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전문가들 "북한 여성 인권, '성평등'만 보면 패착...기본권 주목해야"


이신화 한국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자료사진)
이신화 한국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자료사진)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과 한국의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모두 여성이 임명되면서 북한에서 매우 심각한 여성 인권 개선 노력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여성 인권 전문가들은 북한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는 봉건 사회처럼 광범위하다며 자유 세계의 ‘성평등’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1일 발표한 첫 성명에서 북한 주민을 위한 자신의 임무를 설명하며 여성권 보호를 강조했습니다.

“첫 여성 특별보고관으로서 특히 여성과 소녀의 필요와 역경에 국제사회가 더욱 관심을 두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 겁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As the first woman appointed to this mandate, I am determined to dedicate special efforts to bring women’s and girls’ needs and adversities to the attention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살몬 보고관은 지난해 유엔 기구 내 첫 젠더 불평등 보고서 작성을 주도할 정도로 남미와 전 세계 여권 신장에 큰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최근 5년 만에 임명된 이신화 한국 외교부 북한인권협력대사 역시 ‘인간안보’에서 ‘여성안보’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의할 정도로 여권 신장에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이 대사는 최근 VOA와의 인터뷰에서 살몬 보고관과 자신의 경력이 북한의 여성권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신화 한국 북한인권협력대사] “저희는 여성이기 때문에 뭔가 있어야 하는 부분들을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유엔 사무총장 평화구축기금 자문위원을 3년 이상 했습니다. 거기서도 여성으로서의 피스메이커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앞으로 공부를 더 해야겠지만 탈북 여성도 이 부분에 상당히 유사한 것 같습니다.”

이 대사는 “첫 여성 보고관, 여성 인권대사”란 언론의 표현 자체가 성 불평등을 조장할 수 있어 불편하다면서도, 이달 말 서울에서 살몬 보고관과 만나 다른 주요 사안과 더불어 북한 여성 인권에 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엔 인권기구는 북한의 여성 인권 문제가 전반적인 인권 침해의 집합소라 불릴 만큼 매우 광범위하고 심각하다고 지적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 유엔인권사무소는 홈페이지에서 ‘여성 인권’에 관한 자리를 별도로 만들어 개선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녀평등법 등 여러 법령을 통해 남녀평등 보장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회 깊숙이 차별적 고정 관념이 자리 잡고 있고 “여성이 관리자급 자리에 앉는 사례도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또 여성이 사회,경제, 문화적 영역에 진출하는 기회가 제한되고 만연한 가정 폭력에 대한 보호제도가 전혀 없으며,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뇌물 문제가 있고 송환된 탈북 여성 등 구금 시설 내 여성들에 대한 다양한 폭력 문제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는 8일 VOA에, “북한 여성은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다양하게 침해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미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 (자료사진)
로버타 코헨 전 미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 (자료사진)

그러면서 ‘성평등’ 사안은 북한 당국이 부담을 덜 가질 수 있어 대화의 입구가 될 수 있겠지만, 북한은 더 광범위한 여성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로버타 코헨 전 미 국무부 인권 담당 부차관보] “Women's rights is certainly an important issue as well, but it has to be broadly defined. We're not just talking as I say about numbers of how many women are in this government office now. We're talking about a much larger issue of the treatment of women, including in camps and including in being turned back from China and being punished in reeducation camps.”

북한에 있어 여성권은 광범위하게 정의해야 하며, 단순히 정부에 현재 여성 고위 공직자가 얼마나 있나 등 성 불평등만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겁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그러면서 살몬 보고관과 이신화 대사가 정치범수용소 내 여성 처우 문제, 중국에서 북송된 여성들에 대한 교화소 내 처벌, 장마당 여성들에 대한 당국자들의 불법적 처우 등 다양한 문제들을 깊이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북한 출신 박지현 씨 역시 국제사회 기준으로 북한의 여성 문제를 ‘성평등’ 차원에서 접근하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지현 씨 (자료사진)
박지현 씨 (자료사진)

[녹취: 박지현 씨] “(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을 하는) 분들은 자유가 있는 곳에서 본인들의 인권을 말하는 거고요. 북한 여성 인권 문제는 자유가 전혀 없고 권리가 완전 박탈된 곳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19세기, 20세기에 처음으로 여성 인권을 말했던 그 시기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박씨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북한 여성에게 국제적 기준의 여성 인권을 말하기보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 옹호를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시장 활동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북한 여성, 한국에서 송금을 통해 북한의 가족을 돕는 탈북 여성의 경제권을 강조해 향후 여성에게 북한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힘을 불어넣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권고했습니다.

[녹취: 박지현 씨] “봉건적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여성이 처음에 육체적으로 핍박받는지, 북한이 1946년 남녀평등권법령을 발표했지만 사실은 여성도 하나의 일군으로, 북한이 말하는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든 거잖아요. 육체적 권리는 없고 정치적 권리부터 시작한 것. 그 순간부터 봐야만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일 겁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지난달 30일 ‘남녀평등권법령’ 공포 76주년을 맞아 여성을 봉건적 억압에서 해방시키고 여성들에게 자주적 존엄과 권리를 선물했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을 이동의 자유가 없는 ‘감옥국가’, 북한 여성 등 주민들을 봉건사회의 현대판 노예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오는 11일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76차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의 구금시설 등의 강제노동 등 착취 문제를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보고서를 인용해 “노예화에 관한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4월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에서 “북한 여성과 여아의 모든 권리에 대한 침해와 유린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개선을 거듭 촉구했지만, 변화 움직임은 거의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세계 70개 이상의 민간단체와 개인 활동가들이 연대한 북한자유연합의 수전 숄티 의장은 8일 VOA에, 살몬 보고관과 이신화 대사가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북한 여성의 가치가 파리와 같다”는 탈북민들의 한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수전 숄티(오른쪽) 북한자유연합 의장 (자료사진)
수전 숄티(오른쪽) 북한자유연합 의장 (자료사진)

그러면서 그 무엇보다 북송 위기에 놓친 탈북 여성 구출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수전 숄티 북한자유연합 의장] “When North Korea has been testing missiles and provoking and destabilizing the region, historically, China has quietly allowed refugees to leave. That's a fact.”

숄티 의장은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며 도발하고 지역을 불안정하게 할 때 역사적으로 중국은 탈북 난민들의 출국을 조용히 허용했다”며 살몬 보고관과 한국 정부가 대부분이 여성인 탈북 난민들 보호를 위해 중국을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미중 관계 악화와 우크라이나 사태, 탈북민 급감에 따른 정보 부족 등 복합적 이유로 살몬 보고관이 전임자들보다 어려움이 더 많을 것이라며, 각 정부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더 많은 배려와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