선하면서 생산비용을 낮췄고, 그 절감분을 자동차 가격에 반영했습니다. 모델 T가 단순히 새로운 자동차 한 종류가 아니라 자동차 대중화의 상징으로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진행자] 모델 T 하면 헨리 포드의 조립라인도 유명한데요. 모델 T가 처음 나온 1908년부터 이동식 조립라인에서 생산됐습니까?

[기자] 아닙니다. 이 부분은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모델 T가 일반에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908년이지만, 포드가 미시간주 하이랜드파크 공장에서 조립라인 방식을 실험하기 시작한 것은 1913년입니다. 처음에는 부품 조립에 이 방식을 적용했고, 같은 해 자동차 차체 조립에도 확대했는데요. 이후 자동차가 작업자들 사이를 이동하는 생산방식을 발전시키면서 같은 자동차를 훨씬 빠르게 대량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생산 효율이 높아지면서 모델 T의 가격도 계속 낮아졌습니다.

[진행자] 그러면 자동차를 타는 사람도 크게 늘었겠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모델 T는 큰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생산됐습니다. 1908년부터 생산이 끝난 1927년까지 약 1천500만 대가 만들어졌는데요. 자동차가 더 많은 가정에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이전보다 먼 거리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됐고, 자동차를 중심으로 미국의 생활 방식도 변화했습니다. 모델 T의 성공과 함께 발전한 대량생산 방식은 자동차 산업뿐 아니라 20세기 제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진행자] 결국 모델 T가 자동차를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를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거군요.

[기자] 맞습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아니었고 모델 T 역시 세계 최초의 자동차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1908년 10월 1일 일반 판매가 시작된 모델 T는 이후 대량생산과 가격 인하를 거치면서 20세기 자동차 대중화를 대표하는 자동차가 됐습니다. 포드가 모델 T를 ‘세상을 바퀴 위에 올려놓은 자동차’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진행자] 역사 속 오늘, 김현숙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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