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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옛 동독·북한 교사들 “한국인들, 통일 대비 승자 마인드 경계해야”


한국 명동 티마크 그랜드 호텔에서 '통일 이후의 교육, 독일과 함께 논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 명동 티마크 그랜드 호텔에서 '통일 이후의 교육, 독일과 함께 논하다' 토론회가 열렸다.

남북한 교육이 통일 등으로 통합될 경우 한국 교육자들은 승자 입장의 마음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고 옛 동독의 교사와 탈북 교사들이 권고했습니다. 또 교사의 권위나 의무, 수업환경도 남북 간에 많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과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의 교사 연봉과 학교 환경은 선진국이 주로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우수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OECD가 지난 9월 발표한 지난해 기준 교육지표를 보면 한국의 15년 차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사 연봉은 5만 3천여 달러. OECD 회원국 평균보다 적게는 4천에서 많게는 8천 달러를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016년 기준으로 초등학교 16.5명, 중학교 14.7명, 고등학교 13.8명으로 여유가 있습니다. 또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체벌은 상상하기 힘들고, 오히려 학생의 권한이 많아져 요즘에는 교사들의 통제 수단이 너무 없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교사(교원)가 ‘작은 수령’이라 불릴 정도로 권위적이고 체벌이 일반화돼 있지만, 연봉은 수 십 달러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학생들을 혁명의 계승자로 키우는 직업적 혁명가’여서 한국의 교육환경과는 판이하다는 지적입니다.

이렇게 다른 남북한 교육환경을 통일 후 어떻게 순조롭게 통합할지를 논의하는 토론회가 최근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재단 한국사무소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북한 출신 교사들과 옛 동독 출신 교사는 모두 한국 교육자들의 마음 자세와 준비를 우선적으로 강조했습니다 .

옛 동독 수학교사 출신으로 현재 독일 작센주 교육문화부에 재직 중인 게랄드 하인체 일반학교-종일교육국 국장은 한국인들이 승자처럼 북한의 상황을 재단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독일 통합을 보면 서독의 삶은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동독은 사회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 동·서독 간에 승자와 패자 문화를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체제 청산 과정에서 사회적 과오와 개인적 잘못을 구분하지 못해 불필요한 피해자가 발생했고, 여러 사안을 획일적으로 판단해 제재하고 해고하는 부정적 사례들이 있었다는 게 하인체 국장의 지적입니다.

그 결과 동독 출신들, 특히 엘리트 계층이 서독과 교류하며 느꼈던 굴욕감과 부당함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하인체 국장은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재건 사업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동발전을 추구한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출신으로 한국에서 탈북학생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교사인 이심일 씨는 남북한이 독일 통일 과정을 참고해야 하지만, 동·서독보다 훨씬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심일 교사] “지역 간의 격차로 인한 위화감, 소외감 이런 문제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독일의 경우 통일 후 서독 교사에 비해 동독 교사들이 평가절하됐다는 경향이 있었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북한 교사들도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한 교수들에 비해 열등감을 느끼게 되거나 실제로 그런 시각이 있을 경우 많은 소외감, 위화감이 조성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부정적 기류가 북한 전역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겁니다.

북한 교사 출신으로 인천의 초등학교에서 통일전담 교육사로 활동하는 최경희 씨는 한국 교사들이 북한 교사와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자세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인들은 한국의 발전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교사들이 북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 반감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인들은 자존심이 무척 세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로 가르친다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이심일 교사는 북한 교사들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겠지만, 한국의 것을 전수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심일 교사] “북한 교사들에 대한 재교육이 우리가 북한 교사들을 다시 교육해서 남한사회에 적합한 교사들을 만들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라 북한사회를 돕고 북한의 인재들을 양성하는 선생님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세워주기 위한, 도와주고 지원하기 위한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즉각적인 통합보다 점진적인 통합, 시간적 여유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교사는 또 한국 내 탈북민 학생과 교사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영어보다 국어가 더 어렵다고 할 정도로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큰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직설적인 화법을 쓰지만, 한국인들은 간접화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예의상 에둘러 한 말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탈북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또 북한의 사상교육 교사들을 무조건 해고하기보다 부전공 등을 살려 행정이나 상담 교사로 활용하는 방법 등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심일 교사는 아울러 북한 교사 출신 탈북민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북한 교사들에 대한 민주시민사회 교육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심일 교사] “민주시민교육이 가장 우선시 돼야 한다. 그리고 인권 교육. 학생에 대한 인권, 학생 상담 등 생활지도, 성 평등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일의 하인체 국장은 동·서독 전환 때도 사회주의를 가르친 교사들이 불과 6개월 만에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르쳐야 하는 이른바 ‘전환 선생’들이 있었다고 상기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독 젊은이들은 이미 세상에 대해 많이 깨었고 진보적이어서 이런 전환 교사들에 대해 불신이 많았다며, 통독 전부터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하인체 국장과 탈북 전문가들은 “통일은 준비한 만큼 기다려지고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회피하게 된다”며 거듭 탈북민 교사 등을 활용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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