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스톡홀름의 북한대사관에서 미-북 실무협상이 결렬됐다고 발표하는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와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지난해 10월 스톡홀름의 북한대사관에서 미-북 실무협상이 결렬됐다고 발표하는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오늘쪽)와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미국이 남북 연락채널을 전면 차단한 북한 조치에 ‘실망’을 표시한 데 대해 북한 외무성이 남북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며 미국을 비난했습니다. 남북관계에 이어 미국과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관측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은 남북 연락채널을 전면 차단한 북한 조치에 ‘실망’했다는 미국에 대해,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입을 다물고 집안정돈부터 하라”고 경고했습니다.

권 국장은 11일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남북관계는 철저한 민족 문제로 그 누구도 시비할 권리가 없다며, 흑인 사망 시위 등으로 어지러운 미국 내 상황을 겨냥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권 국장은 그러면서 미국이 참견하지 않는 게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은 물론 당장 코앞에 이른 대통령 선거를 무난히 치르는 데도 유익할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트럼프 대통령 재선에 악재가 되는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로 풀이됩니다.

권 국장은 또 미국이 밝힌 ‘실망’이 북한이 지난 2년 간 느낀 `환멸과 분노’에 비할 수 있느냐며 미국에 대해 따로 계산할 게 적지 않다고도 했습니다.

앞서 미 국무부 대변인은 현지 시간으로 지난 9일 북한의 남북 연락채널 차단과 관련해 “북한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다”며 “북한이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 9일 북한 신천박물관 앞에서 한국의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탈북민 단체와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집회가 열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관계에 이어 미국과도 긴장을 높이는 수순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황일도 교수는 북한이 2018년 대화 국면에서 미국에 대해 사용했던 외교 관례에 부합한 표현들이 다시 2018년 이전의 거친 화법으로 돌아가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황 교수는 다만 아직 미국을 한국처럼 ‘적’으로 규정하는 단계까지 나가진 않은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녹취: 황일도 교수] “적이라고 규정한 것은 지금 남한을 적이라고 규정한 것이지 미국을 적이라고 다시 얘기하는 언술들이 노동신문이든 눈에 띄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남북관계에서 미국이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는 데 가까운 톤이니까 미국을 적으로 규정한 단계는 아직 아니라는 거죠.”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11월 대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경고 메시지를 보낸 대목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 민간 연구기관인 아산정책연구원 제임스 김 박사는 북한이 도발을 통해 미 대선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발언했지만 이는 미국정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 박사는 미 본토를 위협하는 외부 세계의 행위가 더욱이 선거를 앞둔 시점에 일어날 경우 미국민들은 현직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는 경향이 있다며, 북한이 그런 도발에 나설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게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김 박사는 이 때문에 북한의 이번 발언이 미국 보다는 한반도 평화를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메시지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제임스 김 박사] “They are trying to pressure the Blue House to concede more ahead of any potential cooperative meetings or any other cooperative endeavors that they start to embark on.”

김 박사는 북한의 메시지는 미국 보다는 한국의 청와대를 겨냥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향후 있을 수 있는 남북 협력을 위한 만남이나 시도들에 앞서 보다 많은 양보를 한국 측으로부터 받아내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 통일 연구원의 조한범 박사는 북한이 이미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를 통해 핵 억제력 강화 등 도발 수위를 높일 의사를 보였고 외무성의 이번 발언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미-북 간 긴장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조 박사는 다만 북한의 이번 발언 방식과 수위로 미뤄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의 레드라인 즉, 임계치로 여겨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같은 전략적 도발을 암시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박사] “권정근 국장 수준에서 도발 수위를 결정하진 않거든요. 만일 더 고강도라고 하면 리선권 외무상이나 더 고위급에서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거든요. 근데 권정근은 엄밀히 보면 실무 담당자거든요.”

권정근 국장은 북한의 대미라인 ‘공격수’로 꼽혔던 인물로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으로 대미 대남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스톡홀름 미-북 비핵화 실무 협상 즈음에 국장 자리를 조철수에게 넘겨주고 국장급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외무성 순회대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번 발언을 통해 미국 국장에 복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권 국장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마이크 폼페오 미국 국무장관을 두고 ‘폼페오만 끼어들면 일이 꼬이고 결과물이 날아간다’고 언급하는 등 미국에 대해 거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