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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버지니아대학교 (1)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Charlottesville)'에 소재한 버지니아 대햑교 상징물인 로툰다.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Charlottesville)'에 소재한 버지니아 대햑교 상징물인 로툰다.

이 시간에는 미국의 대학들 소개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동부의 명문 주립대학교인 '버지니아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성의 산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오디오] 버지니아대학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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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명문 주립대학교"

흔히 줄여서 'UVA'라고 부르는 '버지니아대학교(University of Virginia)'는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에 있는 주립대학교입니다. UC버클리, UCLA, 미시간대학교 등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주립대학으로 손꼽히는 학교인데요. 매년 미국의 대학들을 평가해 순위를 발표하는 'U.S. News & World Report'의 2020년 평가에서는 전국의 주립 대학들 가운데 4위에 올랐습니다.

"미국 건국의 역사와 함께 호흡한 학교"

버지니아주는 미국에서 제일 처음 영국의 식민지 정착촌이 세워졌던 곳입니다. 그만큼 유서 깊은 곳인데요. 이런 버지니아주에 1819년 설립된 '버지니아대학교' 역시, 미국의 초기 건국의 역사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교입니다. 버지니아대학교는 특히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직접 세운 대학인데요. 미국에서 38년간 대학 진학 상담과 교육을 해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의 도움말 먼저 들어보시죠.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미국 헌법을 기초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요, 버지니아주 주지사, 연방 국무장관, 제3대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오늘의 미국이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선각자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1819년에 설립했고, 3대 토머스 제퍼슨, 4대 제임스 매디슨, 5대 제임스 먼로 등 3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대학의 운영 이사진으로 활동했던, 미국의 건국 역사와 함께 호흡한 대학이 바로 버지니아대학교입니다."

"버지니아대학교의 설립자, 토머스 제퍼슨"

버지니아대학교 설립자 토머스 제퍼슨 전 미국대통령의 동상.
버지니아대학교 설립자 토머스 제퍼슨 전 미국대통령의 동상.

버지니아대학교를 세운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1801년부터 1809년 초까지 재임했는데요. 제퍼슨 대통령은 퇴임한 지 10년 후에 이 버지니아대학교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세우기 훨씬 전부터도 공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설파했다고 하네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버지니아대학교를 알기 위해서는 오늘날 미국이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토대를 마련하고, 미국 건국의 한 획을 그은 거목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의 사상과 당시 미국의 시대적, 정치적, 그리고 교육적 여건을 잠시 살펴보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1779년, 버지니아주지사였던 제퍼슨이 주 의회에 제출한 교육 법안에는 그의 소신을 담고 있었는데, 교육의 기회는 주민 모두에게 아주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이 활약했던 시절에는 오늘날과 같은 공교육 제도는 전혀 없었고요. 부유층 자녀들만 개인 교습을 받아 몇 안 되는 대학에 진학하고, 결국 이들이 사회 지도자가 되는 식이었는데요. 하지만 제퍼슨은 더 이상 이를 답습하지 말고 신생 미국에는 공교육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고 해요. 다시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이야기입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한국의 행정구역인 군에 해당하는 모든 '카운티'를 약 8~9km의 직경으로 나눠, 무상으로 교육하는 학교가 세워져야 하며, 학생들에게 독해력과 작문, 산수를 강조하는 교육을 시키고 대학 교육까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원대한 국민 교육 철학은 전부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초등학교까지만 무상교육을 시키고, 중학교 이상부터의 교육은 각 카운티의 재량에 맡기기로 했던 것입니다. 물론 토머스 제퍼슨은 재원 부족으로 이러한 원대한 국민교육을 실시할 수 없음을 개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 공교육 제도의 뿌리는 바로 여기서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퍼슨과 해밀턴의 반목"

교육에 대한 토머스 제퍼슨의 열정은 대통령이 되면서 더욱 구체화되는데요. 하지만 당시 토머스 제퍼슨의 이런 선구자적 신념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특히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반대가 심했는데요. 오늘날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양당 제도가 탄생한 것도 바로 제퍼슨과 해밀턴의 갈등에서 출발할 만큼 두 사람의 반목은 심각했는데요. 토머스 제퍼슨과는 거의 모든 면에서 이견을 노출했던 해밀턴은 교육에 대한 관점 역시 매우 달랐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이야기 들어보시죠.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토머스 제퍼슨은 부유층들만이 권력을 잡고 교육을 받는 사회 제도가 지속된다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건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갖춰지려면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도덕성과 재능을 겸비한 인재들이 등용되고 이들이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미국 최초의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부유층 인재들이 교육을 잘 받아서 국가의 지도자들이 되어 일반 대중을 이끌어가는 국가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둘의 의견 대립이 당시에는 아주 열띤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퇴임 후 꿈을 이룬 제퍼슨"

1809년,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고향인 버지니아주 몬티첼로에 있는 대저택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때 제퍼슨의 나이는 66세였는데요. 고향에 돌아간 제퍼슨은 이후 많은 젊은이들과 교류하며 대학 설립의 꿈을 구체화시켜 나갔습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제퍼슨이 퇴임 후 거주한 버지니아 자택에는 많은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걸 특히 반가워했던 토머스 제퍼슨은 이들과 함께 교육, 정부, 서적, 과학 발전 등에 대해서 토론했고, 특히 청년들에게는 젊었을 때 공부를 더 하라고 조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때마다 제퍼슨은 교육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으며, 정부는 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국민에 의해 좌우돼야 한다는 그의 소신을 끊임없이 피력했는데요. 재야에 있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미 건국의 영웅들에게 끊임없는 자신의 교육 소명과 소신을 펼친 지 39년이 지난 1818년 2월 21일에야 드디어 버지니아주 의회는 버지니아주에 주립대학교 설립 법안을 인준하기 이르렀고, 은퇴한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의 지성, 시간, 그리고 정력을 공교육 기관 건립을 위하여 아낌없이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819년, 학교가 공식 설립됐고요. 1825년 3월, 드디어 버지니아대학교의 첫 수업이 시작됐는데요. 그러고 나서 바로 이듬해인 1826년 토머스 제퍼슨은 8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둡니다.

"버지니아대학교의 아버지, 여기 잠들다"

미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이 사망한 1826년 7월 4일은 신생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7월 4일이었습니다. 미국은 막 독립 선언 50주년을 축하하려 하고 있었는데요. 공교롭게도 2대 존 애덤스 대통령도 이날 사망해, 미국은 건국의 아버지들을 두 명이나 같은 날 잃었습니다. 제퍼슨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했다고 해요.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제퍼슨은 건강이 극히 악화하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어떻게 묻어달라는 유서를 써서 자기 집 아래 산자락에 간단한 묘지를 만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묘지의 모양도 그림으로 남기고, 묘지에는 “미국 독립선언서의 기초자이자, 버지니아 종교 자유법의 제안자,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교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 여기 잠들다’라고 하는 간단한 내용을 새겨주기를 원했습니다. 즉 자신의 화려한 경력이었던, 버지니아 주지사, 미국 국무장관, 제3대 대통령 등 자신의 지위에 관해서는 쓰기를 원치 않았으며, 오로지 한 사상가요, 교육자로만 후대에 알려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제퍼슨은 그의 유언대로 몬티첼로의 조용한 산기슭 묘지에 묻혔는데요. 하지만 제퍼슨의 선각자적인 교육 정신은 오늘날에도 그가 사랑했던 버지니아대학교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상공에서 바라본 버지니아데 캠퍼스.
상공에서 바라본 버지니아데 캠퍼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캠퍼스"

버지니아대학교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2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샬러츠빌(Charlottesville)'이라는 작고 조용한 도시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버지니아대학교는 대학 캠퍼스로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대학교이고요.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학문적 마을'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대학이기도 합니다.

[녹취: 교육 전문가 손승호 씨] "제퍼슨이 구상했던 대학 상아탑은 ‘Academic Village’라고 할 수 있는 학문적인 마을들이, 광활하게 펼쳐진 잔디 공원을 따라 곳곳에 형성되어 있고, 그 정 중앙에는 대학 도서관이 자리 잡고, 이것들이 모여 지식의 보고를 형성하는 캠퍼스였습니다. 이런 캠퍼스를 이루어야 한다고 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제퍼슨은 자신이 직접 건물들을 설계하고 교육과정을 편성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쏟았습니다."

네, 미국 대학을 찾아서,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됐네요. 오늘은 학교 설립자 토머스 제퍼슨을 중심으로 미국의 손꼽히는 명문 주립대학인 버지니아대학교 살펴봤고요. 다음 시간에는 버지니아대학교의 현황과 입학 규정 등 유익하고 다양한 이야기 좀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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