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미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건국 250주년 관련 소식 전해드리는 '역사 속 아메리카 250', 오늘은 이조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기자: 미국을 바꾼 혁신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금 우리 지갑 속에 들어 있는 물건 이야기입니다. 바로 신용카드인데요. 이 작은 플라스틱 카드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퍼진 데에는 아주 대담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1958년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 주민 6만 명이 신청한 적도 없는 신용카드를 우편함에서 받았습니다. 그것도 바로 쓸 수 있는 상태로요.
진행자: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카드가 왔다는 겁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미국 금융사에서 '프레즈노 드롭(Fresno Drop)'이라고 부르는 사건인데요.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 앞의 이야기부터 잠깐 짚고 가겠습니다. 지금 같은 카드가 나오기 전에 미국에서는 외상이 어떻게 이뤄졌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진행자: 가게마다 장부를 뒀겠군요.
기자: 정확합니다. 동네 술집이나 상점은 단골 이름을 적은 장부를 두고 외상을 달아뒀습니다. 백화점이나 주유소는 자기 회사에서만 쓸 수 있는 카드를 따로 발행했고요. 그러니까 지갑에 카드가 여러 장 있어도 각각 그 가게에서만 쓸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통하는 카드는 없었습니다.
진행자: 그런 카드가 언제 처음 나왔습니까?
기자: 1950년입니다. 창업 배경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1949년 뉴욕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가 손님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계산하려는데 지갑을 집에 두고 왔고, 결국 아내가 차를 몰고 와서 대신 계산했다는 겁니다. 그 창피함을 겪은 뒤 현금이 없어도 신원만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는 것이죠. 이듬해인 1950년 2월 맥나마라는 같은 식당에 다시 가서, 작은 종이 카드 한 장으로 밥값을 냈습니다. '다이너스 클럽(Diners Club)' 카드였습니다. 여러 가게에서 두루 쓸 수 있는 최초의 카드로 꼽힙니다.
진행자: 그럼 이때 이미 신용카드가 생긴 것 아닙니까?
기자: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다이너스 클럽은 '외상 카드'였습니다. 한 달 뒤에 청구서가 오면 전액을 갚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로 출장 다니는 사업가들이 쓰던 것이었고요.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구조, 그러니까 다 못 갚으면 나머지를 다음 달로 넘길 수 있는 진짜 '신용'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걸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것이 미국 최대 은행 가운데 하나였던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였습니다.
진행자: 그래서 프레즈노 이야기로 이어지는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 계획을 이끈 사람이 조셉 윌리엄스라는 인물입니다. 은행 안에 있던 신상품 연구 조직의 책임자였는데요. 윌리엄스가 부딪힌 것이 이른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였습니다. 카드를 받아주는 가게가 없으면 사람들이 카드를 안 만들고, 카드를 가진 사람이 없으면 가게가 받아주지 않는 겁니다. 윌리엄스의 해법은 단순하면서도 과감했습니다. 그냥 카드를 먼저 뿌려 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진행자: 왜 하필 프레즈노였습니까?
기자: 이유가 아주 현실적입니다. 인구 25만 명 정도로 카드가 돌아갈 만큼은 크고 손실을 감당 못 할 정도로 크진 않았습니다. 그 지역 주민의 45%가 이미 이 은행 고객이었고요. 그리고 이것이 핵심인데, 프레즈노는 대도시에서 떨어져 있어서 실패해도 언론이 크게 주목하지 않을 곳이었습니다. 은행은 그해 3월부터 지역 상점 300여 곳을 미리 설득해 카드를 받도록 해 뒀습니다.
진행자: 그리고 그날이 왔군요.
기자: 네, 1958년 9월 18일입니다. 프레즈노 주민 6만 명의 우편함에 '뱅크아메리카드(BankAmericard)'라는 카드가 도착했습니다. 신청서도, 심사도 없었습니다. 봉투를 열면 바로 쓸 수 있는 카드가 들어 있었고, 300달러에서 500달러의 신용 한도가 딸려 있었습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상당한 금액입니다.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냥 버린 사람도 있었고, 반신반의하며 써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진행자: 결과는 어땠습니까?
기자: 처음에는 참담했습니다. 연체율이 20%를 넘었습니다. 윌리엄스는 사람들이 당연히 갚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은행 대출 부서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카드 위조가 걷잡을 수 없이 늘었습니다. 상점들은 6%나 되는 수수료에 불만이 컸고요. 결국 윌리엄스는 프레즈노 드롭 1년여 만인 1959년 12월 은행을 떠났습니다.
진행자: 그런데도 계속 밀어붙였군요.
기자: 은행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확대했습니다. 다른 은행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같은 일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자 서둘러 카드를 뿌렸는데요. 1959년 3월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 6월 로스앤젤레스, 그해 10월에는 캘리포니아 전역에 200만 장이 넘는 카드가 퍼졌습니다. 받아주는 상점도 2만 곳으로 늘었습니다. 몇 년 뒤 이 사업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진행자: 그 카드가 지금 우리가 아는 신용카드가 된 거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이 사업을 여러 은행이 함께 쓰는 조직으로 바꿨고, 1976년 이름을 '비자(Visa)'로 바꿨습니다. 경쟁하던 다른 은행 연합은 나중에 마스터카드가 됐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쓰는 결제망이 프레즈노의 우편함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진행자: 미국 사회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기자: 물건을 사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 미국인은 돈을 모아서 물건을 샀습니다. 신용카드가 퍼진 뒤에는 먼저 사고 나중에 갚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전후 미국 중산층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경으로 꼽힙니다. 동시에 그림자도 함께 왔습니다. 가계 부채가 늘고, 신용점수가 개인의 삶을 좌우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신용카드는 기회와 편리함, 그리고 빚을 동시에 상징하는 물건으로 이야기됩니다.
진행자: 요즘에도 프레즈노 드롭 같은 일이 일어나나요?
기자: 신청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용 가능한 카드를 보내는 일은 1970년 법으로 금지됐습니다. 프레즈노에서 벌어진 일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리고 초창기 카드 실물은 지금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진행자: 지갑을 두고 온 저녁 식사에서 시작해 프레즈노의 우편함으로 이어진 신용카드 이야기, 이조은 기자였습니다.