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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사망 신고 했던 형 만날 생각에 밤 잠 설쳐… 살아 있어서 고맙다고 할 것”


지난 6월 서울 대한적십자사에서 북한에 가족을 둔 윤기진(83)씨가 적십자 직원의 도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대한적십자사에서 북한에 가족을 둔 윤기진(83)씨가 적십자 직원의 도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다음주 금강산에서 열립니다. 다양한 사연을 지닌 가족들 가운데는 죽은 줄만 알았던 형을 68년 만에 처음 만나게 되는 동생도 있는데요, 형을 만나면 살아 있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이연철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강원도 속초에 사는 장구봉 씨는 1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68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에 사는 형을 만날 생각에 요즘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구봉] “죽었다고 사망 신고까지 다 한 상태에서 연락이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벙벙했는데, 이제 실제로 만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여러 가지 상상이 난무하는 거죠, 어떻게 생겼을까….”

장 씨는 지난 7월15일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북한의 상봉의뢰자인 장운봉 씨가 동생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승낙을 했고, 약 3주일 간의 가슴 떨리는 기다림 끝에 지난 7일 이산가족 상봉 행사 최종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 씨가 형과 헤어진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말이었습니다. 당시 장 씨가 13살, 형은 17살이었습니다.

[녹취: 장구봉] “인천상륙작전이 되고 인민군이 후퇴를 하면서 이북으로 전부 피난을 시켰거든요. 그럴 때 우리는 어리니까 우리 어머니가 피난갈 생각을 안 했는데, 혼자서 동네 아저씨들 하고 며칠 갔다 온다고 그런 거예요. 어머니는 말렸는데, 그렇게 헤어지고 만 거예요.”

며칠 후 온다던 형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이 끊겼습니다. 특히, 1980년대에 행방불명자 신고가 의무화되면서 가족들은 형을 사망 처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이 피난 가는 것을 말렸던 어머니는 199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 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있었지만 형을 찾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녹취: 장구봉] “여기선 할 수가 없죠, 근거를 모르는데 그걸 어떻게 해요.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올해 82세인 장 씨는 89세의 누나와 함께 다음주 금강산으로 가서 형을 만날 예정입니다.

장 씨는 형을 만나면 먼저, 살아 있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 씨 이외에도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는 3살 때 헤어진 딸을 만나는 사람도 있고,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 끌려간 형을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한국전쟁 때 헤어진 동생들을 만나는 사람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됐습니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오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립니다.

먼저 한국 상봉단 93명이 20일부터 22일까지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만나고, 이어 23일부터 26일까지 북한 상봉단 88명이 한국의 가족들과 만나게 됩니다.

남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하는 것은 2015년 10월 이후 3년 만에 처음입니다.

남북이산가족협의회의 심구섭 대표는 이번에 상봉 대상자로 선정된 사람들은 다행이라며, 하지만 상봉 기회를 갖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봉 행사 같은 일회성 행사를 지양하고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심구섭 대표] “이산가족들이 손 붙들고 울고 같이 식사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세월에 이산가족들이 다 만납니까?”

한국의 이산가족단체들은 통일부에 등록된 상봉신청자 13만 2천명 가운데 상봉 행사를 통해 실제로 가족을 만나 본 사람은 1.5%에 불과한 2천여 명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100명 씩 간헐적으로 상봉을 하게 되면, 모든 이산가족들이 만나는데 수 백 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심구섭 대표는 무엇보다 생사 확인이 중요하고, 이어 편지 왕래와 영상 상봉 등 다양한 수단들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심구섭 대표] “지금 스마트폰으로 전세계 어느 나라와도 통화가 되지 않습니까? 영상전화도 되지 않습니까? 이런 21세기의 이런 시대에, 만나야 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생사 확인을 하고 다른 그런 방법들을 앞으로 강구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한국 정부도 일회성 상봉 행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통일부의 백태현 대변인은 최근 정례브리핑에서,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에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는 정상 간 합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백태현 대변인]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 문제도 이런 범위에 포함을 해서 우리 정부가 적극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백 대변인은 상봉 정례화와 규모 확대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68년 만에 형을 만나게 되는 장구봉 씨도 단 한 번 만의 만남으로는 너무 아쉽다며, 형을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장구봉] “일회용 이산가족 상봉인데 앞으로 잘 돼서 계속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바램이 그 것 뿐이죠.”

서울에서 VOA뉴스 이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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