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직후 돌아온 하비 스톰스 소령의 유해가 16일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직후 돌아온 하비 스톰스 소령의 유해가 16일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직후 돌아온 하비 스톰스 소령의 유해가 지난주 워싱턴 인근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습니다. 안장식에 참석한 스톰스 소령의 자녀들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산화한 아버지의 희생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이제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스톰스 소령의 안장식을 취재했습니다

지난 16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알링턴 국립묘지.

평양 김일성광장의 34배인 258만m²(639에이커) 크기, 미군과 가족 40만여 명이 안장돼 있는 이 곳에서 이날 특별한 안장식이 열렸습니다. 

21발의 예포와 나팔수의 진혼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의장대 34명이 예우를 갖춘 채 성조기를 덮어 운반한 관 속의 주인공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하비 스톰스 소령입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출신으로 다시 한국전쟁에 미 육군 제7보병사단 31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인천상륙작전 등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던 스톰스 소령은 1950년 12월 1일, 혹한 속에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당시 34살이었던 스톰스 소령은 넷째 아들을 임신한 아내와 9살인 장남 샘 등 어린 아들 3형제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날 장례 예배와 안장식에는 스톰스 소령의 네 아들과 자손 등 60여 명의 유가족, 미군과 한국군 대표 등이 참석했습니다. 

올해 80살이 된 장남 샘 스톰스 씨는 일본에 있던 가족이 아버지의 한국전쟁 참전으로 도쿄 기차역에서 헤어진 게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샘 스톰스 씨] “He turned around and look back and you know he had kind of a puzzled look on his face.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며 가족을 향해 복잡한 표정을 지으셨고, 어린 자녀들을 두고 떠나는 데 대해 많이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겁니다.  

샘 씨는 이후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듣고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피 울기도 했으며, 어머니마저 10년 뒤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등 가족에게 어려움이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남부 텍사스주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의 돌봄으로 네 아들은 큰 농장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2년 전인 2019년 8월, 샘 씨는 운전을 하던 중 미군 당국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북한이 2018년 1차 미-북 정상회담 뒤 송환한 미군 유해 55 상자에서 아버지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녹취: 샘 스톰스 씨] “ I was shocked….Greg said “Sam, we found your daddy.” I said, you're kidding. No  And then I started bawling. So I pulled over the side…I cried for quite a while. And then, when I could quit cry. I called my brothers.)

장남 샘 씨는 크게 놀라 농담이냐고 반문하기도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확인한 뒤 차를 갓길에 세우고 한참을 울다가 동생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알렸습니다. 

아버지를 기다린 69년의 긴 여정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미군 의장대원들이 한국전 참전용사 하비 스톰스 소령의 관을 덮었던 성조기를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이날 안장식에서 미군 의장대는 스톰스 소령의 관을 덮었던 4개의 성조기를 고이 접어 이제는 백발이 된 4명의 아들들에게 각각 하나씩 전달하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샘 씨 등 스톰스 4형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단 한 번도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 등 공산군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스톰스 소령의 전사 당시 임신 중이던 부인의 뱃속에 있었던 막내 로버트 스톰스 씨는 신앙의 자유 등 마땅히 지켜야 할 자유를 위해 싸운 아버지와,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로버트 스톰스 씨] “Today's funeral was really about the honor shown to my dad. And that's what it's always been about. Even we were able to visit Seoul a couple of three years ago and this honor we experienced toward us because of what my dad did, and that was, that's been the biggest message,”

이날 장례식은 아버지에게 보여준 명예에 관한 것이며, 가족이 2~3년 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가 하신 일 때문에 가족이 받았던 존경은 자신이나 형들에 관한 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스톰스 소령의 장손이자 샘 씨의 아들인 짐 스톰스 씨는 이날 장례식이 가족에게 매우 특별한 날이라며, 할아버지와 미군이 자랑스럽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녹취: 짐 스톰스 씨] “We were there, helping a fellow nation against tyranny and oppression, and that's what we're all supposed to do, you know, and especially as American that's our, in our culture and that's apparently what my grandfather stood up. He stood up for those who couldn't stand up for themselves are unable to at the time, so we don't blame anybody”

미군 등 유엔군은 모두 독재와 압제에 맞서 동료 국가를 돕기 위해 한반도에 간 것이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자 미국의 문화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짐 스톰스 씨는 할아버지는 당시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한국인들을 옹호하고 돕기 위해 참전한 것이라며, 할아버지의 희생에 관해 가족은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샘 씨 등 스톰스 가족은 이날 안장식이 사랑하는 가족을 70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 다른 한국전쟁 실종자 가족들에게도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쟁 전기작가로 이날 안장식 뒤 만찬 등 여러 행사를 자비로 지원한 수전 기 씨는 스톰스 가족이 아버지를 잃고 사실상 거의 고아로 자랐다며, 스톰스 소령뿐 아니라 가족의 희생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수전 기 씨] “These are real people who gave up their father and lived as almost orphans right when their mother passed away, so they became orphans, but I was not an orphan. My parents lived. I was saved, they were saved. So we need to honor that we need to always remember that,”

미국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군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3만 6천 574명에 달합니다.

스톰스 소령은 71년 만에 그리던 조국 땅에 안장됐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국전쟁의 미군 실종자는 7천 500여 명에 달합니다. 

이날 스톰스 소령의 안장식에 참석한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 당국자는 이들을 끝까지 찾아내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반드시 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