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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훈장' 받은 한국전 전사 미 군종신부 유해 70년 만에 확인


한국전쟁에 미 육군 군종 신부로 참전한 에밀 카폰 대위가 1950년 7월 지프 군용차에 제대를 만들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카폰 대위는 11월 중공군의 포로가 된 뒤 1951년 5월 수용소에서 숨졌다.
한국전쟁에 미 육군 군종 신부로 참전한 에밀 카폰 대위가 1950년 7월 지프 군용차에 제대를 만들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카폰 대위는 11월 중공군의 포로가 된 뒤 1951년 5월 수용소에서 숨졌다.

한국전쟁에 미 육군 군종 신부로 참전했다 전사한 에밀 카폰 대위의 유해가 70년 만에 확인됐습니다. 고 카폰 신부는 한국전쟁 당시의 영웅적 행동으로 명예훈장을 받았고,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고인을 성인으로 시성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이연철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한국전쟁 중 포로로 붙잡혔다 전사한 육군 군종 신부 에밀 카폰 대위의 유해를 지난 2일 확인했다고 5일 발표했습니다.

미 육군과 DPAA에 따르면 1916년 미 남부 캔자스 주의 시골농장에서 독일과 보헤미아계 후손으로 태어난 고 카폰 신부는 1940년 로마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1944년에 육군 군종단에 합류했고, 이후 남은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얀마와 인도에서 복무하다 1946년 제대했습니다.

1948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한 카폰 신부는 한국전쟁에 파병돼 제1기병사단 8기병연대 3대대에서 복무 중 1950년 11월2일, 운산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전날인 11월1일 시작된 전투 중 카폰 신부는 적의 직접 사격을 받으면서도 계속 움직이며 부상병들을 구출했고, 동료 병사를 처형하려는 적을 육탄으로 저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피신할 수 있는 여러 차례 기회를 거부하고 현장에 남아 부상병들을 돌보겠다고 자원했습니다.

하지만 카폰 신부는 곧 붙잡혀 중공군이 압록강 남단에서 운영하던 포로수용소 ‘캠프5’ 에 수감됐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도 자신의 안전이나 편안함을 마다하고 병자와 부상자들을 돌보고 포로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동료 포로들을 위한 정신적 지도자로서도 계속 봉사했습니다. 포로들에게 믿음을 갖고 석방을 기다리라고 격려했고, 포로들의 집단적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수용소 측에 저항했습니다.

카폰 신부는 수용소 경비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고, 동료 포로들에게는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온 동료 포로들은 카폰 신부의 용기와 온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며, 그가 자신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카폰 신부는 장기간 영양실조로 인해 1951년 5월23일 포로수용소에서 숨졌고, 동료 포로들이 수용소 묘지 한 곳에 그의 시신을 매장했습니다.

카폰 신부의 유해는 1953년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일환으로 미국으로 돌아온 1천868구에 포함됐지만 지금까지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에 미 육군 군종신부로 참전했다 전사한 에밀 카폰 대위가 지난 2013년 4월 바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Medal of Honor)'를 받았다.
한국전쟁에 미 육군 군종신부로 참전했다 전사한 에밀 카폰 대위가 지난 2013년 4월 바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Medal of Honor)'를 받았다.

2013년 4월 11일 바락 오바마 대통령은 카폰 신부에게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추서했습니다. 이 훈장은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공훈장입니다.

미 정부는 카폰 신부에게 훈장을 수여한 이유로 영웅적 행동과 이타심을 꼽았습니다. 그가 포로가 될 것을 알면서도 부상병들을 위해 남기로 자원했다는 겁니다.

특히 포로로 잡힌 직후에도 개인적 안전을 완전히 무시하고 동료 병사를 처형하려는 적을 저지해 동료의 목숨을 구했고, 그의 이런 용기와 지도력이 당시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카폰 신부는 1993년 로마 가톨릭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하느님의 종”이란 칭호를 받았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이 칭호는 고인을 성인으로 인정하기 위한 두 번째 단계로, 바티칸은 카폰 신부를 시성하기 위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존 위틀리 미 육군장관 대행은 5일, 70년 만에 카폰 신부의 유해가 확인됐다며, 그의 영웅적 행동과 강인한 정신은 개인적 용기와 이타적인 서비스를 추구하는 육군 가치의 전형이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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