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가능 링크

스페인과 인디언의 시간이 멈춘 곳, 뉴멕시코주 1부: 사막 위의 역사

뉴멕시코 싸인
뉴멕시코 싸인

진행자: 미국 곳곳의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보는 ‘구석구석 USA’입니다. 오늘은 광활한 50개 주를 하나씩 탐방하며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김철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어느 주를 알아볼까요?

기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뉴아메리카주로 부르자고 언급했던 주죠? 바로 뉴멕시코주에 관해 준비해 봤습니다.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진행자님에게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행정 수도(Capital)는 어디일까요?"

진행자: 글쎄요, 미국의 역사가 동부에서 시작했으니까 매사추세츠나 뉴욕, 워싱턴 D.C. 중 하나가 아닐까요?

기자: 네, 대부분은 최초의 임시 수도였던 뉴욕이나 필라델피아, 혹은 현재의 워싱턴 D.C를 떠올리실 겁니다. 그러나 이 도시들은 정답이 아닙니다. 미국의 가장 오래된 수도는 동부가 아닌, 남서부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 뉴멕시코주의 '산타페(Santa Fe)'입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매사추세츠 플리머스 해안에 도착하기도 전인 1610년에 이미 이곳은 스페인 식민지의 일부였던 ‘누에보 메히코’의 행정 수도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누에보 메히코’를 영어로 하면 ‘뉴멕시코’죠.

진행자: 현재 미국의 남서부 지역이 당시에는 스페인 영토였기 때문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뉴멕시코의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 ‘매혹의 땅(Land of Enchantment)’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요. 미국인들에게도 이곳은 가장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주 가운데 하나로 통합니다. 지도상으로는 미국의 남부 국경에 붙어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동부의 앵글로색슨 문화보다는 수천 년간 이 땅을 지켜온 원주민 인디언의 문화, 그리고 스페인 제국과 멕시코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진행자: 뉴멕시코가 미국의 주가 된 과정을 좀 살펴볼까요?

기자: 네, 미국은 1848년 멕시코-미국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현재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네바다 등을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습니다. 뉴멕시코는 2년 뒤인 1850년에 이미 인구 기준을 충족해, 주 승격을 신청했는데요. 하지만, 미 의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미국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뒤에도 무려 62년 동안이나 주 승격을 거부했는데요. 대다수 백인 정치인이 "뉴멕시코에는 백인이 아닌 스페인계와 원주민 인디언, 그리고 가톨릭 신자가 너무 많아서 순수한 미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50번이 넘는 도전 끝에 1912년에야 겨우 47번째 주가 될 수 있었죠.

진행자: 그런데 이름에 ‘멕시코’가 들어가다 보니, 미국 안에서도 이웃 나라 멕시코와 혼동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많을 것 같아요.

기자: 네, 제가 시작할 때 살짝 언급한 바와 같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 계정에 뉴멕시코 지도의 멕시코 부분을 빨간색 X자로 지우고 아메리카로 바꾼 이미지를 공유해서 화제를 모은 바 있죠? 실제로 뉴멕시코주 주민이 다른 주로 이사 가거나 연방 관공서 업무를 볼 때, 공무원들이 "여권 가져오셨나요?"라고 묻거나 외국인 취급을 해서 뉴스에서 다뤄지기도 합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신문에 따르면,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뉴멕시코 주민이 티켓을 예매하려 하자, 직원이 "우리는 해외로 티켓을 배송하지 않는다"며 거절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진행자: 미국 땅인데 그런 오해가 일어난다니 참 재밌네요. 그렇다면 뉴멕시코주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기자: 주도 산타페 중심가에 가면 '총독 관저(Palace of the Governors)'라는 건물이 있는데요. 미국 땅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공건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럽식 벽돌이나 대리석 건물이 아닙니다. 흙과 짚을 섞어 햇볕에 말린 벽돌을 쌓아 올린 황토색의 독특한 '어도비(Adobe) 양식' 건물입니다. 사막 기후에 최적화된 원주민들의 건축 공법이죠. 이곳은 스페인 총독들이 머물던 지배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1680년 원주민들이 스페인의 가혹한 종교 탄압에 맞서 일으킨 ‘푸에블로 인디언 봉기’의 치열한 전장 격전지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이 건물은 정부 청사 역할을 마치고 뉴멕시코 역사박물관의 일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진행자: 화려한 지배의 역사 뒤에 숨겨진 원주민들의 저항과 애환이 그 황토색 흙벽에 그대로 녹아 있군요?

기자: 네, 보통 미국인들은 1776년 영국에 맞선 독립 전쟁이 미국 땅에서 일어난 최초의 혁명이라고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100년 앞선 1680년, 이곳 산타페에서 원주민들이 힘을 합쳐 전 세계를 호령하던 스페인 제국 군대를 몰아내고 12년 동안 독립을 유지했던 ‘푸에블로 혁명’이 있었습니다.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을 상대로 원주민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이 바로 이 흙벽 앞에서 일어난 것이죠. 백인 위주의 역사에서 벗어나, 원주민의 시선으로 미국의 뿌리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곳이 바로 뉴멕시코주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네, 뉴멕시코주 역사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김철한 기자였습니다.

Forum

XS
SM
MD
L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