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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북한 19년 만에 '돈표' 발행


북한 평양. (자료사진)
북한 평양. (자료사진)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이 19년 만에 외화 교환용 ‘돈표’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민들의 외화 사용을 막고 돈주들의 달러를 흡수하려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돈표를 발행한 배경과 의미를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이 외화 교환용 ‘돈표’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매체인 ‘프리덤 앤 라이프’는 최근 “북한이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 개선 조치 때 폐지한 외화 교환용 ‘돈표’를 발행했다”며 “실물을 입수했다”고 밝혔습니다.

공개된 돈표를 보면 전면에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중앙은행’과 ’돈표’라는 문구가 보이고, 발행연도는 ‘주체 110 (2021)년으로 돼 있습니다.

앞면에는 ‘오천원’이라는 문구와 함께 평양의 개선문과 함께 수풍댐과 벼 등이 그려진 북한의 국장이 인쇄돼 있습니다.

뒷면에는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중앙은행’이라는 문구와 함께 ‘5000원’ 오천원’이라고 인쇄돼 있습니다.

북한이 외화 교환용 ‘돈표’를 발행한 것은 19년 만입니다.

1970년대 북한은 ‘외화와 바꾼 돈표 ’을 발행했습니다. 당시 평양에는 수입물품을 파는 ’평양 외화상점’ ‘낙원백화점’ 등 20여 개 외화상점이 있었습니다.

평양의 외국인과 일본에서 북송된 한인, 당 간부들은 외화상점에 가서 갖고 있던 외화를 ‘외화와 바꾼 돈표’로 교환해 물건을 사야만 했습니다. 탈북민 출신인 한국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입니다.

[녹취: 김흥광 대표] ”저도 85년도에 일본 삼촌이 고국방문을 하면서 엔화를 주었는데, 엔을 직접 쓰면 안되기 때문에 외화상점에 가서 외화와 바꾼 돈표와 바꿔서 사용했죠.”

그 후 1990년대 후반 장마당 경제가 커져서 달러와 위안화가 널리 쓰이고 장마당에는 환전상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2002년 6월 김정일 정권은 ‘돈표’ 를 폐지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다시 외화 교환용 ‘돈표’가 등장한 겁니다.

과거와 다른 점은 전에는 ‘조선무역은행’이 ‘외화와 바꾼 돈표’을 발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선중앙은행’이 ‘돈표’를 발행하고 돈에 ‘외화와 바꾼’이라는 표현이 사라진 것이 차이점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외화 사용 금지와 외화 확보 두가지 목표를 위해 돈표를 발행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북한은 지난해 가을부터 달러와 위안화 등 외화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지난해 10월 말 평양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 당국이 평양의 소매점에서 달러화나 (전자 외화 선불카드인) ‘나래카드’를 받지 않고 원화로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의 북한경제 전문가인 동용승 굿파머스 사무총장은 북한이 이번에 돈표를 발행한 것도 주민들의 외화 사용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외화 자체가 북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에서 외화가 유통되면 정책을 쓸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게 외화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걸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이 돈표 발행을 통해 시중의 외화를 흡수하려는 것같다고 말합니다.

북한은 2018년부터 3년간 외화보유고를 활용해 제재를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외화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낸 상황입니다.

따라서 돈표를 발행해 돈주와 상인들이 갖고 있던 달러와 위안화를 흡수하려 한다고 윌리엄 브라운 미 조지타운대 교수는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May be trying to suck in more US dollar into government…”

그러나 돈표를 발행했다고 해서 북한 당국의 의도대로 시중의 외화가 잘 흡수될 것같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무엇보다 달러 또는 위안화를 갖고 있는 돈주와 상인 입장에서 보면 ‘돈표’는 ‘손해’를 의미합니다.

돈주와 상인들은 과거 1 달러에 8천원을 지불하고 달러화를 사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당국의 방침대로 1 달러를 액면가 5천원인 돈표와 교환할 경우 달러 당 3천원 가량의 손해를 보는 셈입니다. 따라서 급한 경우가 아니면 갖고 있는 달러화를 내놓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이에 대해 동용승 사무총장은 지금처럼 북-중 무역이 막히고 당국의 통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는 돈주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달러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동용승 사무총장] ”지금 환율이 5-6천원인데, 돈주 입장에서는 달러를 내놓지 않겠죠. 그러나 계속 이런 상황이 된다고 하면 내놓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는데, 시간이 걸리겠죠.”

북한 경제를 오래 관찰해온 브라운 교수는 돈표 발행이 물가 오름세, 즉 인플레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윌리엄 브라운 교수] ”It could expand money supply, it all depend how…”

돈표의 액면가는 5천원입니다. 따라서 1 달러와 돈표를 교환할 경우 북한 돈 5천원이 시중에 풀리게 됩니다.

만일 100만 달러 상당의 돈표가 교환될 경우 북한 돈 50억원이 시중에 풀리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돈이 일시에 풀리면 자연 물가오름세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돈표 발행으로 물가가 오르면 북한의 물가난은 한층 악화될 전망입니다.

지난해 1월 북-중 국경이 봉쇄되면서 중국에서 수입되던 조미료, 설탕, 밀가루, 식용유 가격이 5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1kg에 6천원대였던 설탕 가격이 2만7천원대로 올랐고, 1만6천원이었던 조미료는 7만5천원대로 폭등했습니다.

북한 물가의 기준이 되는 쌀값도 불안합니다. 북한의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접촉하는 김흥광 대표는 추수철이 됐지만 쌀값은 여전히 비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흥광 대표] “개인 소토지에서 올 곡식이 나왔다고 하지만 식량 가격이 여전히 비싼 것은 절대적인 공급량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얘기고, 이런 식으로 가면 10월에는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고..”

일본의 북한전문 매체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7월 중순 kg에 7천600원까지 올랐던 북한 내 쌀값은 9월 17일 5천600원으로 다소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1월 초 4천원에 비하면 아직 1천600원이나 비싼 편입니다.

환율 변동폭도 여전히 큽니다.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1월에 달러 당 7천원 선이었던 환율은 9월 17일 현재 5천 400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달러 가치가 22%가량 감소한 것을 의미합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장마당 활동을 통해 부지런히 달러를 벌어 저축해 온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 달러 가치 하락은 실질 물가 상승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미 남부 조지아주립대 그레이스 오 교수입니다.

[녹취: 그레이스 오 교수] ”There is some sort of artificial controlling of currency value, government...”

북한은 지난 3년간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 비교적 잘 버텨왔습니다. 제재 와중에도 상당한 규모의 밀가루, 비료, 담배, 술 등을 중국에서 수입했습니다.

환율도 1 달러에 8천원 선으로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에 이어 올 6월에도 또다시 환율이 폭락하는 등 변동폭이 커졌습니다.

북-중 무역의 축소와 연이은 환율 폭락세는 북한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 수뇌부가 날로 악화되는 경제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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