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63억 달러가 넘는 가상자산이 탈취된 사건과 관련해, 북한 해커들이 약 5개월에 걸쳐 여러 단계의 사이버 공격을 벌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북한의 사이버 범죄가 국제 금융 안보에 미치는 위협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는 3일 공개한 초기 조사 보고서에서 이번 공격에 악성 소프트웨어 공급망 공격과 사회공학적 기법, 내부 인공지능(AI) 도구 침해 등이 복합적으로 동원됐다고 밝혔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면, 해커들은 지난 6월 가상화폐 지갑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는 엔지니어에게 변조된 개발 도구를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공급망 공격을 먼저 감행했습니다.
바이낸스 보안팀은 당시 이상 징후를 감지해 해당 기기를 교체하고 인증 정보를 갱신했지만, 지갑 인프라팀 담당자들의 신원 정보가 해커들에게 이미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해커들은 약 3개월 뒤인 9월, 구직 플랫폼을 통해 다른 엔지니어에게 접근해 가짜 채용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해커들은 첫 번째 화상 면접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 개인 사진이 담긴 소셜미디어 계정을 공유하는 등 치밀한 기만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이어 두 번째 면접에서는 최고경영자(CEO)로 위장한 인물이 면접 과제라며 악성코드가 포함된 소프트웨어를 업무용 컴퓨터에 설치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해커들은 지난달 20일 감염된 컴퓨터를 통해 바이낸스 내부 AI 도구에 접근한 뒤, 이를 이용해 다른 엔지니어들의 컴퓨터까지 장악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상화폐 지갑에 프로그램을 배포할 때 필요한 인증키까지 탈취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해커들은 지난달 29일 탈취한 인증키를 이용해 악성 프로그램을 배포하고 가상자산을 인출했습니다.
바이낸스는 공격이 시작된 지 약 4시간 만에 추가 유출을 차단했지만, 이미 상당한 규모의 가상자산이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영향을 받은 가상자산은 총 63억4천만 달러 규모로, 이 가운데 28억5천만 달러는 가상화폐 거래소와 발행사들의 협조로 동결되거나 차단됐습니다.
바이낸스는 자체 보유 자금과 ‘이용자자산보호기금(SAFU)’ 등을 동원해 손실액의 98% 이상을 복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바이낸스는 이번 사건 이후 인공지능으로 불리는 초지능(SI)을 활용한 보안 위협 탐지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외부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과 함께 전면적인 보안 점검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보안 연구 기금을 조성하고 주요 보안 기업들과 협력해 추가적인 보안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지난 31일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공격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은 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궤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이버 범죄를 모두 북한의 소행인 것처럼 국제 여론을 오도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김여정 총무부장은 이어 4일 발표한 담화에서는, "우리는 '바이낸스' 해킹사건을 그 어떤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사고나 고립된 사안으로 보지 않으며 워싱톤의 변함없는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연장선에서 고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킹 사태 배후가 북한이라면 "북한과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반박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한편 미국의 가상화폐 분석업체 TRM 랩스의 닉 칼슨 선임 분석관은 3일 VOA에 이번 사건은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국제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위협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습니다.
칼슨 선임 분석관은 북한이 가상화폐 절도를 통해 상당한 외화를 확보하고 있으며, 해킹으로 벌어들인 자금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닉 칼슨 / TRM 랩스 선임분석관]
“But I think a really key point here is that the burden should not be on the private sector to deal with this issue. North Korea is literally a pirate state that is raiding commerce, very much like pirates of the 18th century. The response to this must come from governments. Individual companies simply cannot control and defend against every possible attack, because the attack surface is far too large. So, in this situation, the responsibility for responding to and countering this threat falls on governments, especially the United States and South Korea.”
칼슨 선임 분석관은 특히 북한 공격에 대응할 책임을 개별 기업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며,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18세기 해적들이 상업 활동을 약탈했던 것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해적 국가라며, 개별 기업이 모든 공격 가능성을 통제하고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이에 대한 대응은 정부가 맡아야 하며, 특히 미국과 한국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 ‘디텍스(DTEX)’의 마이클 반하트 국가 지원 사이버 위협 연구 책임자는 3일 VOA에 바이낸스가 공개한 자료를 인용해 북한의 올해 해킹 시도가 57건에 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하트 연구 책임자는 그러면서 여러 북한 해킹 조직이 다양한 수법으로 반복적인 공격을 벌이고 있다며, 특히 탈취한 자금을 몇 분 안에 중국의 자금세탁 조직에 넘기는 것으로 보이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조진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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