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북한의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사건 피해가족인 황인철 씨가 아버지 황원 씨의 납북 전 사진을 모은 사진첩을 보이고 있다.
1969년 북한의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사건 피해가족인 황인철 씨가 아버지 황원 씨의 납북 전 사진을 모은 사진첩을 보이고 있다.

지난 1969년 발생한 대한항공, KAL여객기 납북 사건은 북한이 사건 자체를 부인하면서 반세기가 넘도록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서울의 김환용 기자가 기나 긴 세월 부친과의 생이별의 고통 속에서 살아 온 황인철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로부터 생사 확인 조차 안 된 아버지를 그리며 추석을 맞게 된 심정을 들어봤습니다.

황인철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에게 흩어져 살던 가족과의 만남으로 설레어야 할 추석은 오히려 고통을 곱씹어야 하는 날입니다.

지난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 KAL여객기가 북한으로 공중납치되면서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됐고 이후 명절이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한층 커지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당시 납북된 50명 가운데 39명만 송환했고, 황 대표의 부친으로 MBC 강원영동 PD였던 황원 씨 등 11명은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며 보내지 않았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이듬해인 1970년 7월, 북한을 규탄하고 납북자의 조속한 송환을 호소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습니다.

황 대표는 1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부친과의 생이별 이후 51번째 맞는 추석이지만 생사 확인이 안 된 탓에 아버지를 차례로 조차 모시지 못하고 있는 기막힌 현실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습니다.

[녹취:황인철 대표] “저희가 이제 추석이 되면 큰집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초상화를 놓고 추석을 보냈는데, 저희 아버지는 납치를 당하셨기 때문에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다 보니까 그냥 사건 발생 날부터 계속적으로 기다리는 마음에 그리고 생사가 어떻게 되는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추석을 보내고…”

황 대표는 졸지에 남편을 잃고 오랜 세월 두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만 하다가 이제 노환으로 요양원에 누워 계신 어머니에게도 죄스런 마음뿐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면회도 어려운 탓에 올 추석은 마음이 더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1969년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피해자 가족회’ 황인철 대표가 북한에 납치된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있다.

KAL기 납북 사건 당시 황 대표의 나이는 두 살. 초등학교 3학년 때 숙부로부터 자신에게 아버지가 없는 이유를 처음 들었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녹취:황인철 대표] “그 전에는 어머니가 미국에 출장 중이라고 하시면서 크리스마스 때면 돌아오신다고 해서 매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근데 돌아오지 않으시니까 아버지가 나를 싫어하시나보다 라고 하면서 굉장히 원망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민학교 3학년 때 그 이야기를 듣고 북한이 납북을 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는가 보다 하면서 굉장히 실망을 했었죠.”

황 대표는 부친과 함께 납치됐던 승무원 성경희 씨가 지난 2001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한국의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아버지를 찾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북한이 납치 사실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송환운동에 나서게 됐다고 합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내 인권단체와 국제기구를 직접 찾아 다니며 이들을 통해 사건 규명과 함께 가족 상봉, 생사 확인을 호소했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오히려 납북자 존재 자체를 부인하면서 황 대표의 이런 요구가 대북 적대세력의 대결책동의 산물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유엔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은 지난 2월 KAL기 피랍 사건과 납북자 11명에 대한 처우가 반인도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의 혐의 서한(allegation letter)을 북한에 보냈습니다.

또 5월엔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WGAD)’이 결정문을 통해 황 대표의 부친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은 것은 북한의 강제구금 때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황 대표의 부친이 자유 의지로 송환을 거부하고 북한에 남기로 했다는 북한 당국의 발표가 거짓임을 확인한 겁니다.

황 대표는 지난달 9일엔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에 북한을 규탄하고 부친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하는 편지를 발송했습니다. 또 같은 날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한국 정부가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황 대표는 납치된 가족을 돌려달라는 게 어떻게 대결책동의 산물이냐며, 적어도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부친의 의사를 직접 확인토록 하는 게 남북관계의 미래를 위한 첫 걸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국제 기구 차원에서 KAL기가 납치됐다는 인정을 받았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녹취:황인철 대표] “한국 정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가의 책무를 다하고 그런 차원에서 가족들의 송환을 북한에 요구하고, 북한 또한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부분에서 이것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을 만나게 해줌으로 해서 진정성을 보이면서 진짜 통일로 가는 길에 동반자가 돼야 되지 않겠느냐 제가 바라고 있습니다.”

올해 53살로 세 아이의 아버지인 황 대표는 젊은 시절을 부친을 찾는 데 바쳤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합니다.

올해로 83살이 됐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아버지이지만 납치가 분명한데도 외면한다면 자신도 아버지에게 가해자나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