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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동서남북] 미국,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에 요지부동..."비핵화 결단 내려야"


지난 7월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백화원 영빈관의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7월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백화원 영빈관의 회담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북한 핵 문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뉴욕 미-북 고위급 회담이 돌연 취소됐습니다. 회담이 열리더라도 제재가 완화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 북한이 막판에 회담을 취소한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는데요. 미-북 관계의 핵심 쟁점이 된 제재 문제를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미 국무부는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것은 일정 문제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7일 정례브리핑에서 “일정은 항상 바뀌고, 상황에 따라 이런 일들이 공개될 때도 있지만 일정 변화에 따라 공개되지 않을 때도 있다”면서 “이번 경우는 순전히 일정 문제로, 단순한 일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팔라디노 부대변인] “Schedules change all the time in fact. Sometimes we make these things public, sometimes as our schedules change, they are not public. This is a case we are dealing with purely scheduling issue, and it’s just simple as that.”

그러나 국무부의 이런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문가와 언론은 거의 없습니다.

과거 1990년대 미-북 제네바 핵 협상을 담당했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는 북한은 회담이 열리더라도 제재 완화를 이끌어 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갈루치 전 특사] ”I don’t think North sees any possibility of progress in a meeting with the US. The North Koreans are thinking of reciprocal steps by USA and the USA is taking the position of that the North Koreans must take all the steps of denuclearization before the US takes any steps either in the political process of normalization or in the relief from sanctions.”

폼페오 국무장관의 언론 인터뷰가 문제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앞서 국무부는 지난 5일 미-북 고위급 회담을 발표하면서 이번 뉴욕 회담에서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선언의 4개 항목을 진전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고위급 회담에서 종전 선언이나 제재 완화 문제도 논의될 수 있다고 해석될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폼페오 장관은 이와 별도로 비핵화가 이뤄진 다음에나 대북 제재 해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폼페오 장관은 1일 두 차례에 걸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 폐기를 직접 검증하고, 볼 수 있어야 한다며 그 전까지 제재 해제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폼페오 국무장관의 이런 발언을 지켜본 평양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고위급 회담이 열리더라도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 회담을 연기했을 것이라고 한국의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역시 회담을 연다 해도 자신들이 얻고 싶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그것은 북한이 요구한 것은 비핵화와 관련해 할만큼 했는데,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라든지, 종전 선언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제재 문제는 미-북 간에 새로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은 10월 들어 대북 압박의 초점을 종전 선언에서 제재 완화로 빠르게 옮겼습니다.

북한은 폼페오 장관의 3차 방북(7월6일) 때까지만 해도 비핵화의 상응 조치로 종전 선언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폼페오 장관의 4차 방북(10월7일)을 계기로 종전 선언 대신 제재 완화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0월 16일 논평에서 “우리가 핵 시험을 그만둔 지도, 대륙간탄도로케트 발사를 중지한 지도 퍼그나(퍽) 시일이 흘렀으면 응당 ‘제재 조치’들도 그에 맞게 사라지는 것이 순리”라며 제재 해제를 촉구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10월 말 원산의 갈마관광지구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대북 제재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조선중앙방송]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는 적대세력이 우리 인민의 복리와 발전을 가로막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매달려 있지만…”

특히 북한은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지 않으면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다시 추구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 권정근 소장의 논평을 통해,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병진’이라는 말이 부활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겁니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래리 닉시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제재를 풀지 않으면 다시 핵 개발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닉시] "North Korean statement waring they might resume nuclear…"

북한 당국이 이렇게 제재 완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제재가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4월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 대신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김 위원장이 추진하는 ‘경제건설 대진군’ 노선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가 보장돼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12월 채택한 안보리 대북 결의 2397호를 통해 원유 공급을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하고, 휘발유 등 정제품 공급 상한선을 50만 배럴로 묶었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송유관 꼭지를 잠그자 평양의 기름값은 폭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4월만 해도 평양 시내 연유판매소(주유소)에서 휘발유 가격은 kg당 6천원 선이었습니다.

북한 내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본 `아시아 프레스'에 따르면 10월22일 현재 북한의 휘발유 가격은 kg당 1만4천원 선입니다. 지난해 봄에 비해 2배 이상 오른 겁니다.

북한의 최대 외화원인 광물 수출도 중단됐습니다. 석탄과 철광석은 총 수출의 40%를 차지하며, 금액으로는 10억 달러에 이릅니다. 또 석탄 수출로 번 돈이 노동당과 군부, 국영기업, 돈주, 장마당, 광부 호주머니에 들어가야 경제가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석탄 수출이 중단되면서 북한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출을 못해 돈이 들어오지 않는데다 상당수 광부들이 일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또 탄광 운영을 통해 물자를 조달하던 북한 군부도 큰 타격을 입었다고 북한 통일전선부 간부 출신 탈북민 장진성 씨는 말합니다.

[녹취: 장진성] ”군 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왜냐면 군에 석탄독점권을 줬는데, 석탄을 팔아야 외화로 군복이나 군수물품을 사올 수 있는데, 이게 끊기니까, 군 경제가 망가졌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외화 사정도 한층 빡빡해졌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석탄과 무기 수출, 관광, 개성공단, 해외 노동자 송금 등 5-6개 경로로 외화를 조달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수출길이 막혔으며 연간 9천만 달러를 벌이들이던 개성공단도 2016년 2월 폐쇄됐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수출은 28억 달러에서 17억 달러로 전년에 비해 37%나 감소했습니다.

외화 부족은 북한 당국의 특별공급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거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4.15)이나 당 창건일 (10.10)에 쌀과 술, 과자 등을 주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런 특별공급이 없었다고 탈북자 출신인 김흥광 NK 지식인연대 대표는 말했습니다.

[녹취: 김흥광] “9.9절에 특별 식량 공급을 줄려고 하면 해외에서 쌀을 사들여와야 하는데, 달러로 쌀을 사오기 싫으니까, 밑에 시도군,공장,기업소에 명절 상품을 공급하라는 명령을 떨구는 것으로 땜을 했죠, 결국 명절에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고 해서 저희도 맘이 안 좋았어요.”

이러 상황에서는 북한 당국이 2016년부터 추진해온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도 달성하기 어렵고 경제특구 사업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제제가 계속되면 북한경제는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문성묵]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7년 북한경제가 마이너스 3%였는데, 이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는 마이너스 6%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서, 김정은으로서는 미국의 제재를 상당히 아프게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 같습니다.”

북한의 수뇌부는 제재를 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백악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자신도 대북 제재 해제를 바라지만 그러려면 북한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d love to take the sanctions off. But they have to responsive too. It’s a two way street. But we are not in any rush at all. There’s no rush what so ever.”

전문가들은 북한이 제재에서 벗어나려면 핵 신고와 검증 등 과감한 비핵화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 신고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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