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오늘은 9월 30일입니다. 오늘 ‘역사 속 오늘’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되던 시기, 서베를린 주민들에게 식량과 연료를 실어 나른 베를린 공수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날을 돌아봅니다. 이어 1966년 영국의 보호령에서 독립해 새로운 국가로 출발한 보츠와나의 독립 이야기도 살펴봅니다. 오늘은 김현숙 기자와 함께 합니다.
[진행자] 첫 번째 소식입니다. 1949년 9월 30일,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베를린 공수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됐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베를린 공수작전은 1948년 소련이 서베를린으로 연결되는 철도와 도로, 수로를 봉쇄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이 나눠 점령하고 있었고, 독일 안에 있던 베를린 역시 동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베를린은 소련이 점령한 동독 지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서방 측이 육로나 수로를 이용해 물자를 공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항공기를 이용해 서베를린에 식량과 생필품, 연료 등을 실어 나르는 대규모 공수작전을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선 이 작전을 ‘하늘의 다리(Luftbrücke)’로 불렀고요. 미국은 ‘오퍼레이션 비틀스(Operation Vittles)’, 영국은 ‘오퍼레이션 플레인페어(Operation Plainfare)’라고 불렀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베를린 봉쇄는 9월 30일 이전에 이미 끝나지 않았나요?
[기자] 그렇습니다. 소련은 1949년 5월 12일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육상 통로를 다시 열었습니다. 하지만 서방 측은 소련이 다시 봉쇄를 실시할 가능성에 대비해 공수작전을 곧바로 중단하지 않았는데요. 서베를린에 식량과 연료 등 비상 비축물자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몇 달 동안 공수작전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1949년 9월 30일, 약 15개월에 걸친 베를린 공수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됐습니다.
[진행자]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항공기로 도시 전체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했다는 게 상당히 대규모 작전이었을 것 같은데요. 어느 정도였습니까?
[기자] 규모가 매우 컸습니다. 1948년 6월 26일부터 1949년 9월 30일까지 공수작전을 통해 서베를린에 전달된 화물은 230만 톤 이상으로 집계됩니다. 이 가운데 약 75%는 미국 항공기가 운송했습니다. 특히 작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 45초마다 항공기 한 대가 착륙할 정도로 운항이 집중됐습니다.
[진행자] 당시 미국과 영국이 이렇게까지 대규모 공수작전을 벌인 이유가 있었겠죠?
[기자] 네, 서베를린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서방 측의 의지가 중요한 배경이었습니다. 당시 베를린은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는 냉전의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서방 측은 육상 통로가 막힌 상황에서 무력을 사용해 봉쇄를 뚫을 경우 소련과 직접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봤습니다. 대신 항공기를 이용해 도시를 유지하는 방식을 선택한 겁니다. 미국 국무부 역사실 자료는 베를린 공수작전이 냉전 초기 서방과 소련 사이의 대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으며, 이후 유럽의 동서 분단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진행자] 결국 베를린 공수작전은 단순히 물자를 나르는 작전을 넘어 냉전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 됐다는 거군요.
[기자] 맞습니다. 베를린 공수작전은 소련의 봉쇄에 맞서 서베를린을 유지하려 했던 미국과 영국의 대응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후 서독과 동독이 잇따라 수립되면서 독일의 분단은 현실화됐고요. 베를린은 냉전 기간 동안 동서 대립의 상징으로 남게 됩니다. 1949년 9월 30일, 1년 넘게 하늘을 통해 서베를린을 지탱했던 ‘하늘의 다리’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날은 냉전 초기 역사의 중요한 한 장면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진행자] 두 번째 소식입니다. 이번에는 아프리카로 가보겠습니다. 1966년 9월 30일, 오늘날의 보츠와나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1966년 9월 30일,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남부의 내륙국가 베추아날란드 보호령(Bechuanaland Protectorate)이 독립하면서 ‘보츠와나 공화국’이 탄생했습니다. 이날 세레체 카마가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요. 미국은 보츠와나 독립 당일, 독립을 승인하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진행자] 베추아날란드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기자] 베추아날란드 지역은 아프리카 내륙의 사막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중후반, 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인 트란스발 지역에서 이주해 온 보어 사람들과 보츠와나 사이에 충돌이 발발하게 됩니다. 보츠와나는 1885년 영국에 도움을 요청했고요. 영국 역시 내륙으로 진출하는 길을 열어 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1885년 3월 31일 베추아날란드를 영국의 보호령으로 지정하게 됩니다. 이후 1964년 베추아날란드는 영국에 자치권 인정과 독립을 제안했고요. 영국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진행자] 그러니까 배추아날란드는 19세기 말부터 영국의 보호령으로 계속 있었던 거군요?
[기자] 맞습니다. 독립을 앞두고 1965년 총선이 실시됐고, 세레체 카마가 이끄는 정당이 승리하면서 카마가 독립 전까지 총리를 맡았습니다. 이후 1966년 9월 30일 독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당시 수도 가보로네에서는 영국 국기가 내려가고 새로운 보츠와나 국기가 게양되면서 독립국가의 출범을 알렸습니다. 보츠와나에서는 이날을 ‘보츠와나 데이(Botswana Day)’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보츠와나가 독립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이후 중요한 광물이 발견됐다고요?
[기자] 네, 바로 다이아몬드입니다. 보츠와나의 경제 발전에서 다이아몬드 산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독립 이듬해인 1967년 오라파(Orapa) 지역에서 다이아몬드 광맥이 발견됐는데요. 이후 다이아몬드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요한 기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독립 당시 보츠와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개발 수준이 낮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됐지만, 이후 광물 자원과 축산업 등을 기반으로 경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보츠와나는 내전이 끊이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독립 이래 민주주의를 계속 유지한 매우 드문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진행자] 오늘은 1949년 냉전 초기 베를린 공수작전이 막을 내린 날과 1966년 아프리카의 새로운 독립국 보츠와나가 출범한 날을 살펴봤습니다. 서로 다른 대륙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9월 30일은 국제질서의 변화와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라는 중요한 역사의 순간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 오늘’ 김현숙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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