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문화: 아날로그 자동차 극장(Drive-in Theater)의 부활

캘리포니아주의 한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자료사진)

진행자: 미국 사회의 유행하는 영화, 공연 등 예술과 팝 문화에 관해 알아보는 금요일 ‘구석구석 USA’입니다. 김철한 기자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주제인가요?

기자: 오늘은 선선한 가을 주말에 미국인들이 가족이나 연인의 손을 잡고 가고 싶어 하는 문화 공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거대한 영화 스크린 뒤로 사막이나 들판, 가을 밤하늘의 별이 보이고, 사방이 막힌 멀티플렉스 극장 좌석 대신, 내 차 안에서 편안한 자세로 누워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감상하는 상상을 많은 분이 해보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진행자: 상상만 해도 정말 가슴이 편안해집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그런 아날로그적인 극장이 남아 있나요? 옛날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 자주 등장하던 '야외 자동차 극장'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바로 아날로그식 낭만을 체험할 수 있는 '드라이브 인 시네마(Drive-in Theater)', 즉 야외 자동차 극장입니다. 미국의 순수 발명품인데요, 1933년 미국의 뉴저지주 캠든에서 리처드 홀링스헤드라는 인물이 세계 최초로 특허를 내며 시작되었습니다.

진행자: 1933년이면 역사가 거의 100년에 육박하는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 자동차 극장은 195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 전역에 운영하던 야외 자동차 극장 스크린 수가 무려 4천 개가 넘었을 정도였으니까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1988년 기사에서 미국 극장주협회의 자료를 인용해 1950년 자동차 극장이 급격히 늘어나 1958년에는 4천63개로 정점을 기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자동차 극장의 성장 배경에는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자가용 붐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동시에 차 창문에 무거운 스피커를 걸어놓고 영화를 보던 자동차 극장 문화는 미국의 화려했던 영화관 황금기를 대변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1950년대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젊은 연인들이 자동차 극장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이 나오는 걸 쉽게 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 솔직히 1980년대 이후로는 넷플릭스나 대형 멀티플렉스, 비디오 대여점 때문에 완전히 사양길로 접어들어 다 사라진 문화로 알고 있었는데요.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기자: 비싼 부지 가격과 홈비디오, 케이블 TV의 보급으로 미국 전역에 4천 개가 넘던 극장들이 최근에는 미국 전역에 300여 개만 남아 있을 정도로 급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최근 생존에 허덕이던 자동차 극장들이 미국인들, 특히 20~30대 Z세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역대급 화려한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주말마다 입장권 예약 전쟁이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진행자: 2026년에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고 영화를 보는 자동차 극장이 부활한 건가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자: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디지털 피로감(Digital Fatigue)' 때문입니다. 손안의 스마트폰,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쇼트폼 비디오, 번쩍이는 네온사인에 지친 미국인들이 주말만큼은 스마트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진짜 자연 속에서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즐기는 것을 대단한 특권이자 치유로 여기기 시작한 겁니다. 특히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만 보고 자란 미국의 Z세대에게 이 자동차 극장은 겪어보지 못한 신비롭고 엄청나게 '힙한 레트로 명소'로 다가온 것이죠.

진행자: 스마트폰의 편리함 대신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일종의 '낭만적인 놀이'로 소비하는 거군요. 야외 자동차 극장, 주말 풍경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기자: 미국의 자동차 극장은 단순히 영화만 보고 가는 공간이 아닙니다. 하나의 거대한 '지역 주민들의 주말 축제'에 가깝습니다. 대지가 광활한 미국답게 수백 대, 많게는 1천 대 이상의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광활한 잔디밭이나 사막 벌판에 건물 몇 층 높이의 초대형 스크린이 설치됩니다. 가을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SUV나 대형 픽업트럭의 뒷문을 아예 스크린 쪽으로 열어둡니다. 그리고 트렁크 안에 담요와 베개를 깔고 침대처럼 누워 버리죠.

진행자: 차 트렁크를 텐트나 침대처럼 개조해서 영화를 본다니, 영화관이 아니라 캠핑장에 온 기분이겠어요.

기자: 그렇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미리 명당을 선점한 가족들은 캠핑 의자와 돗자리를 펴 놓고 바비큐를 굽거나 피자를 먹으며 대화를 나눕니다. 아이들은 벌판을 자유롭게 뛰어놀고요. 야외극장의 특성상 반려동물 출입도 허가됩니다. 일반 극장에서는 아이가 울거나 떠들면 눈치가 보이지만, 여기서는 소리가 내 차 안에서만 나기 때문에 아기가 있는 가족이나 연인들에게 자유롭고 개인적인 공간(Private Space)을 제공하는 것이죠.

진행자: 듣기만 해도 주말의 해방감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비용 면에서는 어떤가요?

기자: 네, 상대적으로 비용도 저렴합니다. 보통 미국의 일반 극장은 인당 15~20달러의 티켓값을 내야 해서 4인 가족이 가면 영화 비용만 60~80달러를 상회합니다. 하지만 많은 야외 자동차 극장은 사람 수가 아니라 '차 한 대당(Per Carload)' 20~30달러 내외만 받습니다. 차에 몇 명이 타든 상관이 없습니다. 저렴한 비용으로 캠핑과 영화, 축제를 동시에 즐길 수 있으니 고물가 시대에 보기 힘든 가성비 주말 나들이가 되는 셈입니다.

진행자: 가성비와 가심비, 가격 대비 성능과 만족도를 모두 잡았군요. 이 유행을 놓치지 않으려는 유통이나 대중문화 업계의 마케팅 경쟁도 뜨거울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1950년대식 네온사인 매점 인테리어를 그대로 복원해서 수제 버거와 수제 밀크셰이크를 파는 극장들이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연일 수백만 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야외 자동차 극장은 부모 세대에게는 유년 시절의 향수를, 자녀 세대에게는 새로운 아날로그 경험을 선사하며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진행자: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연인 또는 가족들과 차 안에서 즐기는 영화 한 편. 미국의 야외 자동차 극장 문화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김철한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