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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AL기 폭파 김현희] “북한은 테러와 거짓의 나라…테러지원국 재지정 환영”


김현희 씨가 2009년 3월 11일 부산에서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들과 만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북한은 30년 전인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KAL) 858기를 미얀마 근해 상공에서 폭파했습니다.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 북한을 처음으로 테러지원국에 지정했습니다. 저희 ‘VOA’에서는 대한항공 858기 폭파 30주기를 맞아 당시 북한 당국의 사주로 폭탄 테러를 저지른 김현희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김현희 씨는 북한을 “테러 국가”이자 “거짓으로 이뤄진 국가”로 규정하고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북한을 변화시키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30년 전 자신의 행동이 통일을 위한 게 아니라 동족상잔이었다며, 북한 테러의 진실을 알리는데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현희 씨를 김영남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현희 씨) 원래 북한은 테러 국가입니다. 1987년에 KAL기 테러를 하고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습니다. 그리고 20년 후인 2008년에 해제됐는데요. 제 생각엔 그때 해제를 해줄 때 북한으로부터 KAL기 사건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를 받지 않고 해준 것이 저는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북한이 KAL기 사건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고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아직도 뒤집어씌우는 소리를 하거든요. 아직도 그때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끝났기 때문에 정신을 안 차리고 그 후에도 반성 안 하고 계속 도발하고 테러하고 핵 위협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테러지원국을 했었어도 중국이라든가 강력하게 제재를 못 하고 뒤에 있었기 때문에 효과를 못 봤었습니다. 이번에 재지정하고 국제적인 제재를 함께 강력하게 한다면 북한에서도 효과가 일어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자) 테러지원국 지정과 관련해 북한은 전혀 그런 일이 없다, 미국 같은 깡패국가가 억지를 쓰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데요.

김현희 씨) 북한은 원래 거짓 역사로 이뤄졌고 거짓으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지금까지 6.25전쟁과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특히 이렇게 증인이 살아서 증언하지만 한 번도 자기들이 했다고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슬람 IS 테러집단들은 목적과 자기가 했다고 말하는데요. 북한은 한 번도 인정 안 하고 항상 자기들이 안 했다고 오리발을 내놓고 오히려 뒤집어씌웁니다. 그리고 이 KAL기 사건만 해도 처음부터 발 빼려고 기획을 했습니다. 북한인이 한 것이 아니라 북한인인 저희(주범 김승일과 김현희 씨) 둘을 외국인으로 위장을 시켰습니다. 만약 탄로 났을 때는 자살해서 비밀을 지키도록. 북한은 원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테러 국가입니다.

김현희 씨가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으로 압송된 후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김현희 씨가 1987년 12월 15일 김포공항으로 압송된 후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기자) 올해로 KAL 858기 사건 30주년을 맞는데요. 감회가 어떠신지요?

김현희 씨) 벌써 30주년이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우여곡절이 많은 30년이구나 하고 생각됩니다. 우선 돌아가신 분들, 그리고 유족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어떻게 깊은 상처를 치유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10년은 제가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많이 했고 그 이후 15년은 사실 좌파정부 때 가짜로 몰려서 탄압받고 (거주지가) 노출돼서 쫓겨나 지금까지도 어려운 피난 생활을 하고 있거든요. 돌이켜보면 참 우여곡절이 많은 30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기자) 당시 KAL기 사건은 1988년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계기가 됐는데요.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좀 소개해주세요.

김현희 씨) 당시 KAL기 폭파 사건을 제가 증언하고 다음 해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이 됐습니다. 한국 역사에서도 6.25 전쟁 이후에 민간인 항공기가 이렇게 115명이라는 많은 인명을 사살시킨 유례가 없는 명백한 테러거든요. 그래서 그때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올해 초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김정남 씨 암살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1987년 테러와 비슷한 점은 있는지 혹은 다른 점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이 사건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현희 씨) KAL기 사건이나 그 전에는 훈련된 북한 공작원들이 직접 투입을 해서 임무를 수행했고 탄로 났을 때는 자살해서 (비밀을 지키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최근에 김정남 암살 사건을 보면 공작부서 자신들은 직접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종을 하고 여자들, 외국인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서 하는 걸 보면요. 그리고 특히 이번에 금지된 대량살상무기인 VX (신경작용제)까지 동원해서 이런 걸 하는 걸 보면 방법이 자신들이 직접 손을 안 데고 배후에서 조종을 하고 빨리 자기들은 발 빼서 도망가려는 비열한 방법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공작원이 잡히면 결정적 증거가 남기 때문에 이런 결정적 증거를 안 남기고 발뺌하는 수법으로 지금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럼 이번엔 북한인이 아닌 베트남인 혹은 인도네시아인이 저지른 테러가 됐겠죠?

김현희 씨) 지금도 자기들이 안 했다고 하잖아요? 결정적 증거가 없잖아요 어쨌든. 외국인들은 자기들은 몰라서 했다고 하고 (북한인은) 도망갔다고 하는데 결정적인 증거는 안되니까요. 자기네가 안 했다고 주장하기 더욱 쉬운 거죠.

김현희 씨가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떨군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현희 씨가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떨군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기자) 일본에서 납치된 메구미 요코타 씨와 북한에서 만나셨는데요. 처음엔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하시다가 나중엔 본 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메구미 씨의 부모님을 최근에 만나신 거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세요.

김현희 씨) 제가 여기(한국) 와서 조사받을 때는 저하고 같이 생활한 (일본어 교사) 다구치 아에코에 대해서만 얘기했습니다. 당시에는 메구미에 대해서 이름도 모르고 잘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지지 않겠나 해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실 1984년 6월 메구미가 (다른 북한인 공작원) 숙희의 일본어 선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메구미에 대해선 숙희를 통해서 많이 듣고 사진을 봐왔는데요. 그때 중국어 공부를 할 때였는데 메구미가 있는 초대소와 가까웠습니다. 사실 그 안에서는 자기 신상에 대해 얘기해도 안 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서도 안 되고 특히 만나서도 안 되거든요. 그런 게 규칙으로 돼 있기 때문에 그런 게 탄로 났을 때는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 와서 얘기할 때도 사실 숙희라든가, 숙희가 믿고 저를 데리고 갔는데, 메구미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해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지나가면서 메구미 부모님이 뉴스에 나오시고 메구미라는 것도 알게 되고 “내가 만났던 아이네. 내가 만났던 친구네”라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처음에는 들었다고만 말했습니다. 피해가 갈까 봐서요. 봤다는 것과 들었다는 것은 다르잖아요? 그 다음에 만났다고 얘기했고요. 일본에 가서 메구미 부모님을 만나서는 제가 알고 있는 걸 다 말씀 드렸습니다.

기자) 부모를 만나서 한 얘기가 제게 지금 소개한 얘기들인가요?

김현희 씨) 네. 그때 사실은 제가 (메구미에게) 피해가 갈까 봐 선뜻 말을 안 했습니다.

기자) 메구미 씨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현희 씨) 네. 북한은 메구미나 다구치가 다 죽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정보나 이런 게요. 이들이 살아 있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살아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현희 씨가 2009년 3월 11일 부산에서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 이즈카 시게오, 이즈카 고이치로 씨와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현희 씨가 2009년 3월 11일 부산에서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 이즈카 시게오, 이즈카 고이치로 씨와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기자) 한국으로 오시고 자백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김현희 씨) 딱 한 가지 계기라기보다는 제가 한국에 와서 보고 듣고 느낀 거는 한 마디로 북한에서 교육시킨 것이 다 거짓 교육이구나, 정말 다르구나, 정말 사람이 사는 곳이 이곳이구나 하고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진실이라고 믿던 것이 거짓인 것, 6.25 전쟁을 비롯해서, 자유롭게 얘기하고 생각하고 그런 자유와 풍요로움 그런 것에 제가 정말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말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한국말을 하지 않고 일본어와 중국어를 하면서 계속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과학적 진실 앞에서 수사를 하는데 더 이상 빠져나가는 것도 한계에 이르게 됐습니다. 제가 한 일이 조국 통일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동족상잔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며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 때문에 많이 망설이다가 결국은 진실을 알려드리고 죽는 게 제가 마지막으로 인간으로서 할 도리라고 생각해 말하게 됐습니다.

기자) 한국에 정착하신 지 30년이 됐는데 어떠셨나요?

김현희 씨) 제가 북한에서 26년 살고 여기 와서 30년이니까 남한에서 보낸 시간이 더 오래죠. 여기 와서 생활을 해보면 북한하고 한국은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생활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우에는 가짜로 몰려서 그런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아직까지는 힘든데요. 제가 와서 느낀 것은 대한민국이 정말 풍요롭고 살기 좋은데 요즘 북한의 핵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안보 의식이 좀 약하다고 느낍니다. 너무 태평하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KAL기 사건에 대한 것도 젊은 분들이 하나도 모릅니다. 30년이 지났고 가르치지도 않아서요. 민주주의가 좋기는 한데 조금 비효율적인 면도 있구나 하고 생각됩니다.

기자) 김현희 씨를 아직도 가짜로 모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들이 원하는 게 뭘까요?

김현희 씨) 글쎄요. 제가 유일하게 살아 있고 그 수많은 증언과 증거들이 있는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가 보기엔 아무리 진짜라고, 아무리 진실이라고 말해도 그들은 진실이 싫은 것 같습니다. 북한이 했다는 이 테러 진실이 싫고 북한을 이념적으로 옹호하고 싶은가 봅니다. 그래서 끝까지 그런 주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김현희 씨) 저는 큰 죄인이지만 이렇게 아직 북한이 이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한 증인으로서 이 사건 진실을 이야기하라고 살려줬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제 사명감을 갖고 살고 있는데요. 저는 제가 살아 있는 한 KAL기 진실을 알리고 또 다시는 이런 테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KAL 858기 폭파 30주년을 맞아 김현희 씨로부터 당시 상황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미국의 결정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김영남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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