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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풍경] 한국전쟁 실종 미군 유가족 "살아있을 거라 믿었던 형 유해 70 년만에 돌아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23세 나이로 전사한 후가커 일등병.

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미군의 유해가 70년 만에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고향에 묻힙니다. 장양희 기자가 유가족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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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23세 나이로 전사한 후가커 일등병의 신원이 확인했다고 지난 4월 19일 밝혔습니다.

DPAA 웹사이트에 따르면 후가커 일등병은 한국전쟁 발발 한 달만인 1950년 7월 제29 보병연대 제1대대 D 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같은달 27일 경상남도 안의면 부근에서 부대가 공격을 받은 뒤 실종됐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파편이 박혀 경미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DPAA의 전문가들은 그가 북한군에 포로가 돼 강제로 서울로 진군한 뒤 평양으로 끌려갔고,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다 생을 마감한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후가커 일병은 DPAA가 유해 감식을 통해 올해 신원을 확인한 한국전 실종 미군 병사 중 한 명입니다.

올해 신원이 확인된 또 다른 병사는 미 육군 소속 엘더트 빅 상병으로 4월 24일 최종 확인됐습니다.

빅 상병은 20살이었던 1950년 12월 1일 장진호 전투에서 소속 부대가 공격을 받던 중 전사한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빅 상병의 유해는 오는 14일 70여년 만에 돌아온 고향 아이오와 주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미 동부 펜실베이니아 주 벨우드가 고향인 폴 W. 윌킨스 병장은 19세 나이로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1950년 7월 11일 제24 보병사단 21 보병연대 제 1대대 B 중대 소속이었던 그는 장진호 부근에서 싸우다 실종됐습니다.

윌킨스로 확인될 수 있는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로부터 3년 뒤인 1953년 12월, 미 육군은 윌킨스 병장에 대한 추정 사망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흐른 지난 2020년 10월 30일, DPAA는 윌킨스 병장의 유해가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소식은 윌킨스 병장의 남동생인 월터 윌킨스 씨에게 전해졌습니다.

월터 윌킨스 씨는 당시 15세였던 자신은 형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면서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어릴적 형과 함께 언덕길을 걸었던 오래된 기억이 남아 있다는 월터 씨는 2명의 형을 한국전에서 잃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또 한 명의 형제인 조 윌킨스 역시 한국전에 참전했고, 폴 형의 실종 소식이 있고 얼마 후 전사했다는 겁니다.

조 윌킨스 병사는 일찌감치 가족의 품에 안겨 현재 버지니아 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습니다.

월터 윌킨스 씨는 자신도 참전하려 했지만 두 형제를 전선에 보낸 어머니가 반대했다며, 자신이 한국전에서 전사한 세 번째 윌킨스가 될 뻔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월터 윌킨스] “I was 15, I tried to get my mom to sign papers to go in at 16, but the biggest thing that ever happened. And I know the Lord was with me..”

16살이 되면 한국전에 참전하려 했었는데 되돌아보니 신이 어머니를 통해 더 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했다는 겁니다.

9남매 중 두 명이 한국전에서 전사하고 현재 자신과 누나 둘 만 생존해 있다는 85세 월터 씨.

윌터 씨에게 유해 귀환 소식은 기쁜 일만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형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월터 씨는 형이 전쟁 중 부상으로 기억을 상실했거나 포로로 잡혀있다 귀환을 포기하고 어딘가에서 살아 남아 있기를 누나와 함께 바랬다고 말했습니다.

폴 윌킨스 병장의 유해 확인 소식을 처음 접한 월터 씨의 아들 크레그 씨는 공식 발표가 나오기 한 달 전에 관계자로부터 삼촌의 유해 확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크레그 씨는 지난해 10월 유해가 최종 확인되기까지 가족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크레그 윌킨스] “When we were all sitting here at the kitchen table and Dad did get emotional and my bother they put their hands on his shoulder..”

가족들 모두 둘러 앉아 아버지의 어깨와 무릎에 손을 올리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위로했다는 크레그 씨는 삼촌의 유해 확인 소식은 생존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던 아버지에게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크레그 씨는 힘들어하는 아버지에게 삼촌들 같은 많은 병사들의 희생으로 인해 민주주의와 자유가 지켜졌고 미국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는 말로 위로했습니다.

전쟁 후 70여년이 흐른 지금, 전사한 병사들의 소중함은 아직도 여전한 유가족들의 아픔을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월터 씨는 고통스럽지만 형의 유해가 돌아오는 것이 감사하며 어머니와 가족 모두가 묻힌 곳에서 형이 함께 쉴 수 있게 됐다며 감정을 추스립니다.

[녹취: 월터 윌킨스] “He’s going to be put where he belongs. So my brother and my mother in the resting place where the Lord wants them, I'm so painful.. I'm so sorry if I get so emotional. It's hard on me..”
폴 윌킨스 병장의 유해는 오는 26일 펜실베이니아 벨우드에 소재한 로건 벨리 묘지에 안장됩니다.

DPAA에 따르면 한국전에서 실종, 전사한 미군 중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병사는 지난 4월 기준 7천 559명 입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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