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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북한 농민들 "정부, ‘포전담당제' 약속 안 지켜"


지난 5월 북한 청산리 주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북한 청산리 주민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에서는 요즘 쌀과 감자를 수확하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분배가 한참입니다. 그런데 작황이 나쁜데다 알곡 수매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농업을 비롯한 북한 경제를 책임진 김재룡 내각총리는 최근 황해도와 평안도 협동농장을 찾아 정확한 포전담당책임제 실시를 강조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총리인 김재룡 동지가 황해남북도와 남포시를 요해하면서… 분조관리제 안에서 포전담당책임제를 정확히 실시하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북한 TV는 벼 농사를 잘 지은 다수확 농민을 치켜 세우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곡물 수확은 10년 만에 최악이었던 지난해보다도 더 나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곡물 수확량이 지난해에 비해 10만t-20만t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벼 생산량이 떨어지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고, 옥수수 생산량도 조금 줄었고, 나머지는 콩이라든지 약간의 잡곡 그 다음에 감자 이런 것들인데, 나머지 가을 작물들도 전반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올해는 봄, 여름 강수량이 평년의 60% 밖에 안될 정도로 가뭄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로 디젤유 같은 기름 공급이 잘 안 돼 트랙터, 양수기, 탈곡기 같은 농기계를 움직이기 힘들었습니다. 비료 공급도 충분치 않았습니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9월7일에는 초강력 13호 태풍 ‘링링’이 북한 전역을 강타했습니다. 태풍 반경이 300km에 달하는 이 태풍은 시속 50km의 빠른 속도로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북도, 자강도 일대를 휩쓸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태풍은 초당 15m 속도로 불다가 부분적으로 초당 20m의 속도로 이 지역을 휩쓸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태풍으로 인해 4만6천200정보 (약458 평방km)의 농경지가 침수되고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한편 도로와 하천이 파괴됐다고 밝혔습니다.

태풍은 북한 농업에도 적잖은 피해를 입혔습니다. 특히 북한 곡물 생산의 60%를 담당하고 있는 서해안 지역 즉, 황해남북도와 평안남북도의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의 식량 사정이 한층 빡빡해질 전망입니다. 유엔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이 굶지 않으려면 연간 576만t의 식량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곡물 생산량은 417만t으로 159만t이 부족했습니다. 따라서 올해 수확량을 400만t으로 잡으면 또다시 176만t가량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포전담당제를 둘러싼 북한 당국의 약속 위반도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은 2012년을 기해 포전담당제를 도입했습니다. 포전담당책임제 또는 분조제라고 불리는 이 제도의 핵심은 농민들에게 일한 만큼 그에 따른 보상을 주는 겁니다.

과거에는 협동농장에서 10t의 쌀을 생산하면 국가에 토지 사용료와 물, 전기, 비료, 농약 대금조로 5t을 납부하고 나머지를 ‘평균주의’ 원칙에 따라 농민들에게 현금으로 분배했습니다.

따라서 농민 입장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든 적당히 하든 소득이 비슷해 근로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북한 돈의 가치가 떨어져 몇 만원을 받아도 장마당에서 물건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조제에서는 15t을 생산할 경우 국가에 5t을 납부하고 나머지 10t은 분조원들의 실적에 따라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 중방] “분조에서 생산한 알곡 가운데서 국가가 정한 일정한 몫을 제외한 나머지는 농장원들에게 그들이 번 노력 일에 따라 현물을 기본으로 하여 분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국가와 농민이 곡물 생산을 7:3으로 나누는 분조제는 농민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당초의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라고 탈북자들은 지적합니다. 분조제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주어진 논과 밭에서 생산된 쌀과 강냉이를 약속한 분배 비율로 정확히 나누어야 하는데,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 탈북자 박광일 씨입니다.

[녹취: 박광일] ”정부가 이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농사를 짓고 나니까 정부가 여러 가지 명목을 뜯어가는 게 70% 이상이에요. 그러니까, 농민에게 차려지는 것이 없는 거죠.”

북한 당국이 농민들에게 무리한 생산 목표를 강요하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곡물을 강제로 빼앗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량미 공출도 농민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공식적인 분배 외에도 농민과 일반인들로부터 군량미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농민과 시장 상인들은 1인당 30-60kg 가량의 군량미를 바쳐야만 합니다. 또 일반인이 군량미를 낼 경우 ‘원군미풍의 선구자’라며 칭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군량미 공출은 포전담당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군량미를 바치지 않으면 땅을 몰수하겠다고 당국이 위협을 가해 갈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인스티튜트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국가가 군량미 등의 명목으로 수확량을 대부분 가져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권태진 박사] ”국가가 농자재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군량미 일부 가져가고 수매를 해가면 70%는 가져가거든요, 그러면 국가의 역할을 못하면서 농민의 몫을 빼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밖에 ‘인민군대 돼지 지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농민들이 자신이 키우던 돼지를 군대에 바치는 겁니다. 만일 돼지를 바치지 못하면 그에 따른 불이익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50kg짜리 돼지를 바치지 못하면 돼지고기 1kg당 강냉이 5kg씩 계산해 자신이 받을 식량에서 250kg을 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탈북자 박광일 씨입니다.

[녹취: 박광일] ”키울 수 있는 농민은 키우는 거고, 키울 수 없는 농민은 못키우는 건데, 못 키우는 사람은 분배에서 식량 몇kg를 떼는 거죠.”

탈북자들은 올해 ‘인민군 돼지 지원’이 힘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북한은 지난 5월 말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을 통보했습니다. 그후 북한 당국은 나름대로 방역 노력을 기울였으나 돼지열병은 지난 5개월 간 북한 전역으로 확산됐습니다.

그 결과 평안북도의 경우 돼지가 전멸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한국 국정원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식량 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북한은 한국의 식량 지원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북한은 식량 상황이 심각하다며 유엔을 통해 식량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한 1억 달러 상당의 쌀 5만t 지원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한국의 쌀 지원에 대해 아무런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았고, 결국 한국 정부의 지원 계획은 무산됐습니다.

북한 수뇌부가 식량 부족 사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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