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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곡창지대, 핵심 광산 지역 피해…자연재해로 경제 기반 흔들려


지난 3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태풍 마이삭이 뿌린 폭우로 물에 잠긴 원산 시내 영상을 전했다.
지난 3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태풍 마이삭이 뿌린 폭우로 물에 잠긴 원산 시내 영상을 전했다.

국제사회 대북 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어려움을 겪어 온 북한 경제가 대규모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곡창지대에 이어 핵심 광산 지역까지 기반 산업에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연내 계획했던 국가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목표를 변경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지난 4월 당 정치국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일부 정책적 과업을 조정·변경”하겠다며 경제계획 수정에 나설 것을 밝힌 지 5개월 만에 이번엔 전면적인 변경을 꺼내 든 겁니다.

홍수에 이은 잇단 태풍으로 경제적 피해가 워낙 큰 탓에 이를 복구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관측입니다.

특히 북한 경제의 ‘숨통’ 역할을 하던 함경남도 주요 광산 지역이 9호 태풍 ‘마이삭’으로 직격탄을 맞은 게 경제계획 전면 수정의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태풍 피해로 인해 연말 경제계획 목표 달성이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북한은 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태풍 피해로 인해 연말 경제계획 목표 달성이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이번에 큰 피해를 입은 검덕지구는 북한 최대 규모의 납, 아연, 마그네사이트 등 비철금속 생산기지입니다. 김 위원장이 ‘북한 경제의 중요 명맥’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곳입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홍민 북한연구실장은 채굴 현장은 물론 교량과 도로, 철로가 망가지면서 수송체계도 크게 훼손돼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홍 실장은 철강과 건설자재, 총알과 같은 군수물자에 들어가는 금속을 생산하는 검덕지구의 피해는 북한의 국가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홍민 실장] “전반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이게 국가재정을 충당하는 측면에서의 중앙에서 관리하는 계획 영역에 있는 산업엔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요.”

북한은 세계 2위의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을 갖고 있는 나라로, 마그네사이트로 만드는 마그네시아 클링커는 건설자재인 시멘트, 고무, 도자기 공업에 널리 사용되는 재료입니다. 그동안 마그네시아 클링커 생산이 외화벌이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군은 물론 평양 시민까지 수도당원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동원해 피해 현장에 투입하면서 당초 당 창건 75주년인 10월 10일을 완공 목표로 삼았던 삼지연군 꾸리기 사업과 평양종합병원 건설 계획도 대폭 수정했을 것이라는 관측입니다.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태풍으로 인한 원산 지역의 인명과 재산 피해가 상당한 수준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그나마 완공이 미뤄져 왔던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도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갈마가 가장 바다쪽에 나와 있거든요. 근데 그 안쪽의 송도원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명사십리 쪽이거든요. 그러니까 수 십년 수 백년 된 소나무들이 뿌리째 뽑혔는데 그 최전선에 있는 갈마가 멀쩡하겠느냐고요. 그리고 원산 시내도 두 번이나 침수됐고 저지대는 살아남은 건물이 없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가 봐요.”

홍수와 잇단 태풍은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들에도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홍수에 이은 8호 태풍 ‘바비’로 최대 쌀 생산지인 황해남북도와 평안도가 큰 피해를 입었고 9호 태풍 마이삭과 10호 태풍 하이선은 함경남도 함흥평야 일대와 강원도 최대 쌀 생산지인 안변 지역을 할퀴었습니다.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김관호 책임연구원은 북한이 발표한, 태풍과 홍수로 인한 침수 농경지 면적 3만 정보를 토대로 식량 손실량이 8만 4천t 정도라고 추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피해 농경지에 대한 전체 집계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타격은 훨씬 심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탈북민 출신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북한 농민들이 체감하는 피해 정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습니다.

북한 서해안 지역의 쌀 생산지들은 홍수로 인한 침수에 해일로 인한 짠물 피해까지 겹쳤고 함경도와 강원도의 주작물인 옥수수는 태풍에 넘어져 농민들이 예년의 절반이나 수확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녹취: 조충희 소장] “자기 농장에서 총생산량의 농민들의 자기 타산이 있거든요. 보통 어느 정도 나오면 내가 먹을 게 얼마고 국가에 바칠 게 얼마다 하는데 국가에 우선 바쳐야 되니까 바치고 나면 뭘 먹고 사나 하면서 가을부터 굶는 사람이 생기게 됐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죠.”

북한이 이같은 대규모 재난 사태에 직면해 외부 지원 없이 복구와 경제 재건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당 정치국 회의에서 외부 지원 불허 의사를 분명히 한 바 있습니다.

김형석 전 한국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군은 물론 평양시민까지 복구 작업에 동원할 만큼 비상 상황이지만 신종 코로나 전파 우려와 대미 협상력 지키기 차원에서 외부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형석 전 차관] “이번 9.9절 계기로 해서 시진핑 푸틴이 축전도 보내고 그러잖아요. 상호 친선우호협력 관계, 서로 도와가자 그런 취지란 말이죠. 그러니까 어렵다 그러면 중국이 도와줄 거에요. 다만 지금 같은 제재 상황, 특히 미-중 갈등 상황에서 대놓고 많이 지원할 순 없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지원을 해 줄 거란 말이죠. 거기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믿음이 있을 거에요.”

이런 가운데 한국 통일부 당국자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대북 수해 지원과 관련해 “자연재해 등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인도적 협력은 일관되게 추진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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