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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날 기획] 북한에 자녀를 두고 온 아버지들의 눈물


지난 2015년 10월 금강산면회소에서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2015년 10월 금강산면회소에서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하는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 17일은 미국인들이 기념하는 ‘아버지의 날’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날에는 자녀들이 가장으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에게 카드를 쓰고 선물을 하며 감사를 표시합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잔인한 정책 때문에 자녀와 생이별을 한 채 상봉만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녹취: 장광순 씨] “사랑하는 아내와 나의 딸에게. 꼭 항상 건강하고 꼭 통일이 된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길 진심으로 이 아빠는 바란다.”

한국에 사는 올해 60세의 탈북민 장광순 씨는 한시도 북한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장 씨는 지난 2008년 아들과 먼저 한국에 온 뒤 돈을 구해 이듬해 아내와 딸을 탈출시키려고 중개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탈북 중개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중국에서 자신을 통해 한국인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 신자가 된 아내 박인숙 씨와 딸이 회령의 집에서 보위부에 체포된 뒤 실종됐다는 겁니다.

장 씨는 이후 수소문 끝에 아내와 딸이 정치범수용소(관리소)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앞이 캄캄했습니다.

[녹취: 장광순 씨] “너희들이 그때 체포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빠의 마음은 정말 캄캄했고 죽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었어. 그러나 너희들을 두고 내가 죽으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아 희망을 갖고 신심을 갖고 건강을 챙기며 살아가고 있어”

아내와 딸이 북한의 핵실험장인 풍계리 근처 16호 화성(명간) 관리소에 수감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식만 처남에게서 들었을 뿐 10년째 아직 생사조차 모릅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2017 국제종교자유보고서에서 8만~12만 명에 달하는 북한인들이 종교 등 여러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장 씨는 가족을 지키지 못해 가장의 역할을 못 했다며 아내와 딸에게 거듭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영의 딸’ 운동으로 잘 알려진 한국의 오길남 박사도 수십 년째 죄책감으로 사는 아버지입니다.

[녹취: 오길남 박사;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잘못 때문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삶에서 고초를 겪은 두 딸. 어떻게 위로를 하겠어요?”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5년 북한 정부의 교수직 제의에 속아 아내 신숙자 씨와 두 딸을 데리고 북한에 들어갔던 오 박사.

북한 정권이 약속과 달리 그를 대남 선전방송에 투입하고 유럽의 한국 유학생들을 포섭하라고 지시하자 벨기에에서 탈출했지만, 그 후 아내와 두 딸은 요덕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습니다.

유럽에서 탈출해 자신들을 구출하라는 아내의 당부대로 했지만, 도움의 손길은 없었고 그렇게 수십 년째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녹취: 오길남 박사] “정말 바보였습니다. 북행을 결정한 것은 정말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짓이었습니다.”

국제인권단체들의 도움으로 유엔 인권이사회(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를 통해 북한에 질의서를 보냈지만, 북한 당국은 답변에서 아내가 간염으로 사망했고 두 딸은 아버지와의 만남을 거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 박사는 앞서 VOA에 아내와 딸들에게 거듭 미안하다며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자유 세계에서 딸들을 만나 사정을 설명하면 아버지에 대한 딸들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며 간절함을 나타냈습니다

[녹취: 오길남 박사] “제 두 딸은 아버지의 말을 부인할 겁니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하루하루 달라질 겁니다. 원래 감정으로 되돌아오리라 확신합니다. 세계가 유엔이나, 독일이 도와줘서 두 딸의 유럽 방문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최소한 한 달 정도만 딸들을 만나게 해 주시면 안 되겠나…”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지난 2014년 발표한 최종 보고서에서 오 박사 가족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하며 이를 반인도 범죄 가운데 하나인 납치로 분류했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끝내 가족 상봉을 거절했고 국제사회도 북한의 비핵화 사안에 집중하면서 오 박사의 청원 운동은 불씨가 거의 꺼진 상태입니다.

오 박사를 잘 아는 지인은 VOA에 그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외부 출입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오 박사 가족은 파탄이 났는데 그의 북한행을 회유했던 작곡가 윤이상 씨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이 그의 탄생 100돌을 맞아 축하 글을 올리는 등 한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하태경 국회의원도 지난해 ‘페이스북’에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윤이상의 강권으로 월북해 온 가족이 희생된 오길남 박사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야 한다”고 촉구했었습니다.

북한 정권으로 인한 아버지의 눈물은 일본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자녀와 형제·자매들을 북한에 보낸 뒤 죄책감 속에 보내는 조총련계 한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녹취: 영화 굿바이 평양 트레일러] “우리가 가야 되는데 갈 수 없고 하니까 미안합니다.”

일본의 한인 2세 양영희 감독은 자신의 가족이 직접 겪는 이런 아픔을 다큐 영화(굿바이 평양)로 만들어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가 과거 재일 한인 북송 사업 때 오빠 세 명을 모두 북한에 보낸 뒤 겪는 가족의 아픔을 그린 겁니다

아버지는 일본 사회의 차별에서 벗어나 조국에서 당당하게 꿈을 펼치라며 아들들을 북한에 보냈지만, 큰아들이 우울증으로 숨지는 등 지상낙원이 아닌 사실상 수렁으로 아들들을 밀어 넣은 아픈 가족사.

영화에서 양 감독이 아버지에게 심정을 묻자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을 못 한 채 눈물을 흘렸습니다.

양 감독은 최근 한국 언론(조선일보)과 가진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오빠들을 “안 보내도 좋았을지 모르겠다. 그때는 내가 너무 젊었고 재일조선인 운동이 양양되는 시기여서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고 말했습니다

양 감독은 북한의 오빠들이 후회를 안 할 리가 없다며, 그러나 후회만 하면 알코올 중독이나 불평분자로 찍혀 수용소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아들들은 결국 장례식도 가지 못한 채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 보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1959년~1984년 사이 진행된 재일한인 북송사업으로 총 9만 3천 340명이 북한으로 건너갔다며, 이들은 지상낙원이 아닌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납치와 강제실종으로 분류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그러나 이런 생이별한 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돈벌이용 혹은 조국의 배신자로 낙인 찍어 왔다고 인권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이런 문제들은 모두 연좌제와 납치 등 심각한 인권 유린에 해당되기 때문에 아버지의 날에 이런 아픔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스칼라튜 총장] “북한은 연좌제에 의해 가족들이 깨지고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납북을 당한 가족들도 그렇고, 오길남 씨도 그렇고 북한에 인간 안보는 없습니다. 특히 북한의 가족들은 많은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납치 이슈는 특히 비인간적·반인륜 범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유엔 북한 COI도 비인도적 범죄로 판단을 내렸고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그 가족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죠. 일본 가족, 한국 가족, 다른 나라 가족들도 그렇고. 정말 이날(아버지의 날)에는 엄청난 피해를 입은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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