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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풍경]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송환은 유가족들의 희망”


피우진 한국 국가보훈처 처장(가운데)과 실종자 유가족 대표들이 9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2018 한국전 실종.포로 장병 유가족 위로 만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국가보훈처.

한 주 간 북한 관련 화제성 뉴스를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 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 또는 실종된 미군의 유가족들은 유해 송환을 마지막 희망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뉴스풍경 오디오]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 송환은 유가족들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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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타국 땅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숭고하게 희생된 3만 3천 명의 한국전쟁 미군 병사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의 수는 3천737명, 포로가 된 병사는 4천439명입니다. (한국 국가보훈처 ‘625전쟁 참전국 참전현황 자료).

이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아온 가족들은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여전합니다.

미 중서부 일리노이주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마린 코세어 비행기 조종사로 참전한 존 디 나델호퍼 병사의 아들인 카너트 나델호퍼 미시간대학교 교수는 VOA에 아버지가 북한 기린도에 추락한 유일한 미군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카너트 교수] “My father was John D. Nadelhoffer. He was a marine corsair pilot who..”

아버지가 북한 상공을 날던 중 총격을 받았는데, 새어 나온 기름이 기체를 덮어 시야를 가리자 낙하산을 타고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비행기 꼬리에 부딫혀 그대로 추락해 낙하산과 함께 묻혔다고 말했습니다.

비무장지대 북쪽 작은 섬에 묻힌 아버지의 유해를 찾는다는 카너트 교수는, 올해 88세인 어머니가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카너트 교수는 자신의 어머니가 최근 미국에 송환된 55개 상자에 아버지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아버지를 만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카너트 교수] “Right now, my mother thinks that my father might be one of the 55, but...."

카너트 교수는 이번에 돌아온 유해가 아버지의 것일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생각하지만 담당자가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희망을 늘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빠가 살아있다면 올해 100세라는 올해 87세의 도나 리브스 할머니는 오빠에 대한 기억을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녹취: 도나 리브스] “He gave me my first bicycle, which I learned to ride with him at my,,, “

32살에 한국전에 참전한 오빠는 자신에게 첫 자전거를 선물했고, 자전거에 함께 타며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라는 설명인데요,리브스 씨는 오빠가 더이상 생존해 있지 않다는 걸 알지만 다른 많은 유가족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리브스 씨는 조카와 함께 왔다면서 오빠의 딸 샤론 베티 듀럴 씨를 소개했습니다.

아빠와 10살 때 헤어졌다는 샤론 씨는 “아버지는 한국전 참전 이전에도 한국에 가본 적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가보지 못한 다른 군인들을 돕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참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인 에릭 밀러 하사는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가 1970년대 한국에서 주한미군으로, 그리고 자신도 3년 반 기간을 한국에서 복무했다고 말했습니다.

미 동북부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인 밀러 하사는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소속돼 있고, 자신의 아내도 복무했다며, 최근 송환된 유해들이 아직 누구인지 모르지만 우리의 형제자매이며 모두가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보훈처 직원이 유가족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사진제공=국가보훈처
보훈처 직원이 유가족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사진제공=국가보훈처

한국 국가보훈처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이 주관하는 ‘2018 한국전 실종.포로 장병 유가족 위로 만찬’ 행사에 참석한 700여 유가족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올해 만찬은 지난 1일 하와이에서 미군 유해 송환 공식 행사가 개최되는 등 유해 송환이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열려 의미가 컸습니다.

지난해보다 250여명 늘어난 참석자 수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미-북 간 유해 발굴과 송환에 대한 유가족들의 관심을 나타냅니다.

한국 국가보훈처 국제보훈과 이민정 과장은 미국인 유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해 온 것이라며 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녹취: 이민정] “실은 작년에 비해 2배 규모가 커졌다. 이유는 북-미 관계가 이전보다 우호적으로 가는 측면, 지난 1일에 유해 55박스가 미국으로 송환되면서, POW MIAKIA 가족분들의 기대치가 높아져서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모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해 행사에 한국 국가보훈처 피우진 처장이 참석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피 처장은 이날 행사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 미군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의 희생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피우진 처장] “오늘 6.25전쟁 영웅의 유가족 여러분들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무척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중략)지난 7월 북한이 미군의 유해 발굴에 합의함으로 11년 만에 양국 간 공동조사가 다시 시작되게 됐습니다.”

이날 행사는 두 시간 넘게 진행됐는데요, 행사의 꽃은 지난해와 같이 한국 정부의 평화의 사도 메달과 증서 수여식이었습니다.

평화의 사도 메달은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지난 1975년부터 참전용사와 유가족에게 수여하고 있습니다.

피 처장은 유가족 대표들에게 일일이 메달을 목에 걸어주고 증서를 전달했고, 다른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각 테이블에서 메달 수여식을 진행했습니다.

증서에는 '한국이 자유의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게 한 당신의 희생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한국 국민의 소원을 담아 '평화를 위한 대사'임을 선포하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올해 특별히 미국 내 한국전 참전 미군 실종 군인 관련 두 단체에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이 전달됐습니다.

후원증서를 받은 단체 중 하나인 ‘한국 냉전 실종군인의 가족’의 멜로디 라글린 씨는 `VOA’에 지난 20년 동안 실종자 신원 확인을 위해 일해 왔다면서, 자신의 아버지도 한국전에서 실종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찰비행을 하던 중 격추돼 숨졌지만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습니다.

라글린 씨는 아버지의 유해가 돌아온다면 무척 행복할 것이라며, 천국에 가기 전까지 아버지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라글린 씨는 아버지의 유해가 이번에 송환된 유해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모든 유해들이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누군가는 가족을 찾게 될 것이라며, 함께 축하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심경을 밝혔습니다.

[녹취: 멜로디 라글란] With all these remains coming home, if one of them is an American soldier, and somebody finds their family, then we’re all .”​

PAA 켈리 맥키그 국장이 9일 ‘2018 한국전 실종.포로 장병 유가족 위로 만찬'에서 답사하고 있다. 사진제공=국가보훈처
PAA 켈리 맥키그 국장이 9일 ‘2018 한국전 실종.포로 장병 유가족 위로 만찬'에서 답사하고 있다. 사진제공=국가보훈처

지난해 9월 부임한 켈리 맥키그 DPAA 국장은 인사말에서 “지난 10년 간 유지해 온 한국 국방부 유해발굴단과의 파트너쉽을 통해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맥키그 국장은 또 "한-미 양국 국민들은 두 기관의 인도주의적인 노력에 감사를 표하며, 국민들 모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웅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유해 발굴과 송환은 이런 영웅을 올바로 기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맥키그 국장은 `VOA’에 자신의 아버지도 한국전에 참전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켈리 K 맥키크 국장]”My father fought in South Korea in the defense of Seoul in ..”

1952년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19세였고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며, 아버지는 지금도 당시의 경험을 매우 높은 가치로 생각하면서, 자신을 남자로서 성장하도록 도왔다고 말한다는 겁니다.

[녹취: 켈리 K 맥키크 국장] ”You know, one would think “do they move on, or do they just forget?” No, they don’t. It’s passed on from generation..."

맥키그 국장은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후손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맥키크 국장은 DPAA국장으로서 임무수행은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를 둔 후손으로서도 큰 보상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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