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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국군포로들, 역사박물관 왜곡 전시 분노...“냉전 잔재 해체는 국군포로·납북자 해결 우선”


11일 청와대 앞에서 6·25 전시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시위하고 있다.
11일 청와대 앞에서 6·25 전시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시위하고 있다.

한국의 국립 역사박물관이 사실과 다른 6·25 한국전쟁 국군포로 내용들을 전시했다가 국군포로 가족들의 항의로 철거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국군포로와 전시·전후 납북자 가족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한반도 냉전의 잔재 해체”는 전쟁 피해자 문제부터 해결하며 풀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지난 7일 서울의 국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이 박물관이 정전협정 65주년을 맞아 시작한 6·25 전쟁포로 전시회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를 찾은 국군포로 출신 이선우 할아버지가 버럭 화를 냅니다.

[녹취: 이선우 씨] “그거 뭐 순 엉터리지 뭐. 국군포로 거기 나온 것과는 완전히 반대란 말야. 그런 현수막을 걸어 놓은 데가 어디메 있어.”

전시회가 소개한 귀환하지 못한 한국군 포로(이하 국군포로) 규모가 너무 다르고 국군포로에 관한 내용도 거의 없어 균형적이지도 않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VOA’가 확인한 결과 박물관이 제시한 국군포로 규모는 한국 정부나 유엔군사령부의 통계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철거 전 전시했던 왜곡된 한국전쟁 포로 통계들. 박물관이 제시한 국군포로 규모는 유엔군과 미 육군이 기록한 국군과 유엔군 포로 통계인 10만 8천여 명과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철거 전 전시했던 왜곡된 한국전쟁 포로 통계들. 박물관이 제시한 국군포로 규모는 유엔군과 미 육군이 기록한 국군과 유엔군 포로 통계인 10만 8천여 명과 큰 차이를 보였다.

박물관은 출처 없이 1954년 기준이라며 유엔군 관할 포로수용소의 북한군과 중공군 등 포로는 18만2천96명, 북한군과 중공군 관할 포로수용소에는 국군 8천656명 등 1만 3천435명이었다고 큼직하게 게재했습니다.

한국 국가기록원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유엔군사령부는 국군 실종자 수를 8만 2천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유엔군과 미 육군 기록을 보면 북한군 총사령부는 1951년 전단과 방송을 통해 발표한 국군과 유엔군 포로 규모를 10만 8천여 명이라고 밝혔었습니다.

하지만 정전협정 체결과 함께 공산군이 최종 인도한 국군포로는 8천 300여 명에 불과합니다.

북한 정부는 이후 국군포로는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1994년 국군포로 출신 조창호 전 중위가 처음으로 탈북해 귀환한 이후 80여 명이 추가로 한국에 왔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철거 전 전시했던 왜곡된 한국전쟁 포로 송환 내용.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철거 전 전시했던 왜곡된 한국전쟁 포로 송환 내용.

역사박물관은 그러나 이런 내용에 대해 전혀 언급없이 오히려 포로들의 행방을 소개하며 “북한 포로수용소의 국군 및 유엔군 포로들은 대부분 모국으로 귀환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세한 부연 설명이 없기 때문에 북한에 있던 포로들이 거의 다 귀환했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귀환한 포로들이 대부분 행선지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전시물 대부분은 북한 내 국군포로의 생활이 아닌 한국에 있던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에 대한 처우, 미군과 유엔군이 행했던 부정적인 내용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가령 미군의 포로재교육 목적은 ‘본국으로 송환될 포로들을 미국식 자유주의 질서의 전파자로 만드는 것”, “전쟁 이전부터 있었던 빨치산들은 국제법상 전투원이 아닌데도 붙잡혀 포로가 됐다”고 주장하면서 북한 내 국군포로 내용은 전무한 겁니다.

국군포로가족회 손명화 사무국장은 전시회를 관람한 뒤 박물관 측에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녹취: 손명화 국장] “한국에 있는 포로수용소 내 포로에 대한 이야기는 있고 북한에 잡혀 가 있는 포로들의 생활과 삶에 대해서는 하나도 전시회에 없습니다. 그럼 국군포로는 전쟁포로가 아닙니까? 그럼 어디메 포로입니까? 그것이 너무 화가 났습니다.”

박물관 측은 국군포로와 가족, 민간단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가 차례로 방문해 이를 지적한 뒤 문제가 된 전시물들을 10일 대폭 철거했습니다.

박물관 관계자는 ‘VOA’에 갑작스럽게 전시회를 공동 기획하면서 미리 꼼꼼하게 검토하고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했습니다. 뒤늦게 민원을 받은 뒤 사실과 다르거나 논란이 되는 부분들을 내렸다는 겁니다.

공동기획자인 서울대학교 연구원은 자신의 인터넷 사회연결망 서비스에 올린 전시 관련 글에서 “한국전쟁기 포로의 숫자가 몇 명인지를 따져 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며 누가 왜 포로가 됐는지가 더 유의미하다고 주장했습니다.

`VOA'는 11일 이 연구원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손 국장은 “역사를 왜곡하거나 무시하면서 어떻게 정의와 평화를 바로 세울 수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녹취: 손명화 국장] “이번 일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일을 놓고 어르신들이 막 격분해서 잠도 못 자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어떤 어르신은 청와대에 방문하겠다. 민원을 넣겠다고 편지를 쓴다고…”

지난 2006년 탈북해 한국에 귀환한 이선우 할아버지는 가족과 친척을 만나고 부모 산소를 본 뒤 사흘만에 죽어도 원이 없는 게 북한 내 국군포로들의 심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난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북한에 있었을 때나 지금이나 국군포로 문제가 의제로 제기되지 않는 데 실망하고 있는데, 역사박물관까지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선우 씨] “한마디도 없어 국군포로 얘기.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부터는 죽을 각오를 하고 탈북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탈북한 게 81명이 왔습니다. 그 중에 이제 28명이 아직 살고 있는데. 그런데 북한에 살고 싶어서 거기 떨어졌다? 이 엉터리 아닙니까?”

이런 모습은 최근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상황에서 소외감을 더욱 느낀다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들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6·25 전시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11일 청와대 앞에서 개최한 시위에서 종전 선언과 냉전을 끝내겠다며 피해자들에 대해 아무 언급도 없는 문재인 대통령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단체 이미일 이사장입니다.

[녹취: 이미일 이사장] “문 대통령은 한반도 인권을 위한 냉전의 잔재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먼저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전쟁 납북 피해자들의 소원을 풀어주시길 다시 한 번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미일 이사장은 한국 정부가 과거 발간한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조사 보고서’는 피해자가 10만 명에 달하며 이는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기록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한 명도 납치하지 않았다는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뢰를 받으려면 이런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미일 이사장] “북한 김정은이 신뢰를 받으려면 종전 선언 전에 먼저 납북자 문제를 시인하고 해결해야만 합니다. 저희들은 전쟁광도 아니고 반통일 세력도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전쟁을 끔찍하게 싫어하며 참 평화와 자유 통일을 학수고대합니다.”

1969년 북한의 대한항공 납치 피해자 황원 씨의 아들 황인철 씨가 11일 한국 외교부 앞에서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1969년 북한의 대한항공 납치 피해자 황원 씨의 아들 황인철 씨가 11일 한국 외교부 앞에서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1969년 북한 정권의 대한항공 납치 피해자 황원 씨의 아들 황인철 씨도 11일 한국 외교부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녹취: 황인철 씨] “내 아버지를 납치하고 강제 구금하고 있는 북한 정권을 규탄한다!”

이날은 황 씨의 아버지 등 대한항공 승객 50명이 북한 요원에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간 지 4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황 씨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 인권선언 70주년 연설에서 “한반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게 우리 민족 모두의 인권과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 말에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인철 씨] “냉전체제에 발생했던 모든 것들에 피해자들이 눈을 감아야 하고 망각을 해야만 그것이 해체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을 실현해서 가족을 만나게 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해체인지 거기에 대해 저는 의문점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항공기 납치 사건 조사 진정에 대해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라며 각하했고 정부 역시 이 사안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황 씨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게 아버지 납치 49주년을 맞아 꼭 이 말을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황인철 씨] “대통령님, 저희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시는 실정인데 저희 아버지 대한민국에 꼭 모시고 와서 같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세요. (김정은 위원장께)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남북관계에 함께 하겠다고 하면 바로 이런 문제, 저희 아버지 모시고 와서 자유롭게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주시면 진짜 평화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그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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