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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3대혁명 선구자대회 폐막…전문가 "위기 극복 비전 없는 퇴행적 대중 동원 행사"


지난 10월 북한 평양에서 노동당 창건 76주년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 10월 북한 평양에서 노동당 창건 76주년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북한이 미-북 관계 교착과 경제 위기라는 안팎의 어려움 속에서 6년만에 개최한 3대혁명 선구자대회가 오늘(22일) 폐막됐습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과거회귀적이고 퇴행적인 대중동원 행사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매체들은 지난 18일 평양에서 개막한 제5차 3대혁명 선구자대회가 22일 폐막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대회에서 전국의 3대혁명 기수들과 3대혁명 소조원들, 근로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참가자들의 열렬한 지지찬동 속에 채택됐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대회는 역사적인 서한에서 제시된 ‘모든 혁명진지를 3대혁명화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위대한 김정은 시대를 3대혁명의 최전성기, 사회주의 건설의 전면적 발전기로 빛내자고 호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앞서 선구자대회 개막 당일인 18일 보낸 서한에서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의 진전을 촉구한 데 대한 적극적인 이행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호소문에는 “위대한 김정은 동지의 두리에 천만이 굳게 뭉쳐 3대혁명의 새로운 고조기,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의 전면적 발전기를 힘차게 열어나가자”고 촉구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북한이 지난 1970년대 처음 시작한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 의 강화와 사상적 분위기 고조를 위해 진행됐습니다.

'3대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은 사상과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관철하기 위해 제창된 대중동원 운동으로, 1970년대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주도로 시작됐습니다.

북한은 통상 3대혁명 선구자대회를 10년 정도 주기로 열었지만 이번 대회는 지난 2015년 제4차 대회 이후 6년 만에 열었습니다.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 첫 해 결산을 앞두고 있는데다 김정은 위원장의 집권 10년에 맞춰 개최 시점을 정했다는 관측입니다.

북한은 대미 관계의 교착 장기화와 국제사회 대북 제재,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등으로 인한 경제난 심화 등 안팎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비상한 시기를 맞아 내부 결속 강화를 위해 시대착오적인 70년대식 대중동원 운동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 박사는 이번 대회는 반사회주의와의 투쟁, 각종 대중동원 행사의 개최, 김정은 우상화작업의 가속화 등 2019년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두드러진 퇴행적 행태들의 연장선상에서 치러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복합적인 위기에 처한 김 위원장이 다시 선대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개혁개방이라는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하는데 경제에서도 과거로 회귀하고 있고 자력갱생이라는 이미 실패가 입증된 정책에 집중하고 있고 그리고 새로운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요. 최근 수령을 강조하는 것도 흔들리는 김정은 체제를 결속시키기 위한 시도이지 지금 내세울만한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수령이다, 이렇게 말할 상황이 아니거든요.”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인태 박사는 이번 대회에서 강국건설을 위한 김정은 혁명사상이 언급된 데 대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내용이 없다며, 세습정권의 속성에 따라 여전히 선대 지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호소문에는 “난관 앞에 주춤하거나 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강국 건설 목표는 이상으로만 남게 된다”며 “현 시기 사상혁명의 최우선 과제는 전당과 온 사회를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일색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박사는 지금은 김 위원장의 집권 10년을 자축할 상황이 아니라며 이번 대회는 당장의 위기 국면에 집중한 체제결속용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인태 박사] “모든 게 다 세습정권이다 보니까 예를 들어 노동당의 핵심인 지도사상도 김일성 김정일 주의거든요, 아직까지는. 그러니까 모든 걸 종합해보면 김정은만의 혁명사상이라고 정립할만한 내용은 모호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일단 이번 선구자 대회 자체를 놓고 보면 이 의미는 10년의 성과를 자축하는 의미보다는 5개년 1차년도 분위기에 맞춰서 단결적 차원에 집중해서 다시 한 번 총동원으로 가자, 이런 분위기이지 않습니까.”

조한범 박사는 북한의 과거회귀적 행태는 김 위원장이 핵 무력 완성 이후 경제발전을 도모하려 했던 지난 10년간의 전략이 실패한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조 박사는 2017년까지 권력 기반 공고화와 핵 무력 강화에 전념했던 김 위원장이 이를 협상 지렛대 삼아 2018년부터 대미 협상을 통해 경제 건설에 집중하려 했지만 강력한 대북 제재와 예기치 못한 신종 코로나 사태가 겹치며 지금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핵을 개발하면 개발할수록 모든 자원이 경제가 아닌 핵으로 집중됐고 여기에 역으로 대북 제재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거든요. 지금 상황에선 핵을 포기해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데 김정은 입장에선 핵을 단기간에 포기하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그러니까 핵에 집착한 김정은의 정책은 결과적으론 치명적인, 벗어나기 어려운 덫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통일연구원 홍민 박사는 이번 대회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난관 돌파를 위한 새로운 선택을 하기 보다는 당분간 내부 경제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더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홍 박사는 북한이 핵 협상을 둘러싸고 미국과의 대립각을 한층 더 높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녹취: 홍민 박사]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선 양보하거나 수그러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불가역적으로 강해져서 좀 더 자신의 협상력을 높이는 쪽으로 가겠다 이런 선택을 한 것 같아요. 그런 선택을 하다 보니까 내부적으로 통치에 필요한 경제적 부분과 이런 부분들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그래서 결국은 퇴행적으로 구호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는 이번 대회에서 나온 메시지를 감안하면 북한이 천리마운동 같은 과거 노력동원 방식의 캠페인들을 앞세워 상당 기간 폐쇄형 자력갱생 노선에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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